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3. 월요일
우리 부부를 태운 중곡동 사돈의 애마는 중부고속도로를 거쳐 제2 영동고속도로에 올랐다.
한 시간쯤 달려 08시 무렵 동곤지암 TC 부근에서 경기도 광주 사돈 내외가 승차하면서 울진 2박 3일 여행은 시작되었다.
모든 학교의 수업이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엄격했던 1년을 제외하고는 코로나 시국에도 일 년에 한두 번은 모여 가벼운 걷기를 마친 후 식사를 함께하긴 했지만 밤을 함께 보내며 가족애(?)를 다지는 국내 나들이는 보길도와 청산도 등 2박 3일의 남도여행과 2018년 사량도 2박 3일 여행 후 처음이다. 사량도 여행을 마치면서 2020년에는 함께 중국 또는 동남아 쪽으로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했건만 '코로나'라는 역병 탓에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국내여행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는데 2박 3일의 짧은 국내여행이지만 지금이라도 함께 떠날 수 있어 참 좋았다.
아침 식사와 잠시의 휴식을 위해 두어 번 휴게소를 들리는 등 제2 영동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 그리고 국도와 꼬불꼬불한 산길 등을 근 5시간을 달렸는데도 차 안의 모두는 피곤해 하기는커녕 모처럼의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조금은 들뜬 모습이었다. 게다가 출고한 지 1년밖에 되지 않는 새 차인 데다 9인승의 공간에 6명만 승차해서 그런지 아니면 중곡동 사돈의 운전 솜씨가 좋아 그런지 카니발의 승차감은 너무너무 좋았다.
서울을 출발한 지 근 5시간 만에 도착한 경북 울진의 백암산 구주령
이번 여행은 은규가 엄마랑 단 둘이서 6월 3일 오늘부터 6월 8일까지 호주로 여행을 떠나는 덕(?)이다.
평소 은규에 매여 지내는 우리 부부를 위해 은규 아비가 은규가 없는 동안 여행 다녀오시라며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의 연수원을 예약해 주었는데 경북 울진의 백암온천 지구에 있는 'LG생활연수원'이다.
도착해서 보니 연수원이라기보다 차라리 호텔이었다.
기념품숍은 물론 편의점에 한식당, 양식당, 자율식당 등 식당이 3곳이나 되고
직원 또는 직원 가족을 위한 곳이라 그런지 모든 게 무척 저렴하다. 한식당의 식사로 갈비탕과 전복죽 등 모두가
외부의 절반인 7천 원, 서빙이 없는 뷔페식의 자율식당의 한 끼는 4천 원이며, 일반 식당에서 적게는 5천 원
또는 6천 원씩 받는 소주와 맥주는 한 병에 2,500원씩이라니 거의 공짜인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다 무료로 운영되는 수영장과 매끌매끌한 온천수가 일품인 온천탕도 있었으니···
배정된 방에 짐을 푼 다음 둘러본 백암온천 단지는 썰렁했다.
이십여 년 전 찾아왔을 때 인파가 넘치던 거리엔 인적 찾기가 힘들고, 예약하느라 애를 먹었던 호텔들의 대부분은 사진처럼 지붕이 찢기고 창틀이 뜯긴 채로 폐업한 지 오래다. 몇 개월 전, 한때 가족여행의 성지로 불리기도 했던 백암온천 '한화리조트'가 누적되는 적자로 폐업했다는 기사를 읽을 때만 해도 단순히 '국내 관광지가 좀 어렵구나' 싶었는데 이곳에서 본
실상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한때는 수십, 수백 억 원은 했을 멀쩡한 호텔들 대부분이 폐허 상태로 문을 닫았다.
