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7. 수요일
어둑어둑한 새벽 5시를 조금 넘은 시간에 집을 나섰다.
양재 시민의 숲 앞인 신분당선 매헌역으로 갔지만 곧장 되돌아 나와야만 했다.
강남역 행 첫차가 5시 42분에야 있다니 지하철을 3번 환승해 가면서 약속 장소로 가기엔 턱없이 늦어 마음을 바꿔 택시를 탔다. 강남대로와 강변북로를 달려 도착한 군자역 5번 출구 앞, 뻥 뚫린 새벽 도로 덕분에 30분도 채 걸리지 않은 셈이다. 약속 시간 6시까지는 10여 분쯤 남아 길가에 우두커니 서서는 새벽길 걷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데 "빵! 빵!" 경적을 울리면서 승합차 한 대가 내게로 다가왔다. 잠시 후 중국동 사돈 부부께서 환히 웃으며 차 문을 열었다.
오늘은 버섯 탐사(?)를 겸해 山에 가는 날.
나를 태운 사돈의 승합차는 서울 양양고속도로에 올라 동으로 동으로 달렸다.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을 완주했을 만큼 등산을 좋아하고 산을 잘 타시는 중곡동 사돈께서 몇 해 전부터 가을마다 강원도에 사는 친구와 함께 그의 마을 뒷산에서 직접 채취한 것이라며 송이버섯과 능이버섯을 조금씩 보내주신다. 이 향이 얼마나 좋은지 냄새만 맡고 있어도 마냥 행복하던지···. 게다가 내가 20대였던 어느 해, 나를 따라 내 고향에 가서는 난생처음 감자를 캤던 서울 태생의 은행 친구가 한 번씩 "물 맑고 공기 좋은 네 고향이 너무 좋더라. 이쪽저쪽 산에 와라바시(나무젓가락) 걸치고 턱걸이해도 되겠더라." 했을 만큼 깊은 산골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면서도 나는 버섯을 잘 몰랐다. 또 내 고향의 산에서도 송이버섯이 더러 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 아니라 20여 년 전쯤엔 청도읍 오일장에서 추석 선물용으로 송이버섯을 구입했었으면서도 지난 8월 청계산에서 노루궁뎅이 버섯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자연산 식용 버섯을 따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사돈께서 보내주시는 버섯을 받을 때마다 나도 자연산 버섯을 한번 따 봤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들곤 했다. 지난 9월 중순경 내 작은딸의 시아버지이신 경기도 광주 사돈과 내 큰딸의 시아버지이신 중곡동 사돈 그리고 나, 이렇게 사돈지간 세 명이 청계산에 올랐을 때였다. 산행 중 내가 한 곳을 가리키며 그 부근에서 노루궁뎅이버섯을 땄던 자랑을 하면서 하얀 버섯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을 이야기를 했더니 중곡동 사돈께서 능이 등 여러 버섯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곤 올 가을에는 버섯 탐사(?) 산행을 한번 하자고 하길래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좋다고 했더니 며칠 전 추석날 은규네 편으로 몇 가지의 버섯과 버섯 탐사(?)日을 알려 왔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이다.
두어 시간을 달리고 양양을 지나 도착한 설악산 한 줄기 기슭의 산골.
차에서 내려 바라본 강원도의 한 마을 뒷산은 예상만큼 높아 보이지는 않았다.
설악 줄기는 황금빛 익어가는 들판이 부러웠을까? 얼마 전까지 초록이었던 설악은 부드러운 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구석구석에 귀한 버섯 많이 숨겨 놓았으니 보물찾기 잘하는 자네가 다 찾아가시게.' 하는 듯 두 팔 벌려 반겼다.
가을의 설악은 들어서기도 전에 상상 속의 송이버섯 향이 내 머릿속까지 맑게 했으니···
드문 발길이 남긴 흔적을 따라 Go Go∼
지리산 종주를 몇 차례나 하신 안사돈에게 이 정도쯤이야···
족히 50∼60도는 됨직한 경사의 비탈
마침내 안사돈께서 발견한 첫 능이버섯
고사를 겸해 기념사진부터 한 컷
이런 행운이···
두 번째는 내가 송이를 발견했다.
