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12. 목요일
지난 월요일부터 시작된 마스크 5부제.
첫날이었던 월요일엔 生年의 끝수가 1 또는 6인 사람들이, 둘째 날이었던 그저께 화요일은 生年의 마지막수가 2 또는 7인 사람들이, 셋째 날 어제는 生年의 끝자리 수가 3 또는 8의 국민들이 마스크를 살 수 있었지만 오늘은 마지막수가 4이거나 또는 9인 사람들만이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는 날이라 1954년이 生年인 나는 우리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약국으로 향했다.
‘시골의 오일장이 지역에 따라 매월 1일과 6일, 2일과 7일, 3일과 8일, 4일과 9일, 5일과 10일 이렇게 5일마다 열리는데…’,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내 어린 시절에는 제법 볼(?) 게 많았던 내 고향마을의 장날이 매월 4일과 9일, 14일과 19일 그리고 24일과 29일 등 4와 9로 끝나는 날이었음을 떠올리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세계 12대 경제대국 중 하나인 대한민국을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마스크 5부제로 몰아 넣은 우한 폐렴…
작년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市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으로 ‘우한 폐렴’이란 별칭도 있지만 '코로나19'라고 하는데 3월 11일 기준으로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미주, 호주 등 114개국에서 11만8000천명이 감염됐고 4,291명이 숨졌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WHO(세계보건기구)에서 전염병 경고단계 중 최고 단계인 ‘팬데믹(Pandemic: 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으니 WHO 역사상 세 번 째의 ’팬데믹‘이란다. 우리나라의 경우, 訪韓했던 중국인이 1월 20일 최초 감염자로 확진된 이후 오늘까지 66명이 사망하고, 7,800여 명의 확진자와 7,400여 명의 격리자가 발생함에 따라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되고 온 국민이 감염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과 두려움에 떨게 되면서 예방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마스크를 구하기에 혈안이 되었다. 하지만 감염예방에 가장 기본인 마스크는 태부족. TV에서 연일 마스크를 구하려는 국민들의 장사진을 친 모습을 내보내고서야 국무총리와 대통령이 나서서 마스크 대란에 대비하지 못하였음을 사과하곤 하더니 마침내 지난 월요일부터 전격적으로 시행된 마스크 5부제.
1주일에 한 번, 2장의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한 마스크 5부제.
‘아니…’
아파트 입구의 약국 앞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출입문에 붙어 있는 안내문에 적힌 영업 개시시간에 문을 연다면 아직 30분은 더 기다려야 하는 시간인데도 약국 앞에는 사오십 명은 될 듯한 사람들이 만든 긴 줄이 서 있었다. 그런데 그들 모두의 손에는 뭔가가 꼭 쥐어져 있었다. 하긴, 며칠 전부터 TV의 각 채널은 뉴스 때마다 마스크 5부제를 알리면서 “약국에서 마스크를 살 때는 본인확인에 필요한 주민등록증 등 신분증을 지참해야 하고, 나이어린 아동과 80세 이상의 가족을 대신해서 구입할 때는 주민등록등본도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떠들어대고, 어떤 곳에서는 문자까지 보내주었으니…
나도 주민등록증을 꺼내들고 줄의 꽁무니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줄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약사 혼자서 운영하는 약국이라 혼자서 본인확인 하랴, 입력하랴 판매하햐 정신이 없나 보다 싶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보니 슬슬 걱정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언제 차례가 돌아올런지…, 내 차례까지 마스크가 돌아올런지…, 마냥 기다릴 수만 없었다. 그러던 중 좀더 떨어져 있지만 제법 규모가 큰 약국이 떠올랐다. 그곳은 외손주들이 다니는 소아과의원이 있는 건물의 1층에 있어 외손주들이 소아과 진료를 받을 때마다 들러 처방전으로 약을 구입하는 약국으로 직원들이 대여섯 명이나 되기에 마스크의 판매진행이 훨씬 빠를 것 같았다.
서둘러 그 약국으로 갔다.
역시 그 약국은 줄 선 사람이 한 명도 없고 조용했다.
웬 떡인가 싶으면서도 조금은 불안했지만 직원에게 신분증을 내밀며 마스크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허사였다.
오늘 배당 받은 마스크는 벌써 다 팔려나갔단다.
그 곳에서 가까운 다른 약국으로 향했다.
그 약국도 조용했다.
혹시나 싶어 들어가 마스크 사러 왔다고 했더니 약사가 번호표를 달란다.
