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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아!…, 우한 폐렴

2020. 2. 24. 월요일

TV를 켜기만 하면 무척 귀에 익은 단어가 쏟아진다.

"대구……"

"청도……"

그러나 뒤이어 들려오는 "신천지"와 "코로나19"란 단어에 반가움 대신 두려움이 몰려들었으니…

한 갑자 훨씬 넘는 내 인생에서 처음 경험하는 불안이고 두려움이었다.

 

물 맑고

공기 맑고 

사람들의 심성이 맑다 해서 三淸.

삼청(三淸)의 곳이라 해서 청도(淸道)란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내 고향

산 높고 물 맑은 내 고향이 요즘 하루 종일 온갖 매스컴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리나라를 한강의 기적과 함께 일으켜 세운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인 내 고향 청도가  대구와 함께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발상지란 비아냥을 받고 있으니 속이 상했다. 

'우한 폐렴'이란 별칭을 가진 '코로나19'는 작년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의 한 시장에서 발생해 오늘 현재는 확진자가 8만 명을 넘어서고, 사망자만도 2,500명을 넘어설 만큼 무서운 전파력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월 20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중국 국적의 한 여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 확인되면서 국내에까지 전파되었음을 질병관리본부가 공식 발표하였지만 이달 중순까지만 해도 전국의 확진자가 채 서른 명이 되지 않을 만큼 관리가 잘 되는 듯하고 관계 부처의 장관뿐 아니라 대통령까지 나서서 정부에서 잘 대처하고 있다 자화자찬하면서 곧 종식될 거라라는 둥, 지자체에서는 계획된 행사를 취소하지 말라는 둥, 이제는 굳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둥 우한 폐렴의 퇴출을 호언장담하기에 나는 '2015년에 있었던 메르스 사태와는 달리 이러다 곧 끝나겠다.' 싶어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2월 17일에는 숙모상(叔母喪)으로 청도읍에 있는 청도전문장례식장에도 다녀왔다. 그런데 다음날인 2월 18일, 영남지역의 첫 감염자인 31번 확진자가 대구에서 나왔다는 뉴스가 뜨더니 19일부터는 확진자가 아예 쏟아졌다. 그런데 그 대부분의 발생지가 대구와 청도였다. 

24일, 오늘까지의 대구 확진자가 483명이고 청도에서의 확진자는 111명이라니 근 600명이다.

전국의 확진자가 833명이라니 대구와 청도가 70% 이상을 차지한 셈이다. 

국내의 우한 폐렴 사망자 8명 중 청도에서 발병한 사람이 6명.

곧 천 명을 넘을 기세다.

 

우한 폐렴 

2019년 12월 중국 우한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란다. 

'코로나19'라고도 한단다. 당초에는 우한시의 화난 수산시장에서 거래되는 박쥐를 중간숙주로 발생한 변이형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추정되었으나 최근에는 우한시 변두리에 위치한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누출된 바이러스가 주범이라는 전문가들의 추정이 훨씬 더 힘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2020년 1월 감염자가 전 세계 여러 국가로 확산되자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1월 30일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언했지만, 2월 24일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8만 명이 넘는 감염자와 2,5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보고되었으며, 한국에서는 방한 중인 중국인이 1월 20일 최초 감염자로 확진된 이후 2월 24일까지 833명(사망 8명)이 감염자로 확진되었으니 맨눈에는 보이지 않을 만큼 작디작은 바이러스 하나가 발원국인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와 온 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든 셈이다.

문득, 북한에서는 세균전과 생화학전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몇 해 전의 뉴스가 떠올랐다.

어쩌면 실수(?)로, 아니 어쩌면 자연적으로 발생했을지도 모르는 작은 바이러스 하나에 온 세계가 이처럼 쑥대밭이 되고 우리 국민들은 벌벌 떨며 공포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는데, 만약 만에 하나라도 북한의 김정은이 전쟁을 일으켜 몹쓸 바이러스를 듬뿍 담은 폭탄을 서울 등 대도시 한복판에 퍼붓는다면…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했다. 

 

뉴스마다 청도와 대구, 두 곳 확진자의 대다수는 '신천지예수교'와 관련이 있단다.

대구 확진자뿐 아니라 다른 지역 확진자의 다수도 신천지예수교 대구교회의 예배에 참석했거나 예배참석자와 접촉했던 사람들이란다. 청도 확진자의 대부분은 청도에 있는 대남병원과 관련이 있다는데 신천지예수교 교주의 형님이 지난 1월 말경 그 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중 급성폐렴으로 사망해 그 병원의 장례식장에서 장례식을 치렀단다. 

그때의 장례식에 50여 명의 신천지예수교 신도들이 참석했단다.

