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30. 토요일
저녁 식사를 마치고 외손주들까지 제 집으로 돌아가자 우리 집은 마치 야단법석(野壇法席)이 끝난 절간처럼 조용했다.
놀이방과 거실 등 곳곳에 외손주들이 놀다 간 흔적(?)들을 대충 치우고는 TV 리모컨을 먼저 차지한 집사람의 옆자리에 앉아 낮에 다녀온 청계산 눈 산행의 피로도 풀 겸 ‘발바닥 두드리기’를 시작했다. 플라스틱으로 효자손 겸용해 만들어진 마사지봉으로 발가락부터 시작해 뒤꿈치까지 용천혈 등 발바닥 전체를 두드리는데 강약을 조절해 가면서 두드리면, 특히 발바닥에 아치형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을 때릴 땐 얼마나 시원한지 모른다. 내가 수년 동안 하고 있는 여러 건강법 중 하나이지만 가장 즐겨하는 비법이다. 봄, 여름, 가을에야 맨발산행으로 발의 건강을 관리할 수 있지만 요즘처럼 맨발산행을 하기에 발이 너무 시린 한겨울엔 발바닥 때리기가 제일 좋은 것 같다. 물론 몇 시간씩 걷는 맨발산행에야 비할 순 없겠지만···. 오른발 5∼6분 왼발 5∼6분, 이렇게 10여 분쯤 두드리고 나면 발바닥이 후끈후끈 따뜻해지면서 땀이 나는 느낌이고, 기분이 쏴∼ 좋아지면서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는 느낌이다. 내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발바닥 두드리기’를 하고 있으면 가끔씩 원준이와 은규 그리고 세은이가 번갈아 내 옆에 누워 앙증맞은 발을 내밀며 “할아버지, 저도 때려 주세요.”하는데, 살살 두드려 주면 그들도 “아! 시원∼하다.”하는데 그 모습이 또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이런 소소한 것들이 내겐 비타민이고 행복의 원천이다.
TV에서는 여전히 트로트 노래가 한창 울려 펴지고 있었다.
내가 ‘발바닥 두드리기’를 끝내고 자세를 바로 잡자 집사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TV에서 눈을 떼면서 내 무릎 위로 자신의 한 발을 올리고는 계면쩍은 듯 웃어 보였다. 몇 해 전 한때는 나를 따라 ‘발바닥 두드리기’를 열심히 했었지만 최근 한동안은 전혀 하지 않더니 얼마 전부터는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올리는 격으로 내가 하는 ‘발바닥 두드리기’에 집사람이 슬쩍 자기의 발을 보태고 있지만 밉지가 않다. 그런데 오늘따라 집사람의 발이 더 작아 보였다.
저 작은 발로 종종거리며 외손주 세 놈을 챙겨 먹이고, 돌보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지난 한 해 동안 부쩍 자란, 초등학교 4학년생인 정원준의 발보다 더 앙증맞아 보였다.
요즘처럼 힘든 날········
일 년 전,
2020년 1월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지금.
코로나 19로 인해 대문 밖 나서기조차 두려운 날들.
모든 모임은 중단되고, 절친도 만나서는 아니 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연중행사처럼 지속되는 탓에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을 호소한다던데··· 정토회 서초법당의 법회, 명상, 기도 등 마음공부와 신앙 활동이 온라인으로 대체되어 다행이지만 도반들을 만나지 못하고 친구들도 만나지 못하고 있는 집사람이 얼마나 답답할까 싶었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외손주들이 모이는 데다 일 년이 넘는 세월 내내 외손주들을 돌보면서 운동만 하는 白手 남편에게 삼시 세끼 모두를 챙겨 주고 있으니··· 그런데도 집사람은 더 건강해야겠다며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10,000보 이상씩을 걷고 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싶다.
요즘 들어 집사람이 부쩍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우리 부부가 가장 잘 한 것 중 하나가 서초동 아파트를 세놓고 양재동으로 이사와 두 딸네와 한 집에 살 듯 따로 사는 것이란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외손주들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 해도 큰 福인데, 작년 봄부터 기승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19 탓에 아이들을 놀이터에 보내는 것조차 두려운 요즘, 외손주들을 남의 손에 맡기지 않고 직접 돌볼 수 있으니 너무너무 다행이란다. 더구나 등교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원준이와 은규의 공부까지 날마다 챙길 수 있으니 얼마나 좋냐며, 요즘 같이 어려운 때 딸네들과 이웃하며 이런 저런 도움 줄 수 있으니 외로움 많아지는 우리 나이에 이 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거란다.
