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5. 수요일
어린이날 아침은 여유로웠다.
원준이와 은규가 오지 않기에 늦잠을 즐길 수 있어 좋을 줄 알았더니 왠지 허전했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안마의자에 드러누운 채 멍하니 시계를 바라보는데 오늘따라 시곗바늘이 너무 느릿느릿 움직이는 듯했다. 이대로 누워 있다가는 내 몸도 저 시곗바늘처럼 축 늘어지겠다 싶어 곧바로 일어나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생수 한 통만을 꽂은 쌕(Sack)을 허리에 차고 양재천으로 향했다.
봄비 치고는 많이 내린다 싶었던 간밤의 비바람이 대청소를 했나 보다.
하늘은 가을만큼이나 파랗고, 맑은 공기는 깊은 산속 못잖게 신선하면서 달콤했다.
연둣빛 천지가 된 양재천 변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봄볕을 즐기고 있었다. 손을 꼭 잡은 채 걷는 노부부, 다정한 애인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중년 부부, 앞서거니 뒤서거니 질주하는 자전거들···. 지난해 초부터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코로나 염병이 만든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일 년이 넘도록 여행은 고사하고 바깥출입조차 마음 편히 하지 못한 사람들이 눅눅해진 마음을 봄볕에 말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학교도 쉬고 어린이집도 쉬는 어린이날이라 그런지 엄마 손 아빠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도 꽤 많았다. 징검다리 위에서 엄마와 함께 잉어에게 먹이를 주는 아이, 아빠와 함께 잠자리채를 높이 들곤 노랗게 물든 유채꽃 사이로 나비를 쫓아다니는 아이, 엄마 아빠와 함께 잔디밭에 쪼그려 앉아 풀잎을 헤집으며 네 잎 클로버를 찾는 아이들··· 모두의 얼굴에는 행복이 잔뜩 묻어 있었다.
여느 날처럼 양재천 무논쯤에서 징검다리를 건너 시민의 숲 쪽으로 향했다.
영동 3교와 보행교를 지나서는 흙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깍! 깍! 깍! 깍!
갑자기 까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평소 자주 듣는 까치 소리가 아니라 다급함이 듬뿍 묻은 울부짖는 소리였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삼십 미터쯤 떨어진 아스팔트 보행로에서 나이가 좀 많을 듯 보이는 어떤 남자가 길옆 비탈의 한 벚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바로 그 벚나무에서 까치 한 마리가 숨넘어갈 듯 울부짖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궁금했다. 남자에게 다가가 까치가 왜 저렇게 난리인지 물었더니 그분은 손가락으로 까치가 울부짖고 있는 벚나무와 그 아래의 풀숲을 번갈아 가리키면서 이야기를 했다. 조금 전에 길을 걷던 중 까치 새끼 한 마리가 날지 못하는지 폴짝거리며 아스팔트 길로 내려오길래 위험하다 싶어 풀숲으로 올려 보내기 위해 잡으려 했더니 어미 까치가 깍깍거리며 자꾸만 공격을 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단다.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였다. 벚나무 아래 잡초 속에서 새 한 마리가 폴짝폴짝거리며 나오는데 까치 새끼였다. 뒤뚱뒤뚱 폴짝거리는 모습이 정말 날지 못하는 아기처럼 보였다.
어려서 아직 못 나는 걸까? 날지 못할 만큼 어리다면 어떻게 여기까지는 왔을까?
아니면 엄마 따라 날아왔다가 벚나무에서 떨어지면서 날개를 다친 걸까?
아스팔트 옆에서 뒤뚱이듯 폴짝거리는 모습이 너무 위험해 보였다.
저렇게 폴짝이다 아스팔트 위로 들어서면 십중팔구 달리는 자전거 바퀴에 목숨을 잃을 텐데···
오늘은 공휴일인 데다 날씨까지 좋아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이 엄청 많겠다 싶어 새끼 까치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새끼 까치 곁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때 갑자기 들려오는 까치의 울부짖음. 고개를 숙이며 자세를 낮추는 순간 내가 쓴 모자를 뭔가가 스치듯 지나갔는데 섬뜩한 느낌이었다. 어미 까치의 공격이었다. 지켜보던 남자분이 윗옷을 벗어 흔들며 공격을 막았지만 어미 까치는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다. 머리 위를 날아다니며 울부짖는 어미의 소리가 얼마나 애처롭던지···. 새끼를 잡아서 아스팔트에서 뚝 떨어진 풀숲으로 옮기고서야 어미의 소리는 잦아들었다.
문득 시골 고향에서 겪었던 어릴 적의 날들이 떠올랐다.
해마다 봄만 되면 우리 집 마당에는 여남 마리의 노란 병아리가 있었다.
삐약삐약 거리며 어미 닭을 졸졸 따라다니는 노오란 병아리들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먹이 한 입 먹고 물 한 모금 마시며 하늘 한 번 쳐다보는 병아리의 앙증맞은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나리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 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틈만 나면 학교에서 배운 동요를 부르며 병아리를 쫓아다니면 어미 닭은 제 새끼를 잡아가는 줄 알고 날개를 치켜든 채 달려드는 게 재미있어 장난 삼아 병아리를 잡는 시늉을 하다가 종아리를 쪼이기도 했었는데 요놈의 까치들도 우리 토종닭 못잖게 모성애가 강하구나 싶었다. 말 못하는 동물조차 저렇게 제 새끼 지키기에 몸을 사리지 않는데···
순간,
최근 들어 매스컴을 자주 달구는 뉴스들이 떠올랐다.
어린이집을 비롯해 곳곳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 어린 아기만 집에 남겨둔 채 부모가 몇 날 며칠씩이나 집을 비워 아이가 아사한 아기 방기(放棄) 사건, 한두 해 전 발생해 항소심이 진행 중인 의붓아들 살해, 몇 달 전 발생한 구미의 3세 여아 사망 사건, 3개월 아기의 온몸 골절 그리고 걸핏하면 일어나는 자녀 동반 자살 등등···, 하루가 멀다 하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사건들이 지면(紙面)을 채운다. 인두겁을 썼다고 다 인간이 아니란 것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제 자식을 죽이거나 학대하는 사건의 뉴스가 들릴 때마다 두려움이 인다. 나날이 심해가는 인명 경시 풍조에 시도 때도 없이 곧 말세가 닥친다는 혹세무민을 일삼는 사이비 종교집단의 말대로 정말 말세가 오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이러고도 우리 인간들이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말할 수 있을까 싶어진다.은혜를 저버리는 사람을 '금수만 못한 인간'이라 칭하듯 어린이를 학대하는 사람은 '까치보다 못한 인간'으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어진다.
까치보다 못한 인간이 없는 세상, 그런 세상이 그립다.
우리 손자들에게는 그런 세상을 물려주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