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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매미의 우화(羽化)

2020. 7. 21. 화요일

양재천에 매미가 돌아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들리지 않던 매미 소리가 오늘에는 간간히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맴맴맴 맴맴맴···"

일 년 만에 듣는 정겨운 소리인데 마치 멀리 있는 폭염을 부르는 소리처럼 들리는 건 무슨 까닭일까?

그렇지만 오늘 들리는 매미 소리 덕분에 한 동안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가 풀리는 것 같아 고마웠다.

 

코로나19가 만든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언남문화체육센터의 휴관이 시작된 지난 2월 하순부터 나는 매일 양재천을 걷고 있다. 아스팔트로 잘 만들어진 산책로도 좋지만 잊혀가는 고향의 흙 냄새와 풀 냄새를 떠올리고 싶어 울퉁불퉁할지라도 가능한 한 흙길을 찾아 걷곤 한다. 그러던 중 여름에 접어든 얼마 전, 언제부턴가 내가 걷는 흙길 군데군데에 쓩쓩 뚫린 구멍들이 더러 보였다. 처음에는 이곳을 오간 사람들의 등산스틱에 찍혀 생긴 구멍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구멍은 나날이 늘어나는 것 같았다. 나무 아래 흙에는 더 많았다.

한 수양버들나무 아래에는 얼추 세어도 수백 개도 넘을 듯 많았다.

자주 보다 보니 등산스틱에 의한 구멍은 아닌 것 같았다.

갑자기 궁금증이 발동했다.

자세히 살펴 보았다.

직경은 1.5cm∼2.0cm쯤, 깊이는 5cm∼6cm쯤 되었다.

무슨 구멍일까?

누가 뚫었을까?

 

주위를 샅샅이 살폈다.

!

곤충의 허물.

우화(羽化)하면서 벗어던진 허물이 있었다.

한여름이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매미의 허물과 매우 비슷한 모양이었다.

땅속에 있던 매미의 애벌레가 땅을 뚫고 나와서는 나무 또는 풀에 매달려 우화한 것일까 싶었다.

하지만 이내 매미는 아니다 싶었다. 이 많은 구멍에서 나온 애벌레가 우화해 매미가 되었다면 그 많은 매미들의 울음 소리에 양재천이 떠날갈 듯 시끄러워야 하는데 어제까지는 매미 소리로 시끄럽기는커녕 단 한 번도 듣지 못 했으니 매미는 아니다 확신했다. 그래서 네이버 등 곳곳에서 지금쯤 땅속에서 나와 우화하는 곤충들 중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검색하였으나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 포기했었는데, 오늘 매미 소리를 들었더니 땅에 구멍 뚫은 놈들은 매미가 맞구나 싶었다.

'매미의 울음'

여름에 짝짓기를 통해 나무 껍질 등에 알을 낳으면 그 알은 1년 동안 나무 껍질에서 생활하다가 알에서 깨어나 땅속으로 들어가서는 애벌레로 짧게는 78년, 길게는 15년 이상을 땅속에 살면서 15회 정도 탈피를 한 다음 천적이 없는 밤에 땅 위로 올라와 껍질을 벗고(羽化) 성충이 되지만 6~9일밖에 살지 못 하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짝을 만나 알을 낳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울고 있다고 한다.

나뒹구는 매미 허물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기껏해야 열흘 남짓 날개짓하는 매미 같은 미물(微物)조차 종족 보존을 위해 땅 위 생활의 몇 천, 몇 만 배나 되는 땅속 암흑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몸을 찟는 아픔조차 마다하지 않는데···, 그러면서도 공직자라면 갖추어야 할 '문(文), 청(淸), 렴(廉), 검(儉), 신(信)'이란 다섯 가지의 덕(德)을 갖추었다 해서 조선 시대 임금은 매미의 교훈을 염두에 두고 정무를 맑고 투명하게 수행하겠다는 의미로 매미 날개 모양을 형상화해서 만든 ‘익선관’을 썼고, 문무백관들은 매미가 펼친 날개 모양을 형상화한 ‘오사모’를 썼다는데···,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인간들, 지금의 우리들은 어떠한가 싶었다.

익선관 또는 오사모를 썼던 고위 공직자들 중엔 국민과 후대(後代)를 위해 노력하기보다 자신의 사리사욕과 쾌락을 채우기 위해 권력을 남용했으면서도 그런 잘못이 들통나면 사죄를 하거나 책임을 지기는커녕 마치 누명을 쓴 영웅(?)이 먼저 간다는 양 살다마는 짓을 하는 어리석은 자가 적지 않으니 어찌 인간이라고 다 매미보다 낫다고만 할 수 있으랴 싶었다.

몇 해 전부터 갑자기 매미의 울음소리가 부쩍 커졌다 싶더니 이런 못난 인간들을 나무라느라 소리를 키운 모양이다. 

흙길에 뚫린 매미 구멍 수를 보나, 최근 한 공직자가 저지른 마무리를 보나 올여름 양재천은 한층 더 시끄럽겠다.  

 

- 매미의 五德 -

1. 매미의 입이 곧게 뻗은 것은 마치 선비의 갓끈이 늘어진 것을 연상케 해 학문(文)

2. 이슬이나 나뭇진을 먹고 살아 맑고(淸),

3. 곡식이나 채소를 해치지 않아 염치(廉)가 있고,

4. 다른 곤충과 달리 집이 없어 검소(儉)하고,

5. 때를 맞춰 죽으니 신의(信)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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