'신천지예수교'

언제부턴가 총선(總選)이나 대선(大選)이 있을 때마다 특정 정당과 몇몇 정치인들의 이름이 거명되면서 이들이 뒷배를 봐주고 있는 '사이비 종교'라든지, '이단(異端)' 또는 '사교(邪敎) 집단'이라는 뉴스가 각종 매스컴을 달구곤 하더니 총선을 두어 달 앞둔 요즘은 우환 폐렴이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그런데…

헐, 이럴 줄이야…

신천지 이만희 교주의 고향이 나와 같은 청도군이란다.

내 고향마을이 있는 매전면에서 서쪽으로 약 백 리쯤 떨어진 풍각면이란다.

하지만 지금까지 재경 청도군민회 등의 향우회에서 이 양반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들었던 적이 없는데… 

신천지예수교가 이번 사태의 폭탄인 것 같다. 그런데도…, 더 이상의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질병관리본부와 각 지자체에서 전수조사를 위해 신도 명단을 요청하고 있으나 모든 게 비밀로 둘러싸인 신천지예수교 본부와 교주는 전혀 응하지 않는 모양이다. 三淸의 농촌인 내 고향 청도에서 어떻게 저런 인물이 나왔을까 싶었다.

정말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서울과 인근지역에 확진자가 발생할 때마다 핸드폰에 안전 안내 문자가 들어왔다. 이삼일에 한 번씩 들어오던 안내 문자가 며칠 전부터는 하루에 몇 번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고 있으니 갈수록 태산이다. 불안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게다가 나는 지난주 월요일(17일), 수서역에서 SRT를 타고 동대구역에 가서는 대구에 사는 누이들을 만나 승용차로 함께 청도를 다녀오지 않았던가. 다행히 나와 누이들이 문상 간 작은어머니의 빈소가 있었던 청도전문장례식장은 청도 확진자의 대부분이 발생한 대남병원과는 약 2km쯤 떨어진 데다 다녀온 지 여드레가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징후가 없는 걸 봐서는 괜찮을 것 같다만, 만에 하나…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2월에 들어서는 서초문화원의 모든 강좌가 2월 말까지 휴강에 들어간 탓에 수요일마다 공부하러 다니는 시창작을 비롯해 각종 동기회 등 모든 모임이 취소 또는 연기된 바람에 면역력이라도 높일 요량으로 매일 오전에는 헬스장에 나가 열심히 운동을 하고, 오후에는 정원준, 송은규, 정세은 등 세 외손주들과 온몸을 비비며 어울렸었는데

그런데 설상가상이다.

21일 내가 사는 서초구에서도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첫 확진자 발생의 뉴스가 있자마자 내가 운동하는 헬스장으로부터 3월 1일까지 휴관한다는 문자를 가 들어왔다.

21일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정부에서는 위기경보를 어제, 23일에야 '경계'에서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올렸다.

하지만 감염원의 발상지인 중국에서의 외국인 입국을 금지해야 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반면에 이스라엘을 비롯해 적지 않은 국가들이 우리나라 국민의 입국을 금지했을 뿐 아니라 지금의 우한 폐렴 발원국인 중국에서조차 대한민국에서 입국하는 한국인 등 외국인을 격리조치한다는 웃지 못할 뉴스가 나왔으니…

위기경보 상향에 따른 조치들이 쏟아졌다.

며칠 전부터 봄방학이 시작된 초등학교의 개학이 일주일 늦추어졌다.

서울 시내에 있는 모든 유치원과 어린이집 그리고 학원도 3월 초까지 휴원이다.

삼성 계열사에 다니는 은규 어미는 내가 청도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오늘부터 이번 일주일 동안 재택근무…

 

대구와 청도란 단어와 확진자수만 나불거리는 듯한 TV를 보고 있는데 문자가 들어왔다.

문정동에서 확진자가 2명이나 발생했다며 그들의 확진 전의 동선(動線) 알려주는 안전 안내 문자였다.

답답한 마음에 집을 나섰다.

시내로 향하는 도로가 평소보다 한산했다. 평소라면 뛰는 사람과 걷는 사람들로 북적일 시간인데도 양재천은 조용했다. 그런데도 양재천에는 벌써 꽤 많은 봄들이 와 있었다. 양재천변을 걸었다. 우리 국민 모두를 불안 속으로 몰아넣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양재천 수양버들나무들의 축 늘어진 가지에 파릇파릇 새싹이 돋기 전에 사라지길 기원하며 걸었다. 

