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빛 좋은 개살구였다.
2021. 11. 13. 토요일
참 아이러니하다 싶었다.
우리 나이로 68살이 되는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50대에는 마라톤을 시작해 오십 리 거리의 하프 마라톤을 이십여 차례 뛰고, 백 리 길도 넘는 풀코스 마라톤도 다섯 차례나 완주한 건강한 체력인데···, 2014년 9월 30일 우리은행을 정년 퇴임하곤 다음날 10월 1일 '정년 퇴임과 회갑'을 自祝하는 이벤트로 나 혼자서 서울을 출발해 고향 청도까지 근 400km를 열흘 동안 걷고, 2017년 10월 또 나 혼자서 속초를 출발해 부산까지의 해파랑길 520km를 열사흘 동안 걸었던 강철 못잖은 체력인데···, 10년이 넘도록 헬스장에서 가꾼 근육을 '2018년도 보건복지부 장관배 전국 실버 몸짱 대회'에 출전해 자랑한 근육맨이었는데···, 요즘도 주말에는 청계산, 구룡산 등 인근의 산을 맨발로 누비거나 서울 둘레길을 걸으며 면역력을 키우고, 평일엔 새벽마다 한 시간 이상의 온몸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뒤, 은규를 등교시킨 후 양재천을 걷고 시민의 숲에서 역기로 근력운동을 하느라 3시간씩 운동할 뿐 아니라 저녁에 또 9시 무렵부터 1시간 30분여 철봉과 평행봉을 할 만큼 건강한데…, 이처럼 건강과 체력에 자신만만해하던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놈이 내 예순일곱 번째 생일이었던 지난 10월 24일을 전후해 찾아와 괴롭히자 무릎을 꿇고 말았으니 내가 참 못난 놈이다 싶었다. 게다가 열흘이 넘도록 병원에 입원한 탓에 11월 11일에 맞는 42번째 결혼기념일까지 고놈한테 고스란히 빼앗기고 말았으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가도
하기사…
한창 팔팔한 이팔청춘들도 걸리고
세계 제일의 축구선수 중 한 명이라는 호날두도 걸리고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역사상 최초 흑인 대장 출신으로 미국 국무장관까지 역임한 ‘콜린 파월’이란 사람은 요놈에 져 사망하지 않았던가 생각하니 이놈은 세상천지 못 뚫는 게 없는 듯하다. 또 이놈은 공기조차 쉬이 못 드나드는 틈이라도 보이기만 하면 뚫는 것 같았다. 건강으로 아무리 높게 담을 쌓을지라도 느슨함, 방심, 자만 등 어떤 틈이라도 있으면 마음까지 뚫고 들어가는 지독한 놈이다 생각되었다. 이게 바로 업보일까?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인 내가 혼자 잘난 양 자만에 빠져 '설마 내가···' 하는 방심으로 가족들의 건강까지 위험에 처하게 만들고 말았으니···.
‘내가 죄인이다.’라는 후회와 함께 느슨하게 지냈던 지난날들을 반성해 본다.
지난 11월 3일이었다.
아침 식사와 등교 준비를 마친 은규를 학교에 데려다준 다음 돌아와 소파에 앉아 문자 하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0시가 가까워지는 시각이었다. 문자는 오지 않고 내 핸드폰에서 전화 수신음이 들려왔다.
폰을 집어 들자 액정에 뜬 ‘서초구 보건소’란 단어에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지난번엔 문자였는데…’
마음을 진정시키며 폰에 대고 말했다.
“네, 이석도입니다.”
“… 양성반응 … 동선 조사 … 치료센터…”
몇 마디만 들려올 뿐 머릿속은 하얘지면서 잠시 눈앞이 캄캄했다.
어제 내가 서초구 보건소에서 받았던 코로나 PCR 검사의 결과가 ‘양성’이란다.
아무것도 모른 채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집사람에게 다가가 방금 받은 코로나 검사 결과를 들려주자 평소에도 늘 자신의 건강보다 옆집과 아래층에 살고 있는 외손주들의 건강을 더 챙기는 집사람의 눈은 순간 초점을 잃은 듯 멍해지고…
나는 곧바로 우리 가족의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내 코로나 검사 결과를 알리면서 곧장 조퇴해 어린이집에 간 세은, 등교한 은규와 원준이를 하교시켜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먼저 검사를 받겠다며 집사람이 집을 나섰다.
