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6. 금요일
유치원 등원을 위해 올라온 은규와 집사람의 환송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등에는 색소폰 가방을 메고, 한 손엔 세면도구를 넣은 가방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반주기 가방을 든 채.
10분도 걸리지 않아 도착한 서초예술문화회관
벌써 많은 분들이 도착해 있었는데 대부분 낯익은 분들이었다.
건강이 좀 좋지 않아 7개월이 넘도록 심상문학 시창작 수업에 나오시지 않았던 길기장 시인께서는 제일 먼저 나를 반기셨다. 또 길 詩人께서는 뵙는 분마다 악수를 나누곤 문화회관 내의 카페에서 향 좋은 커피를 대접하셨다.
잠시 뒤 도착한 진홍색으로 단장한 관광버스.
빈자리 하나 남지 않을 만큼 사람을 태우고는 9시 30분 정각에 출발했다.
오늘은 ‘1박 2일 일정으로 열리는 2018년도 '심상해변시인학교’ 첫날이다.
지금이야 내게 큰 설렘을 주는 날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지 않은 망설임 끝에 맞이한 날이다.
심상문학에서 詩공부를 시작한 뒤 처음 맞았던 작년의 해변시인학교 행사도 작년 이맘때쯤 있었었지만, 하필이면 고교동기들과의 백두산 산행 일정과 겹치는 바람에 참석치 못해 얼마나 아쉽던지, ‘내년 해변학교 행사에는 꼭 참석하리라.’ 마음을 먹었었는데…
그런데 올 연초에 ‘실버 몸짱대회 참가’란 별난 도전을 결심하고는 차근차근 준비를 하다 6월에 들어서자 트레이너의 “체지방과 체중을 줄이고 근육을 늘려라.”는 엄명(?)에 따라 6월 한 달 내내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식단을 조절해 겨우 체지방은 2%, 체중은 4kg를 줄였다. 하지만 트레이너로부터 복근이 드러나게 하려면 뱃살 위주로 체지방을 5%이상 더 줄어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기에 체지방 감소에 천적이나 다름없는 기름진 돼지고기 바비큐와 산해진미(?)랑 소주와 막걸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게 뻔한 해변시인학교 행사라 참석 여부를 두고 한동안 무척 고민되었다.
하지만 꼭 참석하고 싶었던 ‘심상해변시인학교’가 아니던가?
올 행사에는 꼭 참석하리라 마음먹지 않았던가?
더구나 이번은 40회 자축행사인데…
참석해서도 좀 절식을 하고, 조절하면 괜찮을 수도 있을 텐데…
또 많은 문우들과의 나눌 행복 등등
참석해야 할 이유가 너무 많았다.
우리가 탄 관광버스는 경부고속도로를 거쳐 영동고속도로를 달렸다.
버스 속에서 먹는 잠실 文友가 준비한 따끈따끈한 떡과 사회자의 쫄깃한 담소에 우리는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 같았다.
지루한 줄 모르고 도착한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의 서초수련원.
서초구청에서 서초구민들의 휴양을 위해 운영하는 곳이라 2년 전 내 가족 모두가 찾아가 가을밤을 보내면서 바비큐를 굽고, 손주들이랑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하면서 사랑을 키웠던 곳이라 전혀 낯설지 않았다.
한꺼번에 40여 명을 맞은 수련원은 청정지역인 주변에서 조달했을 먹거리로 만든 맛난 점심을 마련해 두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접시를 들고 양껏 들어 먹는 점심이 얼마나 맛나던지…, 절식이니 조절이니 했던 내 마음은 점점 힘을 잃고 있었다.
점심을 마친 후 삼삼오오 모여 강원도 산바람을 벗삼아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즐긴 여유로움은 또한 얼마나 꿀맛이던지 몸속 찌꺼기까지 다 사라지는 듯 했다.
정옥화 사회가 낭랑한 목소리로 시작을 알리자 단상에 오르신 박동규교 수님께서는 ‘또 다른 자기를 만드는 꿈’이 심상해변학교의 모토라는 말씀과 함께 문학과 인간의 관계, 삶 이야기 등을 말씀하시곤 40년이나 된 심상해변학교의 유래를 들려주셨다.
