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14(금)
오전 8시
승합차 한 대가 양재 IC에서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섰다.
나와 집사람,
그리고 내 쌍둥이 큰탈 보라의 시부모이신 중곡동 사돈 부부,
또 내 쌍둥이 작은딸 세라의 시부모이신 경기도 광주 사돈 부부.
이렇게 6명을 실은 승합차는 남으로 남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평소 자주 만나 잘 지내는 덕분에 2013년 9월 방송된 EBS의 『新 사돈 풍속도, 절친 사돈 되는 법』이란 프로에 1시간 남짓 함께 출연했던 우리 6명이 그해 연말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던 중 '함께 해외여행을 가기로' 뜻을 모았다.
그리고 그달부터 한 부부당 매월 10만 원씩의 회비를 납부해 적립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의 연말 모임에서 2017년에 해외여행을 가기로 결정을 하고, 적립금이 12백만 원 돌파되던 올 3월 초에 다시 만나 남한산성을 함께 산행하면서 해외여행을 4월 14일부터 18일까지 중국 태항산 4박 5일의 일정으로 확정했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계약금을 송금해 하나투어 상품으로 계약을 마치고, 6명의 여권사본까지 보냈는데….
아뿔싸!
사달이 났다.
사드배치 문제로 중국에서 롯데마트의 영업을 중지시키는 등 反韓 감정이 치솟으면서 중국인의 우리나라 관광이 전면 중단되고, 중국에 관광여행을 간 우리 국민들도 구박이나 불편 등 큰 낭패를 당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한 주 동안 고민을 거듭했다.
이런 판국에 우리도 구태여 중국에서 돈을 쓸 필요는 없다는데 의견이 일치되었다.
태항산 여행은 취소를 했다. 하지만 딱히 갈 만한 곳이 없었다.
동남아의 웬만한 곳은 사돈들이 한번 이상은 다녀온 데다가, 유럽 쪽이나 북미 쪽 등 멀리 가자니 어린이집 다니는 손주들을 데리고 와서는 딸 부부가 퇴근할 때까지 돌봐주어야 하는 우리 부부로서는 5일 이상 집을 비우기 곤란하기에…
트라이앵글 3개국, 대만 등 동남아 몇몇 곳을 검토하다가 국내 쪽으로 눈을 돌리고 말았다.
뒷자리에 앉은 집사람과 두 분의 사부인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잠시도 쉬지 않고 하하 호호 깔깔깔…….
핸들을 잡은 중곡동 사돈의 능숙한 운전솜씨로 천안 JC에서 천안논산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정안알밤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다시 Go go∼
1차 기착지인 선운사로 달렸다.
선운사 IC의 빨간 꽃이 잔뜩 달린 동백나무 가로수를 지나면서 광주 사돈들은 결혼 담을 비롯해 옛 추억을 줄줄이 꺼냈다.
선운사가 있는 전라북도 고창은 광주 사돈 부부 모두의 고향이기에 고향 이야기가 끝없이 나왔다. 두 분의 고향 모두가 선운사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란다. 사부인은 국민학생 시절 소풍을 선운사로 가기도 했었는데 그때는 선운사가 얼마나 크게 느껴졌는지 모른단다. 선운사가 세상에서 제일 큰 절인 줄 알았단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었다는 명승 고찰 선운사
들어가는 길목이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단풍으로 무척 아름다운 사찰이 선운사다.
봄날에 만발한 벚꽃을 만났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할머니 삼총사
선운사 대웅보전의 부처님께 가족의 행복과 손주들의 건강을 간절히 발원하는 집사람과 중곡동 사부인
천 년의 명승 사찰 선운사 대웅보전 앞에 선 절친 사돈들
오랜만에 보는 할미꽃. 예전에는 내 고향의 강변이나 논둑 등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
는데, 요즘은 약초로 쓴다며 너도나도 채취하는 바람에 아주 귀한 야생화가 되었다.
아름다운 할미꽃 정원을 가진 장어집이라 그랬을까?
아니면, 절친들과의 점심이라 그랬을까?
말 그대로 풍천장어가 별미였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나무 숲이 아름다운 선운사에서의 기도와 정원의 할미꽃이 아름답던 풍천장어집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우리는 오늘의 종착지인 보길도로 가기 위해 해남 땅끝마을로 쌩쌩∼
드디어 땅끝마을 선착장에서 보길도와는 보길대교라는 다리로 연결된 섬, 노화도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땅끝마을 선착장에서 탄 노화도행 배는 이렇게 텅텅 비었다.
