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점 풍경
-이석도-
붉은 등불이 희미한 정육점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생각에 잠긴 돼지머리 하나.
좁은 독방에 갇혀 앉은 자리에서 먹고 쌌던 지난날
태어나자마자 꼬리와 이빨이 잘리고 거세까지 당하며
십 년도 넘는 자연 수명에 이제 겨우 여섯 달 살았는데…
쇠갈고리에 꿰여 항정살, 목살, 삼겹살 등으로
갈가리 찢기는 제 몸뚱어리를 내려다보며
아무 말이 없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노을 가득 담은 바랑을 지고 탁발 나선 老僧이
정육점 들어서며 울리는 청아한 목탁소리와 독경이
위로였을까? 빙그레 미소짓는다.
하지만, 이내
자꾸만 자신의 구멍마다에 돈봉투를 꽂고는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 올릴 인간들이 떠올라
그의 빙그레 미소는 슬픈 미소로 변한다.
(2017. 11. 24.)
˚ 색즉시공 (色卽是空): <불교> 현실의 물질적 존재는 모두 인연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서
불변하는 고유의 존재성이 없음을 이르는 말. 반야심경에 나오는 말.
˚ 공즉시색 (空卽是色): <불교> 본성인 공(空)이 바로 색(色), 즉 만물(萬物)이라는 말. 만물의
본성인 공이 연속적인 인연에 의해 임시로 다양한 만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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