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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아! 삼풍백화점

 

2020. 6. 29. 월요일

양재천을 걸으면서 폰으로 Daum뉴스 記事를 읽다가 아차 싶어 '양재 시민의 숲'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1995년 6월 29일,

꼭 25년 전의 오늘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한일은행 본점 여신관리부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날도 은행의 정상 업무를 끝낸 다음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야근하기로 마음먹고는 이른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한 직원이 사무실로 들어서면서 크게 말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대요."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나 싶었다. 

아침에도 그 앞을 지나 출근했는데 웬 헛소린가 했다.

지은 지 5,6년밖에 안 되는 건물인데···, 얼마나 대단한 백화점인데···

그런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분명 거짓이다 싶었다.

누군가가 부장실의 TV를 켜자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정말이었다.

뉴스 특보가 진행되고 있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너무 처참한 광경이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폭탄 맞은 모습이었다.

그제야 아차 싶어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신호는 가는데 받는 사람이 없었다·

순간, '혹시···'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잠시 후 '설마···'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신호음이 두어 번쯤 들리고서야 집사람이 전화를 받았는데, 안도감에 온몸이 축 늘어지는 것 같았다.

 

그해, 나는 1989년 9월 서초동 교대역 부근에 개점한 한일은행 서초중앙지점의 개설요원이었다. 

개점 한두 달 전 미리 발령을 받아 개점 준비뿐 아니라 고객 유치를 위한 섭외활동을 했었는데, 내가 사는 아파트 또한 서초동에 있는 서울교육대학교와 같은 블럭이라 지점과는 수백 미터밖에 안 떨어져 있어 섭외활동에 잇점이 참 많았다. 

그 무렵 삼풍백화점은 건물이 거의 완공되던 단계로 그해 연말쯤 오픈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곤 삼풍백화점을 거래처로 유치하기 위해 얼마나 뻔질나게 드나들었는지 모른다. 그뿐 아니라 백화점 건물 內에 서초중앙지점 출장소를 내기 위해 온갖 아양을 떨어가면서 얼마나 애썼는지 모른다. 허지만 결과는 헛수고였다. 백화점이 정식 오픈하던 날 그 건물 안에 들어 앉은 다른 은행의 점포를 보고 있자니 우리를 내친 삼풍백화점 직원들이 얼마나 서운하고 얄밉던지···

그런 감정은 3년 후 내가 본점으로 발령 받을 때까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랬던 백화점이 붕괴되다니···

한 동안은 출장소를 들이지 못한 건, '하늘이 도왔구나.' 하는 얄팍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날마다 생중계되듯 TV에 비춰지는 사고현장의 모습과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생존자 구조활동 모습은 물론 실종자 가족들의 대기장소로 이용되고 있는 우리 아파트 인근의 서울교대는 차라리 눈 뜨고 몰 수 없는 목불인견이었다.

500명 넘는 사망자와 900명이 훨씬 넘은 부상자는  6.25 전쟁 후 최대의 인명 피해였다.

 

마침내 도착한 양재 시민의 숲.

25년 동안 흘려도 마르지 않은 피눈물들이 다녀가신 모양이다.

양재 시민의 숲에 세워져 있는 '삼풍참사 위령탑' 주위엔 사랑과 그리움의 恨을 담은 꽃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꽃다발과 꽃바구니들에 매달린 애절한 사연들을 읽고 있자니 저절로 콧등이 시큰하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와 아빠가 먼저 간 자식들에게 보내는 사연을 읽은 때는 금방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하늘도 내 마음과 같은 모양이엇다. 금방 눈물을 쏟을 것 같은데도 꾹꾹 참고 있는 듯했다.

天壽를 다하고 떠나신 부모님도 시도 때도 없이 그립기 마련인데···

군에 입대해도 보고 싶은 게 아들이고, 시집을 보내도 보고 싶은 게 딸인데···

얼마나 그리울까.

얼마나 보고 싶을까.

딱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여한이 없을 텐데···

맺힌 눈물이 떨어질까 봐 고개를 치켜드는데, 뚝!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하늘도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이내 여기저기 눈물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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