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7.27. 토요일
내게는 어머니와 다름없는 분이시다.
오늘은 나를 아들처럼, 집사람을 며느리처럼, 내 딸들은 손녀처럼
챙기시는 분을 모시고 남한산성의 시원하고 아늑한 계곡에서
차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원준이 가족은 아빠 친구네 돌잔치에 가느라 참석치 못했지만
출산을 채 두달도 안 남긴 보라는 만삭 기념사진을 찍고
병돈이와 함께 식당으로 왔다.
한 때 국내 최고 재벌 중 한 분이셨던 회장님의 사모님.
그분과의 인연은 1990년부터 시작되었으니 24년이나 되었다.
은행거래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까지도 우리 가족을 살펴주시는 분이다.
명절은 물론 내 생일과 집사람의 생일에는 꽃에 선물까지 챙기시는
엄마같은 분이다. 내가 이사를 할 때면 이삿짐을 풀기도 전에 찾아 주신다.
세라가 원준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기뻐하시며
따님과 함께 백화점에서 미역과 쇠고기를 사들고 오셨다..
내가 지점을 옮겨 부임하면 늘 은행으로 동양란을 들고 찾아와 축하해
주시곤 하더니 세라가 가게를 오픈했을 때도 화분을 싣고 오셨다.
2011년 크리스마스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80 중반의 사모님이 몸소 대구까지 문상을 오셔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IMF때 내가 은행일에 힘들어 할때는 미국으로 나를
데려가 가족들(동생, 따님)과 함께 골프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집사람이 미국여행을 하지 못한 걸 아시고는 미국에 데려가
한 달여간 곳곳을 동반여행을 했었다. 집사람은 지금도
그때를 추억하며, 고마움을 얘기해곤 한다.
그리고 내딸 보라가 버클리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는
일부러 찾아가 랍스타 등 맛난 요리를 사 먹이고
데리고 잔 다음 날에 기숙사로 데려다줄 때는 친구들과
나눠 먹으라며 피자를 한 보따리나 챙겨준 자상하신 분이다.
기흥과 제주도의 별장, 골프장 등에서도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을 쌓게 해주셨다.
돌아보면 사모님과의 24년간 좋은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변함없는 성실함과 진정성에 대한
사모님의 신뢰가 있었고 따님을 비롯한 가족까지
언제나 우리를 가족처럼 맞아 준 덕분인 것 같다.
소중한 인연과 함께 한 오늘의 남한산성 나들이,
추억의 한 페이지에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