또 한 시간 동안의 수련원 자연을 벗삼아 보낸 자유 시간.
휴식 뒤의 문학 세미나.
행사는 일정표대로 착착 진행되고…
서울여대 문흘술 교수님의 세미나가 끝나자 모두가 바빠졌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바비큐 시간
매캐한 연기에 콜록콜록 기침하며 구운 돼지고기가 얼마나 맛나던지…
숯불이 가물가물 사그러질 무렵
상반기 등단 詩人에 대한 시상식으로 시작된 2부 행사.
이어 잠실지부 서영순 詩人의 사회로 이번 행사의 하아라이트가 시작되고…
많은 준비를 한 사회자는 전문 레크레이션 강사 빰치는 솜씨로 흥을 돋우고는 우리를 詩낭송 순서로 데려갔다.
서초, 잠실, 강남, 소공 등 네 지부의 문우들이 차례차례 단상에 올라 自作詩 또는 名詩를 낭송했는데 대단한 실력들이었다.
詩낭송에 이어 장기자랑.
지부별로 참가 신청한 문우들의 노래와 연주 등 장기자랑이 시작되자 강당 안의 웃음은 잠시도 끊어지지 않았다.
게임, 노래, 오카리나 합주, 색소폰 연주, 합창 등이 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었지만 우리에겐 숙제가 남아있었으니….
백일장이다.
박동규 교수님께서는 숙제를 내셨다.
詩題를 제시했던 예년과 달리 이번엔 主題를 제시하셨다.
사랑을 주제로 한 詩를 한 편씩 써서 내일 아침까지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수련원의 밤은 깊어갔다.
곧장 숙제하러 방으로 가는 문우.
숙소롤 가 일찌감치 잠자리를 까는 문우.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소를 즐기는 문우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 서초멤버 여럿은 다시 바비큐장으로 갔다.
솔향을 맡으며 남겨두었던 돼지고기와 문학과 인생을 안주 삼아 소주잔을 주고받으면서 남겨두고 떠나기 아쉬운 듯 산골 밤공기를 가슴에 담았다. 12시 30분쯤 나는 숙소로 돌아와 늦잠을 잘 요량으로 폰의 알람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나머지 분들은 3시가 다 되어서야 솔밭을 떠났다니 이분들은 참이슬에 밤이슬을 타서 마셨으리라.
2018. 7. 7. 토요일
어렴풋이 들려오는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폰의 시계는 4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밖으로 나왔다.
夏至를 지난 지 보름밖에 안 되었지만 밖은 여전히 어둑어둑하고 나를 깨웠던 알람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수련원 한편에 지어진 닭장에서 닭들이 홰를 치며 울어대고, 운동장을 지키는 나무에선 산새들이 새벽을 노래하고 있다 했더니 뒷산에서 내려온 향긋한 솔향과 졸졸졸 흐르는 계곡의 상쾌한 물소리는 내 발길을 산으로 이끌었다.
모두가 잠든 시간의 산길.
나만의 길이 더 좋았다.
최근 내린 비로 水量이 많아서인지 계곡물이 산길을 끊은 곳도 있었지만 징금다리 놓였듯 여기저기 박힌 돌이 있어 건너기에 큰 불편은 없었다. 오히려 제법 큰 소리로 흐르는 계곡물 소리는 내 마음의 때까지 씻어내리는 것 같았다.
여름 들꽃들만이 나를 반길 줄 알았는데 코스모스까지 피어 청초한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낯선 발걸음 소리에 놀랐는지 산아래 밭에서 고라니 한 마리가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산으로 산으로 줄달음쳤지만,
계곡물에서 지난밤을 보냈을 비단개구리 한 마리는 산길까지 뛰어나와 폴짝폴짝 앞장서 뛰면서 길을 안내했다.
한 시간이나 올랐을까?
개망초꽃이 만발한 평원이 펼쳐졌다.