노화도 수산시장에서 맛본 해삼이랑 문어는 어째 그리 맛있던지…….
노화도에서 보길대교를 거쳐 도착한 보길도.
보길도(甫吉島)
완도에서 서남쪽 23.3km 떨어진 섬이다.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시조작가였던 고산(孤山) 윤선도가 제주도로 가던 중 자연경관에 감동하여 오랫동안 머물면서 연못을 만들고 세연정이란 정자를 지어 '어부사시사"와 같은 훌륭한 시가문학을 이루어낸 유적지로 명승 제34호로 지정된 윤선도 원림이 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보길도란 명칭은 옛날 영암의 한 부자가 선친의 묏자리를 잡기 위해 풍수지리에 능한 지관을 불렀는데, 지관이 이 섬을 두루 살핀 뒤 "십용십일 구(十用十一口, 甫吉)"라는 글을 남기고 갔단다. 그래서 이글의 뜻을 풀기 위해 월출산 선암사 스님에게 내용을 물었더니 "섬 안에 명당자리 11구 있는데 10구는 이미 사용되었고, 1 구도 이미 쓸 사람이 정해졌다."라고 풀어 보길도라 불렀다고 한다.
보길도에서 처음 찾은 곳은 보옥리에 있는 공룡알 해변이었다.
보옥리는 중곡동 사돈의 친한 친구의 고향이란다. 은규 아빠가 어리던 시절에 이곳으로 가족여행을 오기도 했단다.
30여 년 전 그 시절 사돈이 친구집에 놀러 가면 친구의 어머니는 한양에서 아들의 소중한 친구가 왔다며 청정 바다에서 나는 온갖 해산물로 된 진수성찬은 물론이고 산길을 걸어 나룻배를 타고 노화도에 있는 떡집에까지 가셔서 떡을 만들어 오시곤 했단다. 몇 해 전 친구는 하늘나라로 갔지만 친구 동생은 아직 고향을 지키고 있다면서 사돈은 친구 동생을 만나러 동네로 들어가고, 우리는 공룡해변으로 갔다. 공룡해변이라기에 해변에 공룡알 화석들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는 않았다. 해변에 공룡알처럼 둥글게 생긴 큼직한 돌들이 많아 붙어진 이름일 뿐이란다.
공룡알 해변에서 나온 우리는 숙소인 해돋이 펜션이 있는 예송리로 이동하고…
나와 중곡동 사돈, 광주 사돈 등 남자들은 105호,
집사람과 광주 안사돈, 중곡동 안사돈은 106호.
이곳 예송리에도 중곡동 사돈의 知人(다른 친구 동생)이 있었다.
예송리 바다에서 전복양식업을 한다는 知人은 사돈의 연락을 받자마자 나와서는 우리를 횟집으로 안내하고…
중곡동 사돈은 은규아빠가 어리던 시절 보길도로 휴가를 와서는 이 해변에서 텐트를 치고 묵었단다.
30여 년 전 중곡동 사돈이 처음 왔을 때의 이곳 해변엔 공룡알 닮은 돌들이 정말 아름답고 많았었단다.
공룡알 해변에는 이렇게 예쁜 꽃들의 천국도 있었다.
절친 친구가 된 사돈과 사돈의 사돈들. 꽃보다 아름다운 할머니들…
보길도 예송리 부근에 있는 횟집의 전복회, 얼마나 맛있던지…, 입에 살살 녹았다.
파도가 쓸릴 때마다 음악을 들려주는 작은 몽돌이 아름다운 보길도 예송리해변에서 맞이한 일출
예송리 해변에서 일출을 보고는 몽돌의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다시마와 톳을 뜯고 기념사진도 한 컷
중곡동 사돈의 친구 동생이 자신의 전복 양식장에서 바로 건졌다면서 가져온 큼직한 전복들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한 뜻이 되어 채취한 톳과 다시마랑 전복을 손질하는 중
전복회는 상에 올릴 새도 없이 현장에서 썰 때마다 쏙쏙 입으로 직행하고…, 상에는 전복을 푸짐히 넣은 누룽지탕의 아침
조선 중기 문신이며 시인인 孤山 윤선도가 머물면서 '어부사시사'를 남긴 세연정 입구에서도 기념사진 한 컷
세연정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세 친구들: 원준이 할매, 세은이 외할매, 은규 할매.