서둘러 집을 나서는 집사람 뒷모습을 보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뭐가 잘못되었을까?
어디서 감염되었을까?
10월 중순까지로 기억을 꼼꼼히 되돌려 본다.
10월 16일 토요일, 집사람과 함께 원준이를 데리고 서울 둘레길 북한산 코스를 걸은 후 솔샘역 부근에서 점심식사.
10월 17일 일요일엔 나를 포함한 6명의 친구들이 하남 검단산을 산행한 후 점심을 같이 먹었지만 이후 10월 18일(월)부터 10월 23일(토)까지는 날마다 그러하듯 달리 간 곳 하나 없이 은규를 등교시킨 후엔 양재천을 걷고 양재 시민의 숲에서 운동하다 와서는 학교에서 돌아온 은규와 원준이의 공부를 봐주다 화요일과 목요일 은규의 영어학원 픽업한 게 전부인데…, 다만 운동 후 돌아오는 길에 오뎅을 파는 노점에서 오뎅을 두 번 사 먹었지만 그때 그 노점에 손님이라곤 나밖에 없었는데…, 그럼 10월 24일일까?
10월 24일은 내 생일날이었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했을 아래층의 원준네 식구와 옆집의 은규네 식구가 12시쯤 우리 집에 모여 외식하기로 한 양재역 엘타워에 위치한 ‘산들해’란 음식점으로 걸어서 갔다. 붐비기 일쑤인 주말이라 그런지 대기 인원이 가득했지만 미리 예약했던 덕분에 우리 가족 9명은 한가운데쯤 자리를 잡아 식사를 마친 후 다시 걸어서 말죽거리공원 등을 거쳐 집에 돌아와서는 손주들이랑 생일 케이크를 나눠 먹으면서 달콤한 오후를 즐겼다.
다음날인 25일, 월요일 새벽이었다.
일찍 일어나 여느 날처럼 스트레칭을 시작했더니 등근육이 좀 뻐근하길래 지난밤 철봉과 평행봉을 무리하게 했었나 보다 여기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등근육의 뻑지근함은 종일 지속되었다.
다음날 화요일, 26일 아침엔 등근육뿐 아니라 허리 근육까지 뻐근했다.
몸살이 시작되려나 보다 싶어 은규를 등교시킨 후 이비인후과에 가려다가 마음을 바꿔 차를 몰고 서초구 보건소에서 서초구 종합체육관에 마련한 ‘드라이버 스루 코로나 선별 진료소’로 가서는 코로나 PCR 검사를 받았다.
다음날,
10월 27일 화요일 09시 20분쯤 보건소로부터 검사 결과를 알리는 문자가 들어왔다.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싶었다.
‘내가 코로나에 걸릴 리가 있나…’ 싶었다.
그렇지만 기분 나쁜 근육통의 뻐근함은 사라질 줄 몰라 나는 동네에 있는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원장님께 조금 전에 받은 코로나 검사 결과가 ‘음성’이었음을 알린 후 내가 느끼는 근육통 등의 증세를 이야기했더니 원장님은 내 콧속과 목구멍을 살펴본 후 몸살기를 동반한 목감기라며 주사 한 대와 약을 처방해 주었다. 큰 차도가 없어 한 번 더 이비인후과에 들러 또 주사 한 대와 약 처방. 토요일엔 한결 나은 듯했다. 그런데 일요일
10월의 마지막 날, 31일 일요일 아침이었다.
좀 나은 듯하던 근육통은 사라질 줄 모르고 모든 게 귀찮은 아침이었다.