한 송이씩 보일 때는 볼품없이 보이더니 이렇게 장관일 줄이야….
그제야 동녘하늘의 구름은 불그스레한 여명을 담기 시작했는데, 평원의 언덕에서는 몇 송이 달맞이꽃들이 밤새 정을 나누었던 조각달이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아쉽길래, 얼마나 더 자세히 보고 싶길래…
한껏 꽃잎을 열어 사라져 가는 조각달을 바라보고 있는 달맞이꽃이 애처로웠다.
오늘밤이면 또 만날 텐데…
달도 차면 기울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불교에서는 生과 滅은 하나라 하는데…
밝음 뒤에 어둠 오고, 어둠 뒤에는 밝음이 오는 게 자연의 섭리인데….
산에서 내려와서 수련원 직원에게 내가 다녀왔던 수련원 뒷산의 이름을 물었다.
그런데 직원 셋 모두가 산이름을 모른단다,
수련원 직원이 뒤뜰에 있는 나무이름을 모르더니 뒷산의 이름조차 모르다니 이해되지 않았다.
아침을 먹으며 식당아주머니에게 물었더니 ‘백덕산’이란다.
‘백덕산’이라면…
100 가지의 덕을 갖춘 산이란 뜻의 '百德山'?
그렇다면 두 시간 동안 백덕산의 精氣가 담긴 공기를 마신 내 가슴에도 德 한두 개쯤은 들어왔을 텐데…
아침식사와 얼마 동안의 자유 시간을 끝내자.
문흥술 교수님께서 백일장에 제출된 詩에 대한 전반적인 심사평에 이어 장원을 발표했다.
장원의 영광은 '소리'란 제목으로 비 내리는 소리와 부침개 부치는 소리를 조화롭게 담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아주 잘 표현한 우리 서초지부의 김애경 詩人이 차지하면서 참석자 모두로부터 부럼움 담긴 축하가 쏟아졌다.
평소 수업시간에 낭송하는 自作詩를 들을 때마다 남다르다 싶었는데 역시…
장원과 등단이 마땅한 文友였다.
장원상 시상식에 이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서울로 출발∼
버스는 아쉬움을 가득 실은 채 서울로 달렸다.
文友들이 내년의 심상해변시인학교 행사는 더 알차고 더 멋지게 하자는 다짐으로 아쉬움을 달래는 사이 서울 도착.
2018년 7월 6일과 7일의 1박 2일은 행복 그 자체였다.
맘껏 고기를 먹고 양껏 술을 마셔서일까?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 내 몸무게는 4kg를 줄였던 6월 이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하지만 맑은 공기와 멋진 문우들과 행복을 나눈 덕분일까? 마음의 근육은 적어도 늘어난 체중의 몇 배는 더 생긴 느낌.
그래서일까? 아내와 손주들이 기다리는 집에 들어서는 내 발걸음은 마치 새털처럼 가벼웠다.
'제40회 심상해변시인학교'
내가 나에게 선물한 오래오래 기억될 멋진 추억이겠다.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에 위치한 서초수련원
서초수련원 대강당
수련원 구내식당에서 맛난 점심을…
개회사에 이어 심상해변시인학교의 유래를 들려주시는 박동규 교수님
박동규 교수님께서 1978년 로마에 머무실 때 한 해변에서 열린 '세계시인대회'를 보셨단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詩人 또는 詩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래해변에서 비키니, 수영복 등 아주 편한 차림으로
名詩를 낭송하거나 自作詩를 낭송하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으시곤 귀국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시도하리라 마음먹었단다.
그래서 1979년 포항 구룡포의 한 초등학교를 빌려서 첫 심상해변시인학교를 열었단다.
전국 각지에서 140여 명이 참석했었는데 그 중 절반이상은 이미 등단한 기성 詩人이었는데
참가자들이 교정에서 직접 자신들의 식사를 마련하고, 교실 마룻바닥에 자리를 깔고 잠을 잤단다.
해변시인학교란 이름에 걸맞게 그 이후로도 주로 서해안, 동해안, 남해안 등 주로 바닷가에서 행사를 했다며
초창기에는 재미난 또는 어처구니 없는 에피소드가 많다며 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시기도 하셨다.