보라의 시부모님이자 은규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이신 중곡동 사돈
세연정 관광으로 보길도에서의 일정은 끝이 났으니 이젠 청산도다.
보길도에서 청산도로 가려면 먼저 차로 노화도의 동천항으로 가서 배를 타고 완도로 간 다음 완도에서 다시 배를 타고 청산도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완도에서는 4월 14일부터 해조류 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데다 청산도에서는 일 년 중 최고의 성수기인 슬로 걷기 축제가 4월 1일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완도에서 청산도로 가는 배에 사람은 미리 예약해 두었지만 차량은 선착순 승선이라니 미리 가야만….
예약한 배는 15일 오후 2시 50분.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가득 찬 완도 여객선 터미널은 완전 도떼기시장이었다.
선착순 승선을 위해 차를 대기장소에 세워두고는 수산시장으로…
보길도를 떠나 노화도 동천항에서 완도로 가는 배를 타고…
완도항 부근에 있는 어시장에서 생선회를 뜨고, 갑오징어회도 뜨고 멍게까지 사서는
어시장 뒤편에서 먹는 재미와 맛은 또한 …
청산도 가는 퀸청산호. 바로 우리 팀들이 타야 할 배를 배경으로 할매들 한 컷
4월 1일부터 한 달 동안 열리는 슬로 걷기 축제로 청산도를 찾는 관광객과 차량은 배마다 가득가득
차량 승선에 맞추어 30분 당겨 우리도 승선, 청산도로 가는 배를 갈매기들도 따라오고…
청산도?
산, 바다, 하늘이 모두 푸르러 청산(靑山)이라 이름 붙여진 작은 섬, 전남 완도에서 19.2km 떨어진 다도해 최남단 섬으로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청산여수(靑山麗水) 또는 신선들이 노닐 정도로 아름답다 하여 선산(仙山)이라 부르기도 했단다. 푸른 바다, 푸른 산, 구들장논, 돌담장, 해녀 등 느림의 풍경과 섬 고유의 전통문화가 어우러져 세계로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1981년 12월 23일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 12월 1일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인정되었다고 한다.
청산도에 도착하자마자 찾아간 권덕리 바닷가의 숙소 마루펜션.
남자들은 101호, 집사람과 안사돈들은 전망이 더 좋은 201호.
광주에서 직장을 정년 퇴임한 부부가 섬에 들어와 새로 지은 펜션으로 40여 일 전에야 오픈했다는데 바로 바닷가로 바다가 훤히 내다 보이는 데다 아담하고 깨끗해서 좋았다. 미리 예약을 해두었기에 망정이지…, 완도에서 본 청산도를 찾는 관광객을 생각하니 이처럼 깨끗하고 조망이 좋은 펜션을 잡은 건 적잖은 행운처럼 느껴졌다.
펜션에서 산마루를 넘고 들길을 걸어 서편제 촬영지에도 가고…
구들장논 관광도 갔다.
오갈 때마다 집사람과 사부인들의 자리에서는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가는 곳마다 사돈들의 걸쭉한 농담에 하하하 호호호 깔깔깔을 뿌려댔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형제처럼 자매처럼…
정말 정말 보기 좋고, 보는 사람 기분도 좋았다.
오픈한 지 40여 일밖에 되지 않은 우리가 묵을 바다마루 펜션, 바로 앞에 확 트이게 보이는 바다가 참 좋았다.
펜션에서 보이는 이 바닷가 산마루를 넘어가면 서편제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 나온단다.
산길을 따라 30분을 걸으면 닿을 수 있다는 펜션 주인장의 말을 따라 산마루를 넘으면서 고사리도 땄지만,
예상했던 30분을 지나서도 걷고 또 걸어야 했다.
소녀 시절로 돌아간 집사람 |
그리고 경기도 광주 사부인, |
중곡동 사부인의 여유 |
1시간을 더 걸어서야 겨우 도착했지만 서편제 촬영지 입구에서 만난 돌담은 무척 정겹다.