하루 푹 쉬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주 귀하신 분들과의 점심 모임이 있는 날. 일 년에 몇 차례씩은 만나 여행을 하거나 산행을 하는 내 딸들의 시부모님들이지만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탓에 2019년 송년모임을 함께한 이후론 한 사돈씩 따로 만나기만 했을 뿐 세 부부가 다 함께 모이지는 못했으니 근 2년 만의 중곡동 사돈 부부, 경기도 광주 사돈 부부 그리고 우리 부부의 점심 모임이다. 게다가 이번 모임은 내가 주선해 내겐 외손주이지만 그들에겐 친손주인 원준, 은규, 세은이를 내가 데리고 가기로 했으니…
팔당호 인근에 위치한 '석림옛집'에서 식사를 마친 후 경안천 습지생태공원에서 찬바람을 많이 쐬어서인지 집에 돌아왔더니 만사가 귀찮을 정도로 피곤했다. 그럭저럭 일요일 밤은 지나고…
월요일 아침의 컨디션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오전에 가까이 있는 내과를 찾아가 코로나 검사 결과와 이비인후과 처방 등을 이야기했더니 나의 콧속과 귓속, 목구멍 등을 살핀 후 청진기로 진찰을 마친 원장님 역시 몸살 기운 때문이라며 약을 처방하곤 링거 수액주사 한 대를 권했다.
링거 수액의 효과는 제트기 같았다.
근육통이 사라져 살만했다.
다 나은 줄 알았다.
그런데 근육통은 하루를 쉬지 못하고 다음날 11월 2일 다시 왔으니…
‘혹시…’ 하는 두려움과 걱정이 커지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나는 은규 곁에 가지 않으려 애썼다.
평소와 달리 은규의 등교를 집사람에게 맡긴 후 나는 KF 94 마스크를 착용한 채 가능한 작은방에 머물러 있다가 보건소로 가 PCR 검사를 받고 와서는 은규의 화요일 영어 수업을 하루 쉬도록 조치했다.
그리고 11월 3일 확진 통보.
11시쯤 보건소에서 전화로 10월 22일부터의 내 동선을 조사하는데 사소한 기억은 물론 전화통화 내역과 카드 사용 내역까지 총동원해서 날짜별, 시간대별, 분 단위로 조사를 했는데 위에 상술한 내 기억과 다름이 없었다.
추정되는 감염경로는 오직 하나였다. 최초 증상 발현일 이전인 24일에 있었던 양재역 음식점에서의 우리 가족 외식.
그러자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그곳에서 식사한 우리 가족 9명 중 손주 셋을 포함한 8명은 멀쩡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늘 건강하면서 운동을 가장 많이 하는 나만 감염된 이유는?
잠시 후 보건소에서 전화를 해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 물으면서 치료방법엔 '자가치료' '생활치료센터 격리 치료' '그리고 병원 이송 치료'가 있단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한 아파트에서 두 딸네가 바로 옆집, 아래층에 거주하면서 한집 살이 하듯 사는 생활이라 자가 치료 시엔 손주들을 포함한 우리 가족 모두가 위험해질 것 같아 생활치료센터 입소를 신청했다.
사나흘 전, 10월 31일 점심식사와 경안천 습지생태공원 산책을 함께한 사돈들께 카톡을 보냈다.
죄스러운 마음을 담아 나의 코로나 확진 사실을 알리면서 사부인들과 함께 즉시 검사받으실 것을 권했다.
다음은 11월부터 '사회적 거리두기'의 완화와 함께 시행되는 '위드 코로나'로 일 년 이상 굳게 닫혔던 모임을 재개한다고 하길래 꼭 참석하기로 약속했었던 네댓 개의 친구 모임 단톡방에도 다음의 글을 올렸다.
"빛 좋은 개살구였네요. 제가 어제 코로나 PCR 검사를 받았던바 양성반응이 나와 생활치료센터로 들어왔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혼자서 열심히 운동하면서 건강관리를 잘했음은 물론 백신도 두 번 다 맞았는데 '내가 왜?' 싶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우리 가족 중 다른 사람 특히 집사람이나 손주들이 아닌, 체력이 가장 좋은 내가 걸린 게 다행이다 싶기도 하네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외손주들이 너무너무 보고 싶지만 이것은 코로나 방역에 방심했던 나의 업보라 여기며 열흘 동안 마음공부나 하렵니다. 친구들은 모두 모두 건강관리 잘해 나처럼 못난 할비 되지 마세요."
