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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詩 놀이터

[詩] 청보리 익어가는 날 청보리 익어가는 날 돌담/이석도 누렇게 청보리 익어가는 날들이면 시네마스코프 총천연색 활동사진이 펼쳐진다. 파란 하늘 아래 모락모락 흰 연기 솟아 뭉게구름 되고 보리 까끄라기 더미에선 햇감자 타는 냄새 진동하지만 이 보리로 가을까지 견뎌야 하는데··· 무명 적삼 도리깨는 뚝뚝 비지땀을 흘리며 애를 태우고 긴 머리를 흰 수건으로 감싼 도리깨는 한숨짓는다. 이삭 줍던 철부지 오 남매 도리깨질이 더 재미있다며 겨우 몇 번 토닥이곤 연기 피어오르는 까끄라기 더미 둘러앉아 밀사리 한다. 불 그을린 밀 이삭에 손바닥도 입가도 새까매지자 서로 수염 났다면서 깔깔깔 웃어 댄다. 도리깨의 한숨을 들었을까? 팥죽같은 땀이 안쓰러웠을까? 따라 웃던 해님이 슬그머니 뭉게구름 뒤로 얼굴 숨긴다. (2021. 6. 5.) ☞ 밀.. 더보기
[詩] 뱀딸기 뱀딸기 돌담/이석도 눈에 잘 띄는 샛노란 꽃인데도 눈길 한 번 받지 못해 속이 상했다. 보름달보다 동그랗고 딸기보다 먹음직스레 꾸며도 손길 한 번 오지 않아 눈물이 났다. 이름 때문일까? 화장을 잘해 외모만 그럴싸할 뿐 새콤하지도 달콤하지도 않은데 한 번 속지 두 번은 안 속지··· 이름 바꾸러 가던 뱀딸기 나비와 꿀벌 대화 엿듣더니 얼굴 빨개져 발 돌린다. (2021. 6. 3.) ☞ 뱀딸기 꽃말 : 허영심 더보기
[詩] 메밀꽃 피면 메밀꽃 피면 돌담/이석도 메밀꽃 피고 지면 울 엄마 서울에 오셨는데… 엄마 따라 새마을호 열차에 오른 배불뚝 보따리 우리집에 들어서면 주방 점령하는 메밀가루는 말랑묵 되어 내 입맛을 훔쳐 가고 거실 차지하는 메밀껍질은 홀쭉한 베개 포동포동 살찌웠는데… 앙증맞은 메밀베개 베고 잠든 증손자 도닥이던 엄마 얼굴에 하얀 메밀꽃 활짝 피었었는데… 몇 해 전 발길 끊으신 울 엄마 모습은 숨긴 채 미소만 보내신다. 여기저기 한강 둔치 메밀밭 올해는 벌써 하얗다. (2021. 6. 1.) 더보기
[詩] 돼지머리 돼지머리 돌담/이석도 아무리 애를 써도 알 수 없는 동물이 사람이라며 절레절레 고개 흔든다. 자식 같다면서 잘 먹이더니 아직 첫돌도 안 됐는데 죽이기는 왜 죽여 먹기 위해 키우고 잡았으면 그냥 먹기나 하지 돈은 무엇이고 절은 또 뭐람 입 · 코 · 귀 구멍마다 퍼런 지폐 꽂은 채 고사상 앉아 절 받던 돼지머리는 인간들이 영 같잖다는 듯 지그시 두 눈 감는다. (2021. 5. 21.) 더보기
[詩] 메꽃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메꽃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돌담/이석도 젊은 시절의 메꽃은 곧잘 울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세상이 싫었다. 대대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자신을 외래종인 나팔꽃으로 아는 사람이 적지 않아 속상했다. 아빠들이 꽃밭에 매어 놓은 새끼줄을 따라 하늘 높이 올라가는 나팔꽃들을 볼 때마다 기댈 지푸라기 하나 없는 제 신세 서러워 눈물을 자주 흘렸지만 이젠 울지 않는다. 세계인의 버킷리스트 된 알프스 초원을 수채화보다 더 아름답게 꾸미는 꽃들은 자기처럼 하늘과 비와 바람밖에 모르고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잡초의 웃음이라는 이야기 듣고부터다. 메꽃은 오늘도 방실방실 대대로 지켜온 땅을 더 아름답게 가꿔 손자 물려줄 생각에 꽃잎 활짝 연다. (2021. 5. 15.) ☞ 메꽃 : 전국의 들판 언덕 바닷.. 더보기
[詩] 부러움이 두려운 날들 부러움이 두려운 날들 돌담/이석도 검정 고무신만 신었던 어릴 적에는 운동화 신은 친구가 너무 부러웠고 영어가 어렵기만 하던 학창 시절엔 미국에서는 거지들도 영어로 말한다는 한 마디에 미국 거지들이 부러워지던데··· 부모님들이 피와 희생으로 가꾸고 형님 누님들의 땀과 눈물을 먹고 핀 꽃 세계 10대 경제대국 우리 대한민국이 활짝 피기도 전에 시들고 있다. 몇 해 전까진 분명 잘 달리고 있었던 데다 곧 선진국 된다기에 꿈 이루는 줄 알았건만 팬데믹 태풍에 꽃 그림 가득했던 가림막이 날아가 버리자 실상이 드러났다. 탈 없고 효과 좋은 백신 넘치는 미국에서는 외국인 여행자에까지 좋은 백신 접종하는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백신조차 모자라다니··· 아내 데리고 미국 여행 가는 친구가 부럽다. 맨해튼 노숙자들까지 부.. 더보기
[詩] 수레국화 수레국화 돌담/이석도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은 꽃샘추위 한창이던 삼월 초였지 하얀 저고리에 남청색 치마 붉은 연지 주황색 곤지 넋 뺏는 아름다움도 매력이지만 너의 진짜진짜 매력은 볼 때마다 즐겁고 보고만 있어도 행복한 거야. (2021. 5. 10.) ☞ 심상 571호(2021. 5월호) 발표 ☞ 수레국화 : 3월 5일 탄생화로 두상화는 남청색, 주황색, 홍색, 백색 등 여러 품종이 있으며 초롱꽃목 국화과 한해살이풀. 독일의 국화(國花)로 꽃말은 행복감. 더보기
[詩] 불두화 불두화 돌담/이석도 양재천은 알고 있었다 사월 초파일이 며칠 남지 않았음을 곳곳에 곱슬곱슬 부처 머리 닮은 꽃 피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한다. 연초록에서 흰색 흰색에서 누런색 꽃 색깔을 바꿔가면서 제행무상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단다. 사바세계를 뒤덮은 코로나 염병 이 또한 지나가리니 너무 걱정하지 말란다. (2021. 5. 6.) ☞ 심상 571호(2021. 5월호) 발표 ☞ 불두화 : 꽃의 모양이 부처의 머리처럼 곱슬곱슬하고 부처가 태어난 4월 초파일을 전후해 꽃이 만발하므로 불두화라 하는데, 필 때는 연초록이나 활짝 피면 흰색이 되고 질 무렵이면 누런빛으로 변한다. 꽃 모양이 수국과 비슷하나 불두화는 잎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 반면 수국의 잎은 들깻잎을 닮은 타원형이다. ★꽃말은 제행무상(諸行無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