우한 폐렴에 빼앗긴 우리들의 일상이 양재천변 바싹 마른 개나리나무 가지마다에 노란 개나리꽃 만발하기 전에 제자리 찾기를 소원하며 걸었다. 몹쓸 우한 폐렴에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내 고향 청도의 명예가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의 머릿속에서 '三淸의 淸道'란 이미지가 영영 사라지기 전에 바이러스가 사라지길 간절히 빌면서 걸었다. 양재천 둑길의 늙은 벚나무 가지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면 마스크 벗은 얼굴에 활짝 핀 벚꽃 닮은 환한 미소 가득 담은 채 모여드는 서울 시민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걸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휴원에 마치 여행이라도 온 듯 함께 뒹굴며 노느라 신이 난 외손주 원준, 은규 세은.

요 세 놈들이 살아갈 세상은 지금과 같은 불안이 없는 삶의 세상이길 기도하며 양재천길을 걸었다.

 

 

새벽부터 조기축구회의 함성이 들리고 늦은 밤까지 북적이는 축구장

'임시 휴장' 안내와 함께 굳게 문이 닫힌 축구장은 텅 비어있다,

 

 

 

 

2월 말까지 휴관에 들어간 스포츠센터

 

 

 

 

 

 

 

 

겨우내 얼었던 땅을 뚫고 나온 봄

 

 

양재천의 새로운 명물 갈대숲길

 

 

 

 

 

 

 

물 위를 노니는 아름다운 한 쌍의 원앙 

가만히 있는 듯 보이지만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물속의 발은 잠시도 쉬지 않고…

 

 

이처럼 뜻깊은 이름을 가진 포이동도 

부동산 가격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개포동에 통합되어 개포4동이 되었으니…

 

 

 

 

 

 

기록적으로 따뜻한 겨울 날씨에 이은 우한 폐렴으로 얼음썰매장이 철거되고 만 탓에

올 겨울에는 단 한 명의 어린이와도 어울리지 못했으니 양재천 무논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개구리알을 가리키며 신기해하는 은규

 

 

그나마 다행일까? 겨우내 단 한 번도 

어린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한 양재천 무논 군데군데엔 이처럼 개구리알이 떠 있었으니

머지않아 개구리알에서 꼬물꼬물 태어난 올챙이들이 어린아이들을 대신해 놀아줄 듯

 

 

가을의 시간

어릴 때 시간은 기어가듯 느리더니

어제는 걷다가 오늘은 달리기를 한다.

조그만 시간의 틈 안에서 부대끼며, 무너지며

 

가을을 맞이하는 시간 글을 쓴다

그 시간 어느 작은 공간을 살면서

맺어진 인연들이 가슴에 들어와 따뜻하다

 

글은 숨 고르기

가속도가 붙는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보아 속도를 늦춰준다.

달려가는 세상을 잡아당겨 살펴보고

머리를 식히며 숨을 고르게 해 준다.

몰랐던 것들과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을 뜨게도

 

가을은 지나가는 시간

흐뭇함 속에서 그리움을 담고 사랑을 느끼며

풋풋함이 어우러지기를 소망한다.

(수필가 임금희)

 

 

2020년 들어 처음 발견한 네잎 클로버

따서 고이 간직하고 싶었지만 덜 녹은 땅을 뚫고 돋은 모습이 안쓰럽고 가상하여 다른 이의 눈에 띌세라

살포시 마른 풀잎으로 덮어주면서 우리나라에서 우한 폐렴이 하루빨리 사라지길 간절히 빌었다. 

 

 

 

 

한 구역에서는 까치들이 모여 일광을 즐기는 듯 봄볕을 즐기고

 

 

다른 한쪽에서는 비둘기들이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며 봄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양재천과 탄천이 합류하는 곳 인근에 있는 작은 연못

6∼7월쯤이면 연못을 빙 둘러 솟아난 연둣빛 창포와 하얀 수련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내가 양재천을 찾을 때마다 이곳에 들러 잠시 머물면서 소금쟁이와

물방개의 재롱을 즐기며 활력을 충전하곤 한다.

 

 

양재천변 양지바른 곳에는 봄이 벌써 이처럼 와 있었다.

 

 

앙증맞은 봄꽃

이름을 몰라 네이버로 촬영해 확인했더니 '큰개불알꽃'으로 개화기는 5∼6월이란다.

오늘은 2월 24일…, 그런데 벌써 꽃이 올망졸망 피었다.

줄기와 잎의 생김새랑 꽃 모양과 크기를 보면 '큰개불알꽃'이 틀림없는데

창궐하는 우환 폐렴에 웃음 잃은 우리들에게 꽃 보는 작은 즐거움이라도

조고 싶어 달력도 보지 않고 뛰쳐나왔나 보다.

 

 

등용문교 다리를 건너 유턴

 

 

양재천 수양버들은 바람에 찰랑이는 소녀의 머릿결처럼 가느다란 가지로

하늘을 휘저어 가지마다에 연둣빛 봄색을 묻히고 있었다.

  

 

오늘의 걷기는 칸트의 산책길에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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