수시로 영상통화를 걸어 "할아버지! 할아버지!" 외쳐대고, 춤추는 동영상까지 찍어 응원하는 외손주들 덕분에 내 기분은 제자리를 찾았으나 통화 속에 보이는 저, 한창 뛰어놀 놈들이 나 때문에 열흘 동안이나 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대문 밖조차 한 발자국 못 나가서 얼마나 답답하고 갑갑할까 생각하니 통화 중에 저절로 눈물이 맺혀 고개를 돌렸더니 할아버지의 심정을 아는지 손주들의 눈시울도 가끔 축축이 젖어있는 게 보였다.
10월 26일의 첫 검사에서는 분명 요렇게 '음성'이었는데···
격리 방을 배정받고 제반 생활수칙 등의 설명을 들은 후
방에 들어와 가방을 푸는데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의 모두를 바쳐 보살피고 지키기로 다짐한 외손주들을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위험에 빠뜨리고 말았으니
이런 못난 외할아버지가 있나 싶었다. 우리 가족 누구에게라도 양성반응이 나타나면 모두가 내 잘못이다.
나는 죄인이다 생각하니 눈물은 더 쏟아지고 아무도 없는 빈방 덕분에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8시 30분이 지나면서 가족 단톡방에 반가운 소식들이 하나씩 올랐다.
정원준 '음성', 정세은 '음성' , 송은규 '음성'
확진자 가족이라 긴급 검사를 신청했던 집사람과 손주들을 포함한
우리 가족 8명 모두의 1차 검사 결과는 모두 '음성'
"부처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고맙습니다."란 말이 저절로 나왔다.
갑자기 내가 걸려 다행이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체력이 약한 집사람이 아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외손주들이 아니라
체력과 건강이 가장 좋은 내가 걸려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회사일과 자영업, 가사 등에 바쁜 딸과 사위들이 아니라
한 열흘씩 비워도 표시조차 나지 않는 내가 걸러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모텔을 활용하고 있다는데 주변이 조용해서 무척 좋았다.
입소하자마자 한 공간에 설치된 X-Ray실에서 엑스레이를 촬영한 다음 저녁 식사까지 마쳤지만 다운된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아 고급 모텔답게 깨끗하고 넓은 욕조에 따뜻한 물을 채워 한참 몸을 담갔더니 한결 나은 듯했는데
푹신푹신한 더블 침대에 큰 大자로 누워 TV를 보고 있자니 여기서 푹 자고 나면 거뜬해질 것 같았다.
또 의료담당자들은 얼마나 친절하던지···, 온몸을 바람 한 줌 드나들 공간 없으리 만큼
방역복으로 꼭꼭 싸매고도 두어 시간마다 또는 입소자들이 요청할 때마다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오르내리며 케어하고 보살피는 모습은 내 눈에 천사였다.
맥없는 모습으로 세면도구와 옷가지 등으로 가방을 채우고 있는 내게 다가온 집사람이
"당신은 워낙 건강해서 금방 나을 테니 아무 걱정 마시고 푹 쉬시면서 이 책으로 마음공부나 하세요."
하면서 가방에 넣어준 한마음선원 대행 큰스님의 「한마음 요전」
친구 모임 단톡방에 올린 내 글을 읽은 한 친구가 생활치료센터에 있지 말고 병원에 가면
한 번만 맞아도 되는 국산 혈관주사가 있다며 병원 이송을 요청하라면서 내게 보내준 카톡
끼니때마다 나오는 도시락이 얼마나 푸짐하고 맛나던지···
집에서 먹는 집밥보다 훨씬 낫다 싶었다.
친구의 좋은 정보를 쫓아 11월 4일 저녁 병원 이송을 신청했더니 두말없이 "OK" 하면서
119 이송차량을 비롯해 모든 이송 준비를 하길래 금방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자정이 될 때까지 치료센터 담당자들이 달라붙어 내 주거지와 가까운 서울 강남지역 병원부터
수용 가능한 병실을 찾았으나 강남 아니 서울 시내는 물론 경기지역에도 빈 병실이 없었다.
이대로 4일 밤은 지나가고 11월 5일
몸살 기운 같은 컨디션을 감기약 비슷한 약으로 이틀을 보내고서야 나는 알았다.
푹 쉬고 있으면 저절로 나으리라 믿고 있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10시쯤 병실이 나왔다며 이송 준비해 내려오라는 연락이 오고
나는 간밤에 준비해 두었던 가방을 들고 이송차 탑승.
가락동에 위치한 국립 경찰병원으로 간단다.
