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10. 목요일
평일이면 아침마다 그러하듯 오늘도 은규를 돌봄교실에 데려다 주고는 양재천을 걸었다.
양재시민의 숲 입구에서 강남대로의 남북을 잇는 양재천 영동2교를 출발해 영동6교와 대치교를 지나 양재천이 탄천과 하나 되는 곳 인근의 등용문 다리를 건너 되돌아 오는 코스를 택했다. 그런데 양재천 곳곳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길었던 장마가 끝나자마자 대단한 강풍과 폭우를 데리고 들이닥쳤던 두 불청객, 마이삭과 하이선이란 태풍의 거센 물살에 파헤쳐져 엉망이 된 둔치를 복구하고 있었다. 지난봄 서초구청과 강남구청에서 적지 않은 예산을 쏟아부어 조성했었을 곳곳의 꽃동산과 아름다웠던 꽃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양재천을 걷는 산책객들이 걷다 힘들면 쉴 수 있도록 그늘 좋은 곳마다 잘 만들어 놓았던 넓직한 평상들은 대부분이 떠내려 갔거나 뿌리째 뽑혀 뒤틀어진 채 복구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둔치를 넘어 산책길까지 넘쳤던 물은 대부분이 빠진 터라 걷기에 별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물가 곳곳에서 온갖 쓰레기를 뒤집어쓴 채 비스듬히 휜 키 낮은 버드나무는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왕복 약 10km의 양재천을 걷고는 마무리 운동으로 역기나 몇 번 들고 싶어 '양재시민의숲'으로 향했다.
그런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인적이 드물게나마 있었는데 웬일인지 개미새끼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한적했다. 그러고 보니 '양재시민의숲'의 각종 벤치와 원두막, 정자는 물론 곳곳에 있는 모든 운동기구들까지 붉은 줄에 꽁꽁 묶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줄에는 곳곳에는 "코로나19, 2.5단계로 일시 시용을 금한다."는 안내판이 달려 있고···
할 수 없게 된 근력운동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좀 더 걷기로 마음먹고는 윤봉길의사기념관이 있는 시민의숲을 크게 한 바퀴 돈 다음 길 건너 AT센터 뒤쪽의 구역으로 들어갔다. 그쪽 시민의숲은 어쩌다 한 번씩, '대한항공기 피폭희생자 위령탑', '삼풍백화점 참사 희생자 위령탑' 등 내 기억에 뚜렷한 사건들이 떠올라 참배하고 싶을 때나 들리는 곳이다.
그런데 길 건너 입구에서 몇 십 미터도 들어가지 않아 왼쪽 편에서 낯선 위령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관심이 없었으면 적지 않게 다녔음에도 처음 보는 듯 낯설까 싶어 다가가 안내판을 읽었다.
이럴 수가···
1992년에 세워진 충혼탑이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38도선을 넘어 북진하였던 UN연합군이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철수하자 평안북도 정주군과 박천군 일대에서 치안 활동을 하던 청년들과 오산학교 학생들이 군번도 계급도 없고, 변변한 지원마저 없는 열악한 상태로 유격백마부대를 조직해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많은 전공을 세웠는데, 그때 조국을 지키기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친 반공 젊은이 522명의 공과 넋을 기리는 충혼탑이란다.
잠시 고개를 숙여 묵념을 하고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에서 성공한 유엔군들이 북으로 왔을 때는 얼마나 기뻤을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개미떼처럼 인해전술 쓴 중공군들이 쏟아져 내려올 때는 얼마나 두렸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몸으로 막아선 북녘의 젊은이들.
나라의 부름은 말할 것고 없거니와 군번도 없고, 계급도 없고, 변변한 지원조차 없었음에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신념 하나로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초개처럼 바쳤던 수천 명의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자유 대한민국이 지도상에 남아있다는 생각과 함께 요즘 나라를 불구덩이에 넣은듯 민초들을 분노케 하고 있는 추문(醜聞), 한 젊은이의 군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젊은이는 입대하는 남성이라면 모두가 원하는 카투사가 되었으면서도 더 많은 특혜를 누리고, 또 더 많은 특혜를 노렸던 것 같다. 요즘 모든 미디어에 도배된 듯 실리는 기사에 따르면, 논란의 시발은 그 젊은이가 정상적이지 않은 듯한 장기 휴가를 갔을 뿐 아니라 휴가가 끝났음에도 제시간에 귀대하지 않고 특혜의 방법으로 휴가를 연장했다는 것이다. 또 연이어 불거진 특혜는 2018년 전 평창에서 있었던 동계올림픽 통역병 선발 부탁, 근무 중이었던 의정부 부대에서 서울 용산부대로의 배치 이동 등 당시 카투사 장병을 관리하는 상관들에게 특혜 부탁을 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란다.