1979년부터 2018년 지금까지 40년 동안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진행된 심상해변시인학교.
한때는 참가자가 300여 명에 이르고, 3박 4일이상 진행되기도 했단다.
교수님께서는 현대그룹 창업자이신 故 정주영 회장께서도 생전에는 심상해변학교에 관심 뿐
아니라 취지에도 깊이 공감하셔서 여러 차례 참석해 도움도 많아 주셨다며그때를 회상하셨는데…
이때 들리는 조금 작게 들리는 교수님의 목소리에는 어떤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유사한 시인학교가 많이 생긴 탓일까? 詩 한 편을 즐기기 어룰 만큼 여유를 잃은 세태 탓일까?
1박 2일의 이번 행사에는 한창 때에 비하면 절반의 절반도 안되는 40여 명밖에 참석치 않았다.
박동규 교수님의 애제자이자 서울여대 교수이신 문흥술 교수님께서 강단에 올랐다.
몇 십 년째 심상해변시인학교가 있을 때마다 달려오신다며 이번에는 ‘他者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박목월, 유치환, 박재삼 등 유명 詩人들의 詩와와 함께 ‘인간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또 詩에서의 사랑은 어떠해야 하는지 말씀하셨다.
수박을 자르고 식사를 준비하는 여성 문우들의 손길도 바빠졌다.
수련원 뒤뜰 솔밭에서는 곳곳에서 메케한 냄새와 함께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탁자마다 술병들이 즐비하게 줄을 서고, 밥과 국이 놓여졌다
고기 굽는 사람은 굽는 사람대로 즐겁고
고기 먹는 사람은 먹는 사람대로 즐겁고
술 마시는 사람은 마시는 사람대로 즐거웠으니
그 시간 수련원 솔밭엔 온통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우애뿐이었다.
나도 고기를 구우면서 한 점, 고생한다고 주면 또 한 점, 구워놓고 또 한 점.
강원도 맑은 공기에 내 몸이 숙성되어서 더 그랬을까?
두 달여 만에 먹는 돼지고기는 어찌 그리 맛있던지 또 문우들과 주고받는 소주는 왜 그렇게 달콤하던지…
나는 체중조절이니 지방 줄이기는 한 이틀은 아예 잊어버리기로 하고는
맛난 돼지고기를 안주 삼아 술은 따라주면 따라주는 대로 마시고 술잔이 비면
내가 따라 마시기까지 하면서 한 달 동안 줄였던 4kg를 채우고 있었다.
상반기 등단 시인 시상식
상반기에 등단하신 김일산 詩人
상반기에 등단하신 이춘희 詩人
詩를 낭송하고 있는 이춘희 詩人
온갖 봄꽃 만발한
4월의 양재시민의숲
저만치 벚나무 아래 벤치
젖꼭지 물고 있는 아기를 내려다보며
등을 토닥이는 엄마의 손길
여인 품속의 아기가 부러워서일까.
엄마 품이 그리워서일까.
벚꽃들은 제 몸을 헐어
살포시
여인의 무릎에 내려앉는다.
서초 문우들의 詩 낭송
'오솔레미오'를 열창하는 김일산 詩人
강남지부 문우들의 합창
서초팀의 '개똥벌레' 합창
잠시 숨을 돌리며 하는 OX 게임
합창하는 송파지부 문우들의 앙증맞은 율동
문학과 인생을 논하며 밤새워 참이슬에 밤이슬을 타 마시는 문우들
새벽 5시의 수련원, 파란 하늘의 조각달이 외롭다.
백덕산 중턱의 개망초 평원
하나의 점으로만 보이는 조각달에 내일 밤을 기약하며 하직인사하는 달맞이꽃
맑은 공기 때문일까? 노란 꽃잎이 더 노랗게 보여 더 애처롭게 보였다.
폐회사를 겸해 마무리 말씀을 하시는 박동규 교수님
서초문우들의 기념사진, 회장을 비롯해 몇 사람은 어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