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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코로나 확진 그리고 완치 나는 빛 좋은 개살구였다. 2021. 11. 13. 토요일 참 아이러니하다 싶었다. 우리 나이로 68살이 되는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50대에는 마라톤을 시작해 오십 리 거리의 하프 마라톤을 이십여 차례 뛰고, 백 리 길도 넘는 풀코스 마라톤도 다섯 차례나 완주한 건강한 체력인데···, 2014년 9월 30일 우리은행을 정년 퇴임하곤 다음날 10월 1일 '정년 퇴임과 회갑'을 自祝하는 이벤트로 나 혼자서 서울을 출발해 고향 청도까지 근 400km를 열흘 동안 걷고, 2017년 10월 또 나 혼자서 속초를 출발해 부산까지의 해파랑길 520km를 열사흘 동안 걸었던 강철 못잖은 체력인데···, 10년이 넘도록 헬스장에서 가꾼 근육을 '2018년도 보건복지부 장관.. 더보기
도랑 치고 가재 잡고··· 2021. 10. 20. 수요일 은규를 등교시킨 후 집으로 돌아왔더니 대문 앞에 작은 택배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우체국 택배인 걸 보면 은규를 데리고 아파트를 나설 때 우체부 아저씨가 탄 오토바이가 들어오더니 그 아저씨가 놓고 갔구나 싶어 집어 들고 집으로 들어왔는데. 발신인이 '서초구 보건소'라 내용물이 궁금해 곧장 택배 상자를 열었다. 앙증맞은 운동기구 하나와 이 운동기구를 이용한 운동방법이 적힌 종이 한 장 그리고 아주 편해 보이는 예쁜 마스크 2매 바로 '서초구 보건소'에서 실시한 걷기 이벤트 당첨 사은품이었다. 지난 10월 5일 저녁이었다. 낮에 우리 가족 단톡방에 '코스모스와 양재천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글들이 적힌 사진 한 장을 올렸던 원준 어미가 올라와서는 나와 집사람의 폰을 .. 더보기
작지만 큰 행복 2021. 10. 18. 월요일 마음과 달리 몸이 게으름을 피우는 아침이었다. 은규를 등교시키고 돌아오자 마음은 '운동 나가야지···' 하는데, 몸은 안마의자에 앉고 싶어 했다. 그저께 토요일엔 집사람이랑 중곡동 사돈 부부와 함께 서울 둘레길을 걷고 일요일이었던 어제는 친구들과 검단산에 다녀온 데다 과음까지 했던 탓인지 오늘 하루쯤은 푹 쉬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마음을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술을 마시다 보면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은 석 잔이 되는 것처럼 운동도 하루를 쉬면 이틀 쉬고 싶고, 이틀을 쉬면 사흘 쉬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싶어 벌떡 일어나 생수 한 통 꽂은 쌕(sack)을 차고는 집을 나섰는데 시곗바늘은 벌써 열 시를 훨 지나 있었다. 양재천으로 가기 위해 아침마다 .. 더보기
코로나의 선물 2021. 9. 20. 월요일 달이 참 밝은 밤이다. 어디 한 곳 찌그러진 데 없으니 완전 보름달 같다. 팔월 보름 한가위는 내일이지만 종일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본 모양이다. 그래서 코로나19에 지친 우리들을 위로해 주고 싶어 하루 앞당겨 동그랗게 꾸미고 밝게 화장한 얼굴을 내밀었나 보다. 달구경을 하면서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저녁 식사 후 아파트 앞 근린공원으로 가서는 철봉에 매달렸다. 1년 반이 넘도록 우리를 힘들게 하는 코로나. 일상을 빼앗겼다 싶더니 어느새 친구도 빼앗아가고, 고향과 명절 등 많은 것을 훔쳐간 것 같은데 웬 선물(?)···· 코로나19가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한 작년 2월 하순 무렵 서울에서는 공공 도서관, 구립 스포츠센터 등 편의시설 모두가 휴관에 들어갔다. 그래서 나도 몇 .. 더보기