경상북도 산골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자연산 버섯을 따 보기는커녕
자연 상태로 자라는 모습조차 제대로 본 적이 없다가 지난 8월 청계산에서
난생처음 노루궁뎅이버섯을 봤었는데
송이버섯 1킬로가 50만 원∼100만 원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귀한 자연산이라 비싸겠지만 키로에 수십 만원이라니 말도 안 된다 싶었다.
비싸도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겪어 보니 그게 아니었다.
길도 없는 깊은 산, 그것도 대부분 50도 이상의 비탈을 하루 종일
오르내리며 뒤져도 한두 송이를 찾을까 말까 했으니
얼마나 귀한 버섯인가 싶었다.
게다가 이런 귀한 버섯을 채취하느라
목숨까지 잃은 사람이 해마다 수십 명이라니 더욱더···
요게 그 귀하다는 송이버섯
산길을 한참 벗어나 경사도가 40∼50도는 될 듯한 비탈에서 자라는 참나무 숲
참나무 숲에서 발견한 능이버섯 군락
한 곳을 찾은 후 주위를 살폈더니 다섯 군데서나···
잠시 쉬는 시간에는 사부인께서 준비해 오신
간식과 커피를 즐기면서 서로 수확량을 자랑하고···
썩어가는 나무에 계단처럼 자라는 이 버섯은 무슨 버섯일까?
식용버섯일까? 독버섯일까?
맑은 가을 하늘이 만든 설악의 전경에 가슴이 뻥∼
눈 앞으로 당겨진 울산바위
파노라마로 촬영한 설악 풍경
설악의 한 곳에도 절기 잊은 철쭉은 피고···
이런 험한 곳을 오르내릴 때는
가끔 보도되는 버섯 채취하러 간 사람이 실종되었다는 뉴스,
실종 사나흘 만에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떠올랐으니···
성미 급한 설악의 나무는 벌써 가을 옷을 꺼내 입고 있었다.
수직에 가까운 절벽 틈에서 발견한 능이버섯
이때까지의 수확물 중 가장 큰 대물이었다.
하지만 기록은 깨지기 위해 있는 존재한다는 말을 증명하듯
길 아닌 비탈과 계곡을 따라 어렵게 하산하던 중 내 눈에 띈 능이버섯
활짝 편 내 손보다 큰 대물 중 대물
오늘의 장원이었다.
족히 50∼60도는 될 설악의 비탈을 오르내렸으니 무척 힘든 산행이었다.
6시간 반 동안 기껏 6km를 걸었으니 자주 걷는 평소 산행에 비해 서너 배는 더 힘들었지 싶다.
하지만 지쳤다 싶을 때마다 숨었던 모습을 드러내는 귀물(貴物}과 산행 내내 등에 멘 배낭에서 솔솔 새어 나오는
송이버섯 향은 세상에 어떤 피로회복제가 있어 이 만큼 좋을까 싶었다. 덕분에 힘듦보다 성취감과 행복이
훨씬 컸을 뿐 아니라 파란 가을 하늘 아래에서 산소호흡기의 공기보다 더 맑고 젛은 공기를
온몸 가득 채우면서 평소의 등산에서는 사용하지 않은 근육까지 총동원한 운동을
한 데다 사돈과 함께였으니 1타 3피, 아니 1석 5조의 산행이었다.
설악항
바닷가에서 싱싱한 생선회를 안주 삼아 알코올로 담근 보약으로 건배!
서울로 돌아오던 중의 서쪽 하늘
중곡동 사돈 부부와 함께한 오늘 내 가슴을 가득 채운 행복에도 색깔이 있다면
틀림없이 저 하늘처럼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색이겠다 싶었다.
정말 정말 행복한 날이었다.
송이버섯, 능이버섯
노루궁뎅이버섯, 싸리버섯, 그리고 몇 가지의 이름 모르는 버섯.
누루궁뎅이버섯과 싸리버섯은 사돈께서 따신 것인데도 제게 주셨다.
새벽에 집을 나서면서 등에 멘 30ℓ 배낭을 가리키며 이 배낭을 버섯으로
가득 채워 올 테니 기대하라고 집사람에게 큰소리쳤었는데, 큰소리는 허풍이 아니었다.
사돈 부부의 수확물도 적지 않았지만 오늘은 내가 장원이란다.
송이버섯 2개밖에 되지 않지만, 능이버섯은 꽤 많았다.
벌써 내년 가을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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