하기사 그 젊은이의 어머니가 당시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집권여당의 당수였니···.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마라.'는 속담이 없지 않지만,
아니 땐 꿀뚝에 연기가 났을까 싶다.
당시 당직사병가 한 '휴가 후 무단 미복귀' 내부 고발과 통역병 파견 청탁 의혹에 대해 그 젊은이의 측에서는 단순 문의였을 뿐 결코 외압은 없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전국 카투사 관리의 총책임자였던 최고 책임자 뿐 아니라 이 젊은이의 직속 상관이었던 장교와 병사들까지 외부에서의 압력(?)이 있었다는 녹취와 증언을 쏟아냈다. 그렇지만 그 젊은이의 엄마가는 올 초에 검사 등 검찰청의 인사와 예산을 좌지우지하는 법무장관이 된 후로는 그녀의 아들인 그 젊은이와 관련된 고소고발 사건은 7,8개월 동안이나 꿀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으니···
그렇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
그 젊은이와 관련된 특혜 소문은 되살아 났다.
아궁이 재 속에 숨어있던 작은 불씨가 되살아나 장작에 옮아 붙은 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다.
일부에서는 엄마와 엄마의 보좌관이 부대에 한 부탁 또는 문의 전화를 엄마의 자식 사랑 중 한 방법이라 치부하고, 또 어떤 덜떨어진 국회의원은 외압을 넣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외압이 아니라는 말 같잖은 궤변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하늘에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의 권력자인 집권당의 대표가 공직자에게, 그것도 자신의 아들에 관해 알아 봐달라는 전화가 외압이 아니라니 우습다. 그럼 과속에 걸린 운전자가 좀 봐달라고 단속 경찰관에게 몇 푼 쥐어주다 무마 대신 과중처벌 받았다는 뉴스, 일을 잘 봐달라고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보냈다가 일의 성사는커녕 뇌물을 돌려 받았지만 뇌물공여죄에 해당되어 적지 않은 처벌을 받았다는 뉴스는 가짜뉴스였단 말인가? 집권당의 당대표가 하위직 군인에게 자식 부탁을 아무리 많이 했다 할지라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니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有錢無罪 無錢有罪'가 '有權無罪 無權宥罪'로 바뀐 모양이다.
정말 소가 웃을 일이다.
지금도 말없이 땀 흘리는 병사들이 얼마나 많은데···
몇 차례 집에 가지 못하면서도 철조망 넘어 북한이 빤히 보이는 곳에서 총칼을 닦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어쩌면 권력을 가진 자와 富를 가진 자는 애국자가 될 수 없을지 모른다. 아니 될 생각이 없을 수 있겠다 싶었다.
여차하면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그들이 70년 전 평안북도 젊은이들이 나라에 바친 바친 목숨을 애국이라 여기랴.
진정한 애국자는 떠날 곳 찾지 않는 우리 민초들밖에 없는게 아닐까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
이젠 입으로만 나라 사랑을 외치는 사람들이 위정자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그렇다. 우리나라도 이젠 진정한 애국자가 위정자가 되어야 한다.
"위정자의 가면을 벗겨라."
"지금 당장 장관자리에서 끌어내려라."
구천을 떠도는 유격백마부대 용사의 영혼들이 울분에 찬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1950년 10월 38도선을 넘어 북진하였던 UN연합군이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철수하자
평안북도 정주군과 박천군 일대에서 치안 활동을 하던 청년들과 오산학교 학생들이 그 해 11월 22일
정주군 갈산면 번저리에서 유격백마부대를 조직하였다.
김응수를 부대장으로 한 대원 2,600여명은 군번도 계급도 없고 무기 등 변변한 지원이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애도, 철산반도, 월사리, 대화도, 신미도, 압록강, 청천강 하구 등에서 공산군과 500여회의
교전으로 적 사살 3,000명, 중공군 생포 600여명, 반공애국청년과 민간인 구출 18,000여명과 철도, 터널, 교량,기타 주요시설 파괴 등 북위 40도선까지의 넓은 지역에서 많은 전과를 거두어 UN연합군의 정규작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 기간 중 552명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던 바, 생존 대원들은 1952년 백령도에서 추도식을 올린것을 시작으로
각 처를 전전하며 추도 행사를 하다가 1992년 평안북도 유지들의 뜻과 성금을 모으고 노태우 前 대통령이
탑명을 휘호하여 양재시민의 숲에 충혼탑을 세워 젊은 반공의병들의 공과 넋을 기리게 되었다.
'길가는 손들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스무살 안팎 젊은 목숨을
반공구국에 기꺼이 바친 뜻을 새기고 넋을 기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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