할미할비의 소원 2021. 8. 31. 화요일 은규 엄마와 아빠 둘 다 야근으로 늦다길래 찬스다 싶었다. 저녁 식사 후 샤워까지 마친 은규를 재울 요량으로 함께 침대에 누웠다. 활짝 열어 놓고 지내던 창문을 닫을 때는 문득 자연만큼 정직한 게 뭐가 있을까 싶었다. 유난했던 열대야와 식을 줄 모르던 폭염은 한풀 꺾인다 싶더니 며칠 전부터 내리는 비에 아예 씻겨 사라졌다. 무렵 영어학원에서 은규를 픽업해 올 때였다. 주룩주룩 비 내리는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던 은규가 “할아버지, 밤 같아요.” 하던 말처럼 세월은 톱니바퀴였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서산까지 한 뼘도 더 남았던 오후 7시의 해님은 흔적마저 거두었고 대로변 빌딩은 사무실마다 전등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또 아파트 앞 근린공원의 짙푸르기만 하던 플라타너스의.. 더보기
노화(老化)의 장점 2021. 8. 14. 토요일 오전에 2차 백신 접종을 했던 터라 오늘 하루는 푹 쉬어야지 싶어 침대에 누워서는 핸드폰을 켰다. 즐겨 보는 유튜브 몇 편을 본 다음 며칠 전의 뉴스를 검색하던 중 좀 색다른 제목 하나가 내 눈에 쏙 들어왔다. 헬스케어 전문 인터넷 정보지인 코미디 닷컴(Kormedi.com)의 기사였는데 제목이 '노화가 주는 뜻밖의 장점 5'였다. "어느 소설가의 표현대로 젊음이 상이 아니듯 늙음은 벌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늙음을 벌로 여긴다."로 시작한 기사에서는 미국의 건강 정보 사이트 '웹엠디'의 글을 인용해 '노화(老化)가 주는 뜻밖의 장점'으로, 1. 일찍 일어남 ☞ 대체로 환갑이 넘으면 자연스럽게 일찍 일어나는 종달새로 변한다. 2. 편두통 감소 ☞ 매일 머리가 지끈지끈.. 더보기
어머니의 유산(遺産) 2021. 7. 30. 금요일 운동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대문 앞에 큼직한 스티로폼 박스 하나가 놓여있었다. 박스에 붙어 있는 송장의 수신인 난에 내 집사람 이름이 적혀 있어 우리 집으로 온 게 맞다 싶어 집 안으로 들였다. 그제께는 수시로 대구의 막내 여동생으로부터 복숭아, 토마토, 호박, 고추, 오이, 생닭 등 여남 가지는 될 듯한 먹거리가 담긴 큼직한 택배 상자가 왔었는데 오늘 택배는 대구에 사는 누나가 여러 가지 버섯과 오이, 마늘, 고추, 머윗대 등 족히 대여섯 가지는 넘을 듯 많은 야채로 만든 장아찌였다. 6.7년 전까지는 봄이면 첫물의 상추와 부추, 미나리 등 봄기운을 듬뿍 머금은 갖가지의 야채를 신문지 한 장 한 장 따로따로 싼 후 차곡차곡 담은 택배 상자로 시작해 일 년 내내 앵두, 살구,.. 더보기
막상막하 2021. 7. 20. 화요일 햇살이 더 뜨거워지기 전에 좀 걸을 요량으로 찾은 양재천은 절정에 이른 듯 요란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군데군데 연둣빛을 감추었던 나무들은 어느새 짙푸름으로 갈아입고 있었고, 며칠 전부터 시원한 목청으로 노래 부르던 매미는 36℃∽38℃를 오르내리는 폭염을 경고하느라 목이 쉬도록 울어댔다. 걷는 듯 뛰고 있는 아스팔트는 이글이글거렸지만 어제 오후에 시원하게 퍼부었던 소나기 덕에 한결 풍성해진 양재천에서는 팔뚝만한 잉어들이 신나게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그런데 아지랑이가 피는 듯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곳곳이 거뭇거뭇했다. 도심의 인도에 시꺼멓게 눌어붙은 껌처럼 보이는 것들이 수두룩했다. 씹다 버린 껌처럼 보인 것은 짓이겨진 지렁이 사체들이었다. 소나기로 인해 땅속에 숨 쉴 공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