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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꽃샘추위

2021. 2. 17. 수요일

입춘을 지나면서 이젠 봄이 오나 싶었던 날씨가 다시 추워졌다.

영상 14도까지 오르내리던 지난 주말의 기온이 오늘은 영하 10도까지 곤두박질친 것이다.

두세 달 머무르던 겨울이 떠나기 싫은 모양이다. 아니 인간들의 변해버린 품성을 꿰뚫어 본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싸움박질 좋아하는 인간들·

'내가 옳네··· 네가 옳네···', '네 땅이 넓네··· 내 땅이 넓네···'

핑곗거리만 생기면 우르르 직접 총칼을 들고 뛰쳐나가 나라의 명운을 걸고 싸운다.

그런데 핑곗거리가 없을 때도 조용히 있지를 못한다. 핑곗거리가 없을 땐 스포츠란 미명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싸움을 붙인다. 승리한 자에겐 큰 부와 명예를 안겨주는 대신 사생결단으로 싸우길 원한다. 질 때는 지더라도 혼신을 다해 싸우길 바란다. 특히 화끈한 마무리를 좋아한다. 설령 경기가 중반까지는 싱거웠다 할지라도 막판에 어느 한 쪽이 피투성이가 되면 사람들은 열광한다. 하지만 경기 내내 피 튀기게 싸웠다 할지라도 막바지에 점수 관리 또는 포기 등으로 경기의 맥이 빠지면 사람들의 함성은 이내 야유로 변하고 만다. 싱겁게 경기를 끝낸 선수는 두 번 다시 초청하지 않으려 한다.

 

수천 수만 년을 인간들과 함께한 겨울이 어찌 모르리···.

그래서일까? 

두세 달 머물렀는데다 갈 때가 되었지만 겨울은 선뜻 떠나지 못하고 있단다.

더 설쳐댈 힘은 고사하고, 더 있을 명분도 머뭇거릴 핑곗거리도 하나 없건만 떠나지 못하고 있단다.

이대로 지금 휑하니 가버렸다가는 사람들이 올 연말에 다시 불러주지 않을까 봐 어제는 하얀 눈까지 한 번 더 뿌렸단다.

오늘처럼 양재천이 꽁꽁 얼 만큼 춥게 하는 건 이제 곧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질 텐데 혹시 사람들이 아쉬워할까 봐 정을 떼기 위해서란다. 사람들이 똑똑히 기억할 수 있도록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 발을 동동 굴릴 만큼 차디찬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겨울의 하직 인사 중 하나라면서. 

 

두세 달 머물다 가는 겨울도 가는 날까지 이렇게 소임(?)을 다하려 애쓰는데···

한 갑자 넘는 세월을 훌쩍 넘긴 채 머물고 있는 나도 가는 그날까지 소임(?)을 다해야 겠다.

해마다 초청 받는 겨울과는 달리 한번 가면 다시 올 수 없으니, 내 곁 모두가 미소로 추억할 수 있는 작은 흔적 몇 개쯤은 남기고 싶다.

내 집사람에겐 괜찮은 남편이었다는 흔적.

내 두 딸과 사위들에게는 행복 키워준 아빠의 흔적.

우리 원준, 은규, 세은에겐 사랑 넘쳤던 외할아버지 흔적 등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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