유채꽃 아름다움에 한 시간 이상 걸어 생긴 피로가 어느새 녹아버리고, 은규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그저 행복
우리의 중곡동 사돈과 광주 사돈
하지만, 중곡동 사돈과 광주 사돈의 관계는 며느리들이 쌍둥이 자매일 뿐인 사돈의 사돈…
영화 서편제의 한 장면을 함께 흉내도 내보면서…
세계 중요 농업유산에 등재된 청산도 구들장논. 산비탈 같은 곳에 흔히 볼 수 있는 다랑논이나 내 고향의 천수답과
거의 같은 모습의 논이지만, 물이 잘 빠지지 않도록 물논바닥에 구들장처럼 돌을 놓고 그 위에 흙을 쌓아 논을 만들
어서 구들장논이라고 한단다.
구들장논 구경을 나와서도 쑥쑥 잘 자란 쑥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집사람과 사돈
청산도에서의 첫날밤은 저물어 가고…
집사람과 안사돈들은 맛난 저녁상을 준비하느라 분주했지만, 덕분에
맛난 회에 싱싱한 생선으로 끓인 깔끔한 지리탕 그리고 보길도에서 딴 톳무침 등등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즐거운 여행과 행복한 삶을 위하여 건배도 하고…
저녁식사를 마친 나와 중곡동 사돈은 바다낚시까지
한 마리도 잡지는 못했지만 즐겁기만 했던 밤낚시
4월 16일, 마지막날의 새벽이 밝았다.
창문 밖이 온통 뿌옇게 보였지만 사돈이 보이지 않았다.
언제 나갔는지 광주 사돈은 벌써 큼직한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며 바닷가 바위에서 톳을 따고 있었다.
나도 질세라 바닷가로 갔더니 바위에 파릇파릇 붙은 아기 손바닥만 한 해초들이 보였다. 살짝 씹어먹었더니 짭짤한 게 제법 먹을 만했다. 파래가 아니면 다른 식용 해초려니 싶어 무작정 땄다. 그런데 그 해초를 본 사부인은 못 먹는 거라면서…
여러 해초로 만든 반찬과 누룽지탕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문자가 들어왔다.
"해상에 짙은 안개로 인하여 선박 운항이 첫배부터 대기 상태입니다. 참고 바랍니다."
안개로 배가 출항하지 못하고 있다는 메시지였다.
우리가 탈 배야 9시 40분 출항이니까 늦어도 오전에야 뜨겠지…
펜션 주인들과 커피를 나눠 마시며 이별인사를 했다.
그런데 펜션 주인 부부도 아침 일찍 완도로 나간단다.
바깥주인의 회갑기념으로 17일 호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면서 16일은 광주에서 자고 17일 일찍 인천공항으로 가서 출국해야 된다면서 이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는 청산도항으로 차를 몰았다.
청산도항에는 커다란 배 한 척이 정박해 있었지만 대합실 안팎에는 인파들이 가득하고 , 관광버스를 비롯해 승선을 기다리는 차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차 앞에서 기다리는 차가 얼추 120대도 넘어 보였다.
우리가 청산도 구석구석에 뿌린 하하 호호 깔깔깔이 물보라를 일으켜 해무가 생겼을까?
청산도 바다는, 그 어렵다는 사돈관계를 허물어 버리고 절친한 친구가 된 우리를 보내기 싫어서일까?
주민들도 처음 겪는다는 청산도항의 해무는 정말 대단했다.
우리가 출항할 시간인 9시 40분이 되어도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안개는 여전했다.
단 한 척의 배도 출항을 못했단다.
우리는 부둣가를 오가며 맛난 음식을 먹고, 막걸리도 한잔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또 새벽에 한 자루나 딴 톳을 다 같이 길거리에 앉아 다듬기도 하고…
집사람은 사부인들과 함께 인근 산에 올라 달래를 캐기도 했다.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6명 모두가 고스톱을 치기도 했으니…
초조함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별로 무료하지도 않았고, 크게 걱정되지도 않았다.
오후 시간이 흘러가자 천 명도 넘는 승선 대기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6시가 가까워지자 오늘은 출항을 못하니 숙소를 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관계자들이 대기자들에게 전날밤 묵었던 숙소에서 하루 더 묵도록 권했다 하지만 부두 주변의 숙소 비용은 치솟고…
평소의 청산도항 마지막 운항시간인 6시 30분이 다가오고, 우리는 출항 못하는데 따른 대비책을 마련하려던 차.
바다가 열렸다.
대기하던 배가 승선을 완료해 7시에 출항을 했다.
8시가 다 되어서는 완도에서 급파한 선박 2대가 도착해 우리도 출항할 수 있었다.
