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11. 일요일
오디 따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출발해야 할 시간 7시가 다 되어 1층에 사는 딸네로 갔지만 은규는 아직 꿈나라에 있었다.
얼마나 깊이 잠들었던지 살며시 안고 나와 시트에 앉혀도 천지를 모른다.
쌔근쌔근 잘도 자는 우리 은규, 보기만 해도 행복 해진다.
보라는 시험이 있어 출근한다니, 내가 운전하는 차에는 집사람과 은규, 그리고 은규 아빠만 태워 출발.
카카오내비가 시키는 대로 내곡 분당 고속화도로를 탔다. 성남시청을 지나 대원 IC에서 새로 뚫은 고속화도로에 올라 한참을 달리자 내비는 경기 광주 JC에서 얼마 전에 개통한 고속도로를 타란다. 6km쯤 달렸을까?
동곤지암 IC 표시판이 보이자 이제 나가란다.
동곤지암 IC에서 300여 m쯤 광주시 곤지암읍 건업리.
광주 사돈께서 7년 전 야산에 매입해 묘목을 뽕나무 심어 가꾸신 농장
6월이 되면 오디들이 뽕나무에서 까맣게 익어가고, 한 여름이면 누에들이 꼼지락 거리는 산골짜기 오디 농원.
사돈은 주업이 부동산 임대업이면서도 오디 체험 농장을 병행해 오디 생과와 오디 엑기스를 발효해서 만든 식초, 누엣가루를 생산하는 게 힘이 들기도 하지만, 곳곳에 취나물, 두릅 등 각종 봄나물이 자라는 농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참 좋단다.
작년까지만 해도 3번국도 경충대로를 달려서 곤지암에서 건업리 쪽으로 접어들어 오면 1시간 30분은 족히 걸렸던 곳이다. 그런데 차량 전용 고속화도로와 제2 영동고속도로 덕분에 오늘은 7시 넘어 출발해서 8시도 안 되어 도착했으니 채 40분도 안 걸렸다. 1,100원의 통행료가 들긴 했지만 1시간을 번 셈이었다.
큰길을 벗어나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자 농막이 보였지만 그곳엔 벌써 10대도 넘는 차들이 주차해 있었다.
우리 차가 농장 안으로 들어서자 광주 사돈 내외와 먼저 도착한 중곡동 사돈 부부가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4월 중순 함께 남도여행을 다녀온 뒤 따로따로 뵙기는 했지만 세 부부가 한 자리에 하기는 두 달만이었다.
은규는 차에서 내자마자 "할머니" 소리치며 달려가더니 중곡동 안사돈 품에 안겼다.
원준이와 세은이도 함께 왔다면 "할아버지" "할머니"라 소리치며 광주 사돈들께 달려가 온갖 재롱을 다 피울 텐데….
엄마 아빠가 해마다 친한 대학 동기들과 함께 떠나는 MT가 올해는 1박 2일 강원도 청평 여행이라 여길 따라갔으니…
6월의 오전 시간인데도 한여름 못잖게 햇볕이 따끈따끈해지고 있었다.
모두들 햇볕이 더 뜨거워지기 전에 오디를 따는 게 좋다며 바구니와 일회용 장갑을 챙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은규 손을 잡고 농막을 나섰다.
은규에게 자연을 가르치고 싶었다.
닭장으로 데려가 울음소리를 들려주고 맨땅에 낳은 계란도 보여주자 은규는 닭 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좋아했다.
그러자 개구리도 보여주고 싶었다.
작년에 왔을 때, 가까이 가자 퐁당퐁당 앞다퉈 물에 뛰어들던 개구리가 생각나 웅덩이가 있는 골짜기로 갔다.
하지만 조용했다.
개구리가 한 마리도 없었다.
물 한 방울 없이 바싹 말라버린 웅덩이엔 잡초만 무성했다.
그 많던 개구리들이 물을 찾아 마른 웅덩이를 떠난 모양이었다.
쩍쩍 갈라진 저수지의 바닥을 뉴스로 보면서도 별로 실감하지 못했는데…
운동 후 샤워 할 때는 샤워기를 마냥 틀어놓고 물을 펑펑 썼었는데…
뽕나무마다 까맣게 익은 오디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나뭇가지를 살짝 흔들기만 해도 쏟아지는 우박처럼 우두두 오디가 떨어졌다.
조심조심 하나씩 하나씩 따야 했다.
한 개 따서는 바구니에 담고 또 한 개 따서는 입속에 넣고…
얼마 전 전화통화에서 광주 사돈께서는 가뭄으로 올해는 뽕나무에서 오디가 익으면서 햇볕에 타는 듯 마르는 바람에 맛이 영 시원찮다면서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오디는 생각보다 실했다. 수분도 많고 달콤했다.