이런 게 우리 부부의 복이요 행복이란다.
10여 분쯤 두드리자 집사람이 됐다며 발을 거두었다.
내 발바닥 때리는 강도의 절반쯤 강도로 두드렸음에도 집사람은 꽤 아파했다. 하지만 시원하단다. 아파하면서도 시원해하는 집사람을 보고 있노라니 뻐근해지는 듯 내 팔에 쌓이던 피로는 저절로 사라지고 내 마음은 시원하다 못해 행복해졌다. ‘발바닥 두드리기’가 끝나자 집사람은 싱긋 웃으며 몸을 돌리더니 내 무릎을 베고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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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여 일 전쯤인 모양이다.
그날 저녁에도 집사람의 발바닥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끝날 때쯤이었다.
문득 새벽마다 스트레칭 도중에 즐겨 하는 조탁법(鳥啄法)-딱따구리 새가 부리로 나무를 쪼아대듯 열 손가락으로 온 머리를 두드리는 머리 마사지-의 시원함이 떠올라 집사람에게 내 무릎을 베고 눕게 했다. 그러고는 언젠가 바닷가에서 주워 온 까만 조약돌로 집사람의 머리를 문질렀더니 신음 소리를 낼 만큼 아파하면서도 얼마나 시원해하던지 내 기분이 다 좋았다. 그때부터 발바닥 마사지가 끝나면 으레 머리 마사지다.
집사람의 머리카락에서 내음이 물씬 풍겨 왔다.
젊었을 때 맡아지던 풋풋함은 없지만 아주 익숙한 냄새다.
햇된장의 단맛과 짠맛 같은 상큼함은 사라지고 없지만 감칠 듯이 구수한 게 오랫동안 잘 숙성된 장맛이다.
아니다, 금보다 비쌀 뿐 아니라 예로부터 香 중에 으뜸이라는 침향(沈香)이 이런 향기겠다 싶었다.
서산 너머를 기웃거리는 석양에게도 냄새가 있다면 틀림없이 이런 향기겠다 싶었다.
내 무릎을 베고 누운 집사람의 머리카락을 헤집는다,
그러자 희끗희끗하게만 보이는 겉보기와는 달리 머리 밑이 하얗다.
나와 함께한 40여 년이란 세월이 새까맣던 머리카락을 이렇게 탈색 시킨 걸까?
해변에서 주워 온 까만 조약돌로 목덜미와 뒤통수를 살살 문지르면서 시작되는 머리 마사지, 강약을 조절하면서 정수리와 이마 부근을 문지른 후 조약돌이 옆머리 쪽으로 향하면 집사람이 긴장하기 시작한다. 눈썹과 귀 사이의 관자놀이 부근을 문지를 때는 눈물이 맺힐 만큼 아파한다. 나는 이곳을 문지를 때마다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내 머리를 마사지할 땐 나는 이곳을 훨씬 더 강하게 두드리거나 문지르는데도 아프기는커녕 시원하기만 한데 집사람은 신음을 참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너무너무 시원하다며 손가락으로 가장 아픈 곳을 짚어 가리키면서까지 그곳을 더 문질러 달란다. 몇 년 전 받은 황반천공 수술 이후 늘 불편한 눈이 시원해지는 게 한결 맑아지는 느낌이란다.
10여 분의 발 마사지.
그리고 10여 분의 머리 마사지.
기껏해야 20여 분밖에 되지 않는 나의 짧은 서비스(?)에 감동하며 마치 구름 위에 올라앉은 듯 행복해하는 집사람을 볼 때마다 나도 행복해진다. 행복은 언제나 이렇게 바로 옆에 있건만···. 나는 이내 미안해진다. 집보다 직장을 우선시했던 나의 젊은 날들이 후회스럽고, 늘 집 아닌 밖에서 파랑새를 찾으려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40년도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나를 내조하면서 우리 가정의 행복꽃을 잘 가꾸고 있는 집사람이 더없이 고마워진다. 집사람에게 이렇게나마 조금씩 조금씩 보답할 수 있어 다행이다 싶어진다.
'등이 가려울 때 부부만큼 임의롭게 등짝을 맡길 수 있는 사람 어디 있으랴.'
江山이 네 번 바뀌는 세월···, 나는 언제 숙성될까? 다짐하고, 發願한다.
괜찮은 남편, 부끄럽지 않은 아빠, 사랑 많은 할아버지 되겠다고···
한 뼘 남은 석양이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듯 살겠다고···
석양 내음 닮은 향기 오래오래 맡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