대여섯 평 남짓한 1인실로 투명 커튼 형태의 중간문이 음압병실과의 공기를 차단하고 있다.
1인 음압병실이 배정되자마자 혈액 3 대롱 채취 및 X-Ray 촬영. 혈압, 체온, 혈당, 산소포화도 체크 등은 진짜 병원에 왔음을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담당 주치의가 전화를 했다. 혈액검사에서 염증 수치가 좀 높게 나왔고, X-Ray 판독에서는 가벼운 폐렴기가 확인되었다면서 예정하고 있는 치료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치료는 다음날부터 시작하는데 코로나 치료는 우리나라의 셀트리온에서 개발한 '렉키로나'란 혈관주사이고, 코로나 바이러스는 피를 굳게 하는 성질이 있어 6,7일 동안 복부에 항응고제 주사를 맞아야 하며, 염증 수치가 좀 높은 편이라 최고의 항염증 치료제인 스테로이드 혈관 주사를 하루 한 대씩 맞아야 한다며 본격적인 치료는 내일부터 시작된다면서 '렉키로나' 주사의 부작용을 이야기해 주었다. 잠시 후 주치의께서 다시 전화를 했다. 담당과장님과 상의했더니 나의 코로나 증상 최초 발현일은 첫 검사를 받았던 10월 26일로 봐야 해서 이날을 기준으로 하면 열하루나 지난 반면 당초 계획한 '렉키로나' 주사는 단 한 번의 투약으로도 효과가 70% 이상이 되지만 이는 최초 증상 발현 후 7일 이내에 맞을 경우라면서 나에겐 맞지 않다며 내겐 AZ에서 수입한 혈관 주사제로 치료하겠단다. 다만 이 주사는 5일 동안 하루 한 대씩.
그때부터 즉시 시작한 치료는 이랬다.
항응고제 복부 주사(1일 1회, 7일)
항염증 치료제 스테로이드 혈관 주사(1일 1회, 7일)
AZ에서 수입한 코로나 치료제 혈관 주사(1일 1회, 5일)
그리고 식염수 혈관 주사(1일 1회, 7일)
07시 30분 아침 식전, 위산 분비를 억제하는 '오메드정' 알약 한 알 경구투약
아침, 점심, 저녁 등 매 식사 30분 후에는 두 가지의 알약을 경구 투약하는데 하나는 호흡기 질환에서 기침 및 객담 배출 곤란 증상을 완화하는 '코데닝정' 한 알, 나머지 하나는 점액 용해 작용과 객담 배출을 개선하는 '뮤테란 캡슐' 한 알.
그리고 매일 06시, 11시, 16시 혈압, 체온. 산소포화도 체크, 혈당은 06시 하루 한 번.
또, 날마다 08시를 전후해 혈액검사를 위해 세 대롱의 피를 뽑고,
09시쯤이면 이동식 X-Ray로 병실에서 가슴 X-Ray 촬영.
'음압기'란? 실내 공기의 압력을 외부보다 낮게 만들어 병실 내부의 바이러스가 밖으로 나갈 수 없게 하는 장치로
감염력이 강한 호흡기 치료 시에는 반드시 있어야 하단다. 하지만 하루 24시간 내내 가동하는 데다 적잖은 소음이 발생하는 탓에 많은 입원환자들이 밤잠을 못 이룬다며 간호사가 내게 잘 때 또는 너무 시끄럽다 여겨질 때 사용하라며
귀마개를 줬는데 나는 가는귀가 좀 먹은 덕(?)에 열흘 동안 귀마개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도 꿀잠.
경찰병원으로 이송되자 내 자신에 대한 걱정과 근심은 저절로 사라졌다.
외손자를 비롯한 '우리 가족들의 無事'가 유일한 기도일 뿐 나머지는 사그라들면서 몸도 마음도 편해졌다.
병실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으니 할 일도 없어 스트레칭 또는 낮잠 아니면 책 읽기···
참 희한하다 싶었다.
