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이 온통 노랗다.
4월 중순까지만 해도 만발한 벚꽃과 조팝꽃이 하얗게 물들였던 양재천 변을 그들이 사라지자 노란색이 점령한 것이다. 겨우내 하얀 비닐이 꽁꽁 숨겼던 강변 둔치는 노란 유채꽃 세상이 되었고, 유채꽃에 사람들의 관심을 빼앗길 새라 황매화와 민들레, 씀바귀는 산책로를 따라 얼굴을 활짝 내민 채 노랗게 웃고 있다.
양재천의 봄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미처 몰랐다.
노란색과 연두색의 궁합이 이처럼 잘 맞는 줄 상상도 못 했다.
파릇파릇 돋은 새싹들의 연둣빛이 노란색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마치 잘 그린 한 폭의 풍경화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의 선물(?) 덕분에 작년 봄부터 평일 걷는 코스가 되어버린 영재천 변을 걸었다. 알에서 나온 지 며칠 되지 않는 올챙이들이 꼬물꼬물 떼 지어 헤엄치는 무논을 지나 징검다리를 건너서는 시민의 숲 쪽으로 유턴해 걷고 있었다. 양지바른 강 언덕 곳곳에 샛노랗게 웃는 얼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유채꽃만 예뻐하지 말고 제발 자기들도 좀 쳐다봐 달라는 손짓인 듯 연신 몸을 흔들어댔다.
애기똥풀꽃이었다.
며칠 전의 일이 떠올랐다.
돌봄 교실을 마친 은규를 데리고 집으로 오던 중이었으니 오후 2시 30분쯤이었다.
등하교 때마다 나와 함께 공원길을 걸으면서 원추리, 비비추, 옥잠화, 돌단풍, 바위취 등 보이는 식물들의 이름과 특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 은규가 손가락으로 샛노란 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할아버지, 퀴즈예요. 이건 무슨 꽃?”
“은규똥풀꽃”
“땡! 장난치지 말아요.”
“노오란 꽃 색깔이 아기 똥이랑 닮아서 애기똥풀꽃인데, 은규도 애기 때 응가를 하면 꼭 저렇게 노란색이었으니 '은규똥풀꽃'도 되잖아.”
“근데, 할아버지 애기똥풀꽃에 독(毒 ) 있는 거 알아요?”
“뭐, 독이 있다고···, 설마···”
“책에서 봤는데 독이 있대요. 할아버지 절대 먹지 마세요.”
집에 들어서자마자 폰으로 '애기똥풀'을 검색했다.
'Daum 백과사전'의 설명은 이랬다.
애기똥풀이라고 불리는 것은 줄기나 잎을 꺾으면 노란 즙이 나오는데, 이 색이 애기똥색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식용, 약용, 관상용으로 이용된다. 한방에서는 온포기를 백굴채라고 하며 마취 및 진정 작용이 있어 약용으로 사용하지만 독성이 강하므로 함부로 먹으면 탈이 날 수 있다. 어린잎을 식용할 때는 반드시 우려서 먹는다.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거나 생즙을 내어 사용하며, 술을 담가서도 쓴다.
은규의 말이 맞았다.
애기똥풀에는 적잖이 강한 독성이 있단다.
초등 2학년인 은규가 알고 있는 것을 내가 모르고 있었다니 우스웠다. 그리고 나는 ‘애기똥풀’이란 이름은 꽃의 샛노란 색깔이 아기의 응가 색깔과 비슷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잎이나 줄기를 꺾으면 노란 즙이 나오는데 그 유액의 색깔이 갓난아기 응가 색을 닮았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애기똥풀은 다음의 전설을 가지고 있었다.
옛날에 눈을 뜨지 못해 볼 수 없는 아기 제비가 있었단다.
엄마 제비는 안타까운 마음에 약초를 찾아 나섰는데 애기똥풀의 즙을 눈에 발라주면 눈이 낫는다는 말을 듣고 어렵게 찾아냈지만 꽃을 지키는 뱀과 싸우다 엄마 제비는 죽고 말았다는 가슴 아픈 전설이다. 그래서 애기똥풀의 꽃말은 ‘엄마의 지극한 사랑’ 그리고 ‘몰래 주는 사랑’이란다.
검색했던 내용을 떠올리며 애기똥풀의 줄기와 잎을 꺾었다.
그러자 잘린 곳에 정말 노란 즙이 나와 맺혔다. 유액을 하얀 휴지에 살짝 묻히자 정말 은규가 갓난아기 때 건강하게 자라면서 잘 먹고는 하얀 기저귀에 남기곤 했던 앙증맞은 응가의 색깔이랑 무척 흡사했다.
문득 애기똥풀만큼 정직한 식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들레와 씀바귀와 같은 어떤 식물은 하얀 피를 가졌으면서도 노란 꽃을 피우고, 개나리와 유채, 황매화 등은 몸속에 노란 피가 흐르지 않는데도 꽃은 노란색이니 대부분의 노란 꽃은 겉 다르고 속 다른 식물인 것 같은데, 노란 피를 가진 애기똥풀이 노란 꽃을 피우고 있으니 젖먹이 아기만큼 때 묻지 않은 식물처럼 보였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이 더 활개를 치고, 포커페이스니 돌부처니 하면서 좀처럼 속내를 내보이지 않는 사람 또는 속 다르고 겉 다른 사람들이 더 대접받고 더 출세(?)하는 요즘 세상에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는 아기처럼 겉과 속이 똑같은 식물이 있다니···
내 눈길이 노란 애기똥풀꽃에 한 번 더 갔다.
내 머릿속에서는 애기똥풀에 한두 개 더 붙이고 싶은 꽃말이 뱅뱅 맴돌고 있었다.
예부터 전해오는 ‘엄마의 지극한 사랑’, ‘몰래 주는 사랑’이란 꽃말에 ‘천진난만’ 또는 ‘언행일치’를 추가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