승선한 배의 승객실은 말할 것도 없고 매점과 갑판 위까지 손바닥만 한 빈자리가 없을 만큼 꽉꽉 채운 배였지만 웃음꽃이 피었다. 통로에 선 채로 먹는 컵라면은 또 어찌 그리 맛있는지…, 컵라면이라곤 거의 먹지 않던 집사람도 통로에 쪼그리고 앉아 먹는 컵라면이 얼마나 맛있었던지 다 먹고 내게 넘겨주는 빈컵엔 국물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다.
청산도를 떠나는 날의 아침은 안개로 뒤덮였지만…
언제나 부지런한 광주 사돈은 벌써 바닷가로 나가 톳을 따느라 여념이 없다.
덩달아 나도 바닷가에 나가 바위에 야채처럼 파릇파릇 붙은 해초를 신나게 땄지만…
자욱한 안개로 떠나지 못한 채 청산도항에 발이 묶인 완도행 배
출항을 기다리면서 한 자루나 되는 톳을 손질하는데 길가는 관광객들은 어디서 그렇게 많이 땄냐고 부러워하고…
사돈지간 6명이 그늘에 둘러앉아 고스톱도 한판 치고…
해는 저물어가는데 청산도항은 열릴 기색이 없으니 수 천명 관광객들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 배 안에서 먹는 컵라면의 맛이란? |
먹어 보지 않고서야 감히 어찌......) |
오후 9시가 조금 지나서야 완도항에 내렸다.
오전 9시 40분 정시에 청산항을 출항했더라면 해남에서 두륜산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또 대흥사에도 들렀다가 서울에 도착했을지도 모를 시간인데 이제 완도 도착….
처음에는 해남으로 가서 하룻밤을 더 묵고, 다음날 내일 두륜산 케이블카 관광을 한 후 대흥사에 들렀다 가는 것으로 의견이 일치되었다. 그러나 다음날의 일기예보는 "전국에 비"란다.
운전대를 잡은 사돈은 서울로 향해 페달을 밟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속에 실린 행복은 청산도항의 해무보다 더 짙고 많았다.
가는 곳마다 '하하 호호 깔깔깔'을 뿌렸는데도 아직 남아 있었다.
우리 세 집은 평소에도 자주 만나서 같이 식사를 하고, 산행을 하면서 서로 어려운 줄 모르고 지내고 있었지만, 온 산하가 연두색으로 물들어가고 곳곳에 진달래, 벚꽃 등 온갖 봄꽃들이 만발했을 때, 함께 다니면서 향기로운 꽃내음을 맡고, 함께 맛난 음식을 먹고, 또 한 방에서 함께 잠을 자고, 함께 일어나서 함께 움직이는 여행이었기에 광주 사돈이 말씀하신 것처럼 서울을 떠날 때는 50% 사돈, 50% 친구였던 우리들은 돌아올 땐 사돈 20%, 친구 80%가 되어 있었다.
모두들 해외여행 가지 않기를 잘했단다.
어떤 여행, 누구와의 여행보다 알차고 즐거웠단다.
다음에 계획하고 있는 지중해 크루즈여행은 한번 더 생각을 해봐야겠단다.
머잖아 다가올 여름에는 서해안의 섬으로 체험여행을 가잔다.
아니 여기저기 국내여행을 더 자주 가잔다.
기왕이면 손주들도 모두 데리고 가잔다.
우리 집이 있는 양재동에 왔을 땐 새벽 2시가 넘었다.
우리 집에서 주무시길 바랐지만 굳이 집으로 가겠다며 짐을 챙겨 나섰다.
광주 또는 중곡동 자택에 도착하시면 3시도 훨씬 넘을 텐데…
2박 3일의 남도여행.
아니, 2박 4일이 되고 만 절친 사돈들의 남도여행은 행복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날 저녁 무렵 광주 양사돈께서 큰 비닐보따리 2개를 들고 오셨다.
보따리 한 개는 우리 것, 또 한 개는 중곡동 사돈 것이란다.
싱싱한 두릅이 가득가득 들어 있는 보따리였다.
한숨 자고 오디농장에 갔더니 두릅이 벌써 많이 피었더라면서.
많이 피긴 했지만 첫 순이라 아직은 보드라우니 데쳐서 먹으면 맛있고, 술안주로도 최고라면서 술병을 꺼내셨다.
작년 가을에 강원도에서 직접 채취한 송이버섯으로 담근 송이주라면서,
같이 한잔 하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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