아이들로 넘쳐나던 골목은 적막강산이 된 지 오래고, 한때 1,000명에 육박했던 100년 역사의
초등학교가 학생이 없어 폐교되고, 꽤 큰 동네가 절반도 더 빈집이 된 내 고향처럼
지방소멸도 모자라 관광지 소멸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 손주들이 살아갈 우리나라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후포항 어시장에서 싱싱한 동해의 맛을 즐긴 후 숙소로 돌아왔지만
몇 년 만에 맞이하는 절친 사돈들의 밤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며
최연장자로 우리 사돈 모임의 좌장이신 광주 바깥사돈께서
울진의 名酒인 금강송주를 들고 오셨으니 한잔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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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일, 둘째 날
이번 여행에서 차량 봉사와 가이드(?)를 자임하신 중곡동 바깥사돈께서 말씀하신
오늘 스케줄은 성류굴 - 금강소나무숲 - 불영계곡 및 불영사
눈을 뜨자마자 백암산에 올라 밤새 금강송이 내뿜은 피톤치드와 맑은 산소를 들이키며 맨발 걷기를 즐기고···
아침 식사 후 중곡동 사돈의 애마로 도착한 성류굴
천연기념물 제155호로, 2억 5,000만 년 전에 생성된 석회동굴로 석회암이 만든 기기묘묘한
절경도 좋은 볼거리였지만 입구에 즐비한 상가들의 상인들 인심이 얼마나 후하던지···
울진의 소금강이라고도 불리는 불영계곡 그리고 신라 진덕여왕 때 창건된 불영사
불영사 경내에 있는 밭엔 수확을 기다리는 감자가 빼곡했지만
곳곳에 활짝 핀 하얀 감자꽃을 보는 순간 농촌 출신인 내 마음에 소복 입은 여인을 마주친
느낌이 들면서 詩想 하나가 떠올라 詩 한 편을 썼으니 꿩 먹고 알 먹은 셈이다.
여행 후 집에 돌아와 퇴고를 몇 번이나 해야 했지만 ···
감자꽃
얼마나 기다렸을까
얼마나 기뻐했을까
하지만
설렘도 잠시
핏줄 못 잇는다고 똑똑
밥만 축낸다고 뚝뚝
목이 잘린다
얼마나 외로울까
얼마나 아플까
피어 슬픈 꽃
(2024. 6. 6.)
2일 차 일정도 무사히 마친 축하를 겸해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낼 순 없다며
광주 바깥사돈께서는 어디서 사셨는지 치킨과 오징어 등 마른안주를 듬뿍 가지고 오신 덕에
오늘 밤도 30도짜리 금강송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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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 마지막날
수평선을 뚫고 오르는 해님을 보고 싶은 한마음으로
새벽 4시에 눈을 뜬 우리 모두는 애마 카니발에 몸을 싣고 30분을
달려 후포해수욕장 해변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금방 해님이 솟을 듯 유난히 새빨간 하늘은 후포해수욕장이 아니라 조금은 더 북쪽이다.
바다에서 곧장 솟는 일출을 보고 싶지만 해 뜰 북쪽은 얕은 언덕과 건물에 막혀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금방 해가 솟을 것 같아 그곳으로 갈 시간도 안 되어 어쩔 수 없었으니···
언덕 위 한 점이 반짝반짝
광채가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아기의 눈망울이 반짝이듯 해가 솟기 시작했다.
살짝 고개를 내비치는 해님이 그렇게 맑고 영롱할 수가 없었다.
순간 '해맑다.'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람의 모습이나 자연의 대상 따위에 잡스러운 것이
섞이지 않아 티 없이 깨끗할 때 쓰는 '해맑다.'라는 말이 이래서 생겼구나 싶었다.
티 하나 없이 솟고 있는 맑은 해님을 보고 있자니 절로 마음이 경건해졌다.
멋진 일출을 보고 와서는 금강송 빽빽한
백암산의 맑은 공기를 온몸에 가득 채운 다음 아침 식사와
퇴실 절차를 마친 후 청송으로 Go! Go!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 중 하나로 청송 주산지를 꼽는 집사람은
아름드리 왕버들나무들을 가슴
에 품은 주산지의 아름다움에 연신 탄성을 토하고···
청송에서 주산지와 주왕산을 가슴에 담은 후 상경길에
광주 사돈 내외분을 모셔드리기 위해 경기도 광주시 건업리에 있는 사돈의 농장으로 갔더니
빨갛게 잘 익은 산딸기와 보리수가 얼마나 먹음직스럽던지···
농장 부근에서 저녁식사까지 마친 우리는 다시 서울로 향했는데 차속에서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내 쌍둥이 큰딸의 시부모님이신 중곡동 사돈 내외분과 쌍둥이 작은딸의 시부모님이신 광주 사돈 내외분 그리고 우리 부부, 이렇게 3쌍이 함께한 이번 울진에서의 2박 3일이 4∽5년 만의 여행이라 더 짧게 느껴진 걸까?
