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11. 금요일
9월에 접어든 지 열흘이나 지났지만 태양은 아직 덜 식었나 보다.
약간씩 초록빛을 떨쳐내기 시작한 나뭇잎에서 가을 내음을 맡으며 한참 걷기만 해도 등줄기에는 땀이 줄줄 흘렀다.
이런 날씨라면 동네나 한 퀴 도는 것이 더 낫겠다 싶어 생수 한 병을 꽂은 쌕을 허리에 차곤 집을 나섰다.
싱그러움을 뽐냈던 주변의 초록이 조금씩 조금씩 엷어지고 있었지만 영락 없는 한겨울이다.
우리 아파트 앞 근린공원에 있는 인조잔디 축구장에서 새벽마다 들려오던 조기 축구회원들의 함성이 근 반 년 동안 들리지 않다가 최근 다시 들린다 싶더니 열흘도 채 안 되어 다시 끊어진지 며칠이 되었고, 해마다 하늘이 높아지는 이맘때쯤이면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어지지 않는 공원 놀이터도 언제부턴가 산속 절간처럼 조용해졌다. 뿐만 아니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산을 넘어가는 햇님이 공원 亭子와 벤치에 그늘을 살포시 내려놓으면 동네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공기놀이를 하듯 손주자랑, 세상 이야기, 일상 이야기 등을 주고 받으면서 깨소금 냄새를 풍기더만···
그런데 오늘 풍경은 너무 달랐다.
인조잔디 축구장은 출입문마다 큼직한 자물쇠로 채워 놓았고, 놀이터엔 놀이기구마다 움직이지 못하게 붉은 테이프가 칭칭 감겨져 있었다. 할머니들의 놀이방 역할을 톡톡히 하는 정자도, 벤치도 붉은 테이프들에 갇혀 있었다.
양재천도 사람들이 모일 만한 곳곳엔 빨간 신호등이 달려 있었다.
주말마다 많은 시민들이 찾아드는 '양재시민의숲'엔 빨간 신호등 투성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예외 없이 출입금지 펜스가 막고 있었다.
다시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 때문이겠지만 하루 확진자 수가 최고조에 달했던 2월, 3월보다 더 강화된 조치다.
코로나19가 사라지기는커녕 다시 활개를 치기 시작하자 나랏님은 우리들에게 집콕, 방콕만을 강요한다.
나랏님의 안따까움을 모르진 않지만 이렇게 손발을 묶고 마음 묶는 것만이 최선은 아닌 것 같은데···
어른들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한창 자라야 할 어린이들은 햇실을 먹으며 뛰다녀야 하는데···
운동부족으로 코로나보다 더 큰 병에 걸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우울증까지 올 수 있는데···
몸도, 마음도, 정자도, 놀이기구도 등등 모두가 꽁꽁 얼어붙은 여름날의 한겨울.
정말 우리 대한민국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가 된 걸까?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나는 건 아닐지 걱정이다
서울의 빨간 신호등.
언제면 초록으로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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