약국 문을 열기 훨씬 전부터 마스크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와서 줄을 서 있길래 약국에서 번호표를 만들어 주었다면서 오늘은 그 번호표와 본인의 生年 끝자리 수가 4또는 9인 신분증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만이 마스크를 2장씩 구입할 수 있단다.
나오면서 본 약국의 창문에는 정말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금일, 9시에 시작, 번호표 발부 완료”
‘번호표’
귀에 참 많이 익은 단어였다.
요즘에야 은행 등 금융기관은 말할 것도 없고, 각종 서비스 센터와 주민 센터, 우체국과 헌혈의 집 등, 아니 심지어 음식점에까지…, 대기 손님이 있는 곳이라면 으레히 모습을 드러내는 번호표….
그런 번호표가 이번엔 마스크 판매에도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왜일까?
오늘은 ‘번호표’란 단어가 문득 내게 아련해지는 추억을 일깨워주었다.
요즘은 은행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하는 게 입구에 마련된 기계를 터치해서 번호가 인쇄된 종이를 뽑는 일인데 그 종이가 번호표이다. 내가 한일은행에서 혈기왕성하게 일했던 시절인 그때도 은행에는 번호표가 있었으니 번호표의 원조는 은행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때의 번호표는 지금의 번호표와는 몇 가지 점에서 달랐다. 지금의 번호표는 터치만 하면 자동으로 출력되는 종이의 번호표이지만 그 시절 은행에서 사용했던 번호표는 특정 모형의 銅版으로 만들어져 앞면에는 숫자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은행명 또는 마크와 지점명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종이 번호표는 단순히 대기 순서을 알려주는 기능이 크지만 예전의 번호표는 대기 순번의 기능보다 본인확인의 기능이 훨씬 더 컸다. 은행의 창구직원이 고객으로부터 예금청구서 등을 접수할 때는 번호표를 내드리면서 청구서에 꼭 그 번호표의 숫자를 기재했다. 그러곤 책임자의 결재를 득한 후 고객에게 출금액을 내줄 때는 청구서에 적힌 숫자를 불러 그 숫자와 일치하는 번호표를 반환하는 고객에게 통장과 함께 인출금을 내드렸으니 번호표가 인출자 본인임을 확인하는 증표였던 셈이었다. 그래서 만약 고객이 소지하고 있던 번호표를 잃어버린다면 큰 낭패였다. 습득자에게 인출금을 지급하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업무처리에 아주 번거로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당시 은행의 각 지점에서는 마감 후에 항상 번호표를 점검했었는데 만약 번호표가 한 개라도 모자라는 날이면 난리가 났다. 반드시 찾아야 하기에 비상 상황이 되는 것이다. 만약 번호표를 돌려받지 않은 채 인출금을 내준 경우라면 출금 전표와 예금거래 신청서를 뒤져 고객을 찾아 나서서 번호표를 환수해야 했다. 끝내 찾아내지 못하면 시말서를 써야 했으며, 그렇게 해서도 일정 개수 이상의 번호표가 분실되면 지점에서는 검사실의 승인을 받아 기존의 번호표를 몽땅 폐기처분한 다음 새로이 제작해야 했으니…
예금계 책임자였던 삼사십 년 전, 번호표를 회수하지 않은 여직원과 함께 주소를 적어 다니며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면서 고객을 찾아다니느라 힘들어 '못 해 먹겠다.' 여겼던 날이 한두 번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컴퓨터 등 기계들이 복잡한 계산은 물론 돈 세는 것까지 다 해버리는 지금보다 오손도손 모여 정담과 손길을 나누면서 손가락에 물을 묻혀 지폐를 세었던 시절, 주판이 더 유용하기도 했던 그때가 훨씬 행복했었다는 마음이 드는 건 웬일일까?
번호표 추억에 젖어 있는 동안 내 발걸음은 어느새 우리 아파트 앞을 걷고 있었다.
골목 길 건너 약국 쪽을 쳐다보았다.
그 많던 인파는 다 사라지고 약국 앞은 더없이 조용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발길을 약국으로 돌렸다.
그렇지만 역시였다.
약국 출입문에는 대문짝만한 글씨로 쓴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금일 공적 마스크 품절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나대신 마스크를 샀겠다.’ 싶었다.
‘그 사람이 나보다 마스크가 더 필요한 사람이면 좋겠다.’ 중얼거리며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몇 걸음을 걷다 고개를 들고 쳐다본 하늘은 번호표를 회수하러 다녔던 그 시절만큼이나 파란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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