집사람이 여행을 준비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사돈이 무척 어렵다던데 저는 사돈들이 참 편해요."라고 하던데, 이렇게 별 부담 없이 잘 지내는 것은 15년의 세월 동안 서로 존중하면서 허물없이 지낸 덕에 우리 부부와 광주 사돈 내외, 우리 부부와 중곡동 사돈 내외뿐 아니라 사돈의 사돈 관계인 광주 사돈 내외분과 중곡동 사돈 내외분들이 지금처럼 좋은 사이가 된 것은 네 분 그들도, 쌍둥이 자매이면서 세상 최고의 절친 사이인 자신들의 며느리를 닮아가기 때문일까?
예전에는 '사돈은 부처님 팔촌만도 못하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사돈 간이 어려운 사이여서 먼 이웃보다 못하다고 여긴 적이 있고, '사돈집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라는 속담도 있을 만큼 사돈집 사이에는 말이 나돌기 쉽고 뒷간은 고약한 냄새가 나므로 둘 다 멀리 있을수록 좋다고 했었지만 세상이 변했다.
적국이었던 나라와 우방이 되고, 원수였던 사이가 화해를 통해 다시 친구가 되는 세상이다.
하물며 자식을 주고받은 사이, 한 아이를 함께 손자로 둔 사이가 사돈인데 무엇이 무서워 가까이 못하랴.
그런데, 내가 사돈들과 잘 지내는 걸 아는 주변의 사람들 중 "보기 참 좋다."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긴 하지만 "참 별나게 산다."는 둥 "사돈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둥 여전히 사돈과의 교류를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걸 보면 세상은 더 변해야 할 모양이다. 이들도 하루속히 마음을 바꿔 사돈들과 알콩달콩 재미있게 지내면 며느리와 사위들이 좋아할 텐데···, 손주들도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함께 볼 수 있으면 더 좋아할 텐데···
이런 면에선 사돈의 연을 맺은 이래 15여 년을 지내는 동안 수시로 갖는 식사 모임뿐 아니라 여행에선 집사람은 안사돈들과 한 방, 나는 바깥사돈들과 한 방을 쓰면서 온천욕을 즐길 땐 서로 등을 밀어줄 만큼 가까워졌으니 우리 절친사돈 삼총사는 복을 엄청 많이 받은 셈이다. 십수 년 동안 지금까지 숱한 만남에서 자루를 뒤집어 보이듯 있는 것 없는 것 다 보이면서 지내왔지만 얼굴을 붉힐 일 한 번 없었다. 대화 하나하나, 바램 하나하나, 걱정 하나하나뿐 아니라 추진하는 일들 하나하나 함께 좋아하고 함께 슬퍼하면서 자식 또는 손주를 위한 것이라면 아까운 것 하나 없이 좁쌀 만한 이견(異見) 하나 끼어들 틈조차 주지 않았으니 사돈을 어찌 남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싶다.
중곡동 사돈 내외분의 소망이 은규네의 행복을 바라는 우리 부부의 바람이요.
광주 사돈 내외분의 바람 또한 원준네의 행복을 바라는 우리 부부의 소망이다.
이렇듯 한 가지 소원으로 한 곳을 바라보는 우리 부부와 양쪽 사돈들, 3쌍이 아름답게 지내는 모습은 아들과 딸들은 물론 손주들에게까지 선한 영향을 미친다고 확신하고 있는 우리 절친사돈 3쌍은 이번 여행이 짧았다는 아쉬움은 올 갑진년이 다 가기 전 한 번 더의 멋진 행복여행으로 달래자고 뜻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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