하루에 적어도 10,000 보 이상을 걸은 다음 역기를 들고 철봉과 평행봉에 매달려야 살아있음을 느끼는 내가 하루에
100 보도 걷지 않은 채 기껏해야 대여섯 평밖에 안 되는 병실에서 24시간을 보내는데도 갑갑함이 전혀 없고 답답함도
전혀 없었으니 道 닦는 기분이었다. 하루 종일 열 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있자니 마치 묵언수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정갈하고 맛나던지 퇴원하면 생각날 것 같았다.
은규 아빠와 엄마가 데리러 온 차를 타고 퇴원했다.
'아, 행복하다.' 싶었다. '이런 게 바로 행복이구나.' 싶었다.
몸은 그다지 크게 힘들지 않았지만 마음은 꽤나 힘들었던 10박 11일.
난생처음 입원한 병원에서 나는 정말 많은 것을 깨닫고 배웠다.
화상 통화 때마다 촉촉해지는 외손주들의 눈길에서는 한없는 그놈들의 사랑을 보았고
그놈들의 모습이 보이면 시도 때도 없이 저절로 젖어드는 내 눈길로 가족의 소중함을 보았다.
불행으로만 여겼던 이번의 고난에서 나의 참 행복을 깨닫고 우리 가족들을 위해
이제 나는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터득한 것 같았다.
앞으로 더 멋진 할비가 되리라 다짐도 했다.
우리나라의 의료 수준과 의료인들의 정성은 기대 아니 상상 이상이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물 흐르듯 진행되는 부드럽고 열정적인 의료서비스는 내게
금방 나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었고, 입원해 있는 동안 내내 하루 한 번 이상은 꼭 전화를
해서는 몸 상태 등의 문진 후 오전 검사의 결과를 알려주던 주치의의 따뜻한 목소리는 신뢰였다.
요즘처럼 엄중한 시기에 온몸을 방역 수단으로 감싼 백의천사들의 따뜻한 친절함은 친절을 생명으로
여기는 금융기관에 근무하는 동안 밝고 따뜻한 서비스를 체질화하기 위해 아침마다 롤-플레잉을 했었던
내 눈에는 그들의 서비스가 은행원보다 따뜻하면 따뜻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은 듯 보였다.
언제부턴가 나는 세금 고지서를 받을 때마다 왠지 수탈당하는 느낌이었는데
올해는 그동안 냈던 세금 중 적잖은 금액을 돌려받은 기분이다.
외손주들이 두 팔 벌려 달려드는 집에 도착하자 나는
진짜 진짜 행복에 빠지고 말았다.
집사람과 함께 곰곰이 나의 감영경로를 추측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9명 중 8명은 멀쩡한 대신 가장 강건한 나만 걸렸으니 앞으로 뒤집고 뒤로 뒤집어도
지난 10월 24일에 있었던 내 생일 점심 외식은 아닌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어디서 감염되었을까?
평소 나의 운동 모습을 자주 보는 집사람이 양재천과 시민의 숲에서 운동하는 내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틀림없이 당신은 운동하다 감염되었을 거야. 운동할 땐 호흡이 깊어져 무증상 확진자가 좀 떨어져 있어도
더 위험하다고 내가 마스크를 쓰라고 그렇게 말해도 당신은 야외에서 하는 운동이라 괜찮다면서
또 답답하다며 덴탈 마스크조차 안 쓰잖아요. 내 말만 좀 들었어도 이번 난리는 없었을 텐데···"
"그러게 말이요. 다 내 잘못이요. 앞으로는 운동할 때도 마스크 철저히 착용할게.
그런데 나는 매일 철봉, 평행봉, 역기를 맨손으로 했으니까 어쩌면 철봉 등에
묻어 있던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게 아닐까 싶다. 아니면
'위드 코로나'란 분위기에 휩쓸려 남 먼저 사돈 모임을
주선하고 친구 모임에 참석을 약속한 만큼
느슨해진 내 마음, 방심의 틈을 벌리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숨어들었든지."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액땜일 거야"
살기 위해 코로나 백신을 맞고
죽기도 하는 세상, 부스터샷의 부작용을
좀 심하게 겪었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鼻) 수난 시대 (0) | 2021.11.30 |
---|---|
코로나 완치 그리고 일주일 (0) | 2021.11.21 |
도랑 치고 가재 잡고··· (0) | 2021.10.22 |
작지만 큰 행복 (0) | 2021.10.18 |
코로나의 선물 (0) | 2021.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