며칠 전 살짝 내린 비가 보약이 되었던 모양이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은규도 할머니, 외할머니, 아빠를 따라다니면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오디를 따서는 자기 입에 한 개 넣고는 또 한 개 따서 할머니 입에 넣어드리고, 또 한 개 따서는 외할머니 입에 넣어드렸다. 그리고 또 한 개를 따서는 내 입에 넣다가 보라색으로 물든 고사리 손을 바라보더니 "이보라" 하며 엄마의 이름을 부르면서 엄마 색이 묻었단다.
무성한 뽕나무들에 가려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농장 여기저기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농장 여기저기에은 체험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하긴 작년의 주말에는 50여 명씩 왔다더니…
100명이 넘을 때도 있었단다.
우리가 오디를 따기 시작한 지 2시간쯤 되었을까?
점심 준비가 다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오디를 가득 담은 박스를 들고 내려왔다. 우리 가족이 딴 게 5kg 박스 3개, 중곡동 사돈댁도 3박스.
점심시간이 되어 그런지 체험자들도 자기들이 따서 담은 오디박스를 몇 개씩 들고 내려왔다.
그러자 광주 안사돈은 일일이 저울에 달고는 kg당 5천원씩 계산해 받았다.
오디를 현장에서 kg당 1만원씩에 팔고 있으니 오디를 딴 품삯으로 kg당 5천 원 차감한 셈.
많이 딴 체험자는 4시간 만에 20kg를 땄단다.
5,000원 × 20kg = 100,000원
4시간만에 10만 원을 번 셈이었다.
점심상이 차려졌다.
은규는 세림이 누나와 따로 식사를 하고…
우리 세 부부와 은규 아빠는 식탁에 앉아 막걸리를 곁들여 농장에서 뜯은 싱싱한 야채로 쌈밥을 먹는데,
뒤의 식탁에서 삼겹살을 구워 소주잔을 기울이며 맛나게 점심을 먹던 체험자들 중 한 분에 내게 오더니 인사를 했다.
같이 온 체험자 중 광주 사돈의 지인이 게신데, 그 분으로부터 내가 우리은행 정년퇴임자란 걸 들었다면서 자신도 우리은행을 정년 퇴임했다며 인사했다. 통성명 후 퇴임일을 따져보니 그는 내가 정년 퇴임한 2014년 다음 해 2015년에 퇴임했기에 나보다 한 살 적었다. 같이 근무한 적이 없는 데다 한일은행 출신인 나와 달리 그는 상업은행 출신이라 서로 안면은 없었지만 또래들의 이름을 나열하다 보니 다 같이 아는 직원들은 참 많았다.
잠시 그쪽 자리로 옮겨 고소한 삼겹살을 안주로 소주잔을 주고 받다 보니 어느새…
점심을 막 끝냈을 때였다.
청평으로 MT를 갔던 세라네가 두 친구들의 가족과 함께 곧 농장에 도착한단다.
잠시 후 엄마 아빠를 따라 원준이랑 세은이가 도착했지만 우리은 떠나야 할 시간.
형이랑 세은이와 놀고 싶어하는 은규에게 돌아갈 채비를 시키자 광주 사돈께서 바쁘게 움직였다.
중곡동 사돈 차와 우리 차에 오디가 가득 들은 큼직한 5kg 박스를 몇 개씩이나 실으시느라…
자연 속에서 신나게 반나절을 보낸 은규는 차를 타자마자 금방 쌔근쌔근.
내일부터 두어 달 동안은 아침마다 마실 오디 생즙.
생각만으로도 다시지는 입맛.
다음 일요일에 또다시?
사돈 오디농장의 농막
농막에서 바라본 오디나무들
서울과 분당 등에서 오디 따기 체험을 오신 분들이 담소를 즐기고…
우리 은규는 어느새 지렁이를 발견하고는…
까맣게 익은 오디가 주렁주렁 달린 뽕나무들
난생처음 까맣게 익은 오디를 따는 송은규
집사람도 오디 따기에 여념이 없고
잘 익은 오디를 골라 먹는 송은규
할머니 품에 안겨 오디를 직접 따먹기도…
할머니 사랑을 독차지한 은규
외할머니와 장난도 치고…
체험자들이 따온 오디를 kg당 5천 원씩 계산하시느라 바쁘신 사돈
배 고픈 은규는 원준이 형아의 고종사촌 동생인 세림이 누나와 함께 먹는 점심이 엄청 맛있나 보다.
중곡동 사돈 내외와 그들의 아들이자 은규 아빠 병돈, 광주 사돈 내외, 그리고 우리 부부
사돈들과 함께 먹는 점심이랑 막걸리는 역시 별미…
오디 따기 체험 오신 분들도 삼겹살을 구워 맛난 점심에 한잔의 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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