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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주들-천아, 보송이, 다솜이..

'할계전'의 교훈

우여곡절 끝에 어린이 수영교실에 들어간 우리 정원준.

그래서 요즘 우리 원준이에게 월, 수, 금요일은 가장 바쁘고 신나는 날이다.

첫 수영수업이 있던 날.

원준이의 수영 모습이 보고 싶어 나는 수영장을 볼 수 있는 지하 1층 휴게실로 갔다.

휴게실에는 수영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여럿의 엄마들 중에 원준이 엄마도 세은이를 데리고 있었다. 

원준이는 어린이 집을 다녀와 간식을 먹고는 수영 준비를 했단다.

집에서 미리 수영복을 입고 겉옷만 걸친 채 원준이를 데리고 가서 문화센터의 1층 카운터에서 카드를 제출한 다음 락카키를 받아들고 지하 2층으로 갔지만, 남자 탈의실에는 들어갈 수 없어 어쩌나 했는데 마침 원준이가 아는 형아를 만났단다.  그래서 그아이에게 락카에 옷 보관과 수영가방 등을 부탁한 다음 휴게실로 왔단다.

2년 전에는 물이 얕은 어린이 풀장에서 수영놀이를 배우던 원준이가 수심이 1.5m인 성인용 풀장에서 수영을 배우고 있었다. 뒷허리에 헬파를 묶은 채 양손으로 키판을 잡고는 열심히 물을 차면서 25m 레인을 오가고 있었다.

그런데 원준이만 수영모자는 물론 수경도 쓰지 않았다. 분명 수경과 수영모자를 수영가방에 넣었다는데….

수영 끝나는 시간에 맞춰 내가 탈의실로 내려 갔더니 샤워실에서 원준이가 서성이고 있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수영복을 벗긴 다음 샤워를 시키고, 수영복을 대충 빨아 탈수기에 넣어 돌렸다.

샤워실 선반에 올려져 있는 원준이의 수영가방에는 수영모자와 수경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수영 두 번째 날에도 나는 수영 끝나는 시간에 원준이를 만나 원준이를 도왔다.

원준이가 세 번째로 수영가는 금요일이었다.

원준이 엄마가 전화를 했다.

"아빠, 오늘부터 수영장에 오지 마세요. 이제 원준이가 혼자 하도록 해야겠어요."

저녁식사 후, 원준이가 수영장에서 잘 했는지 궁금해서 딸에게 전화를 해 물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원준이가 옷을 갈아 입은 후 수영가방을 들고 나오더란다.

그런데 수영가방에 수영복이 없더란다. 탈수기 안에서 꺼내지 않았더란다. 

'아무래도 아직은…'

다음 월요일,

이날은 내가 원준이를 문화센터에 데려 가기로 했다.

원준이를 데려가는 내게 세라가 이렇게 말했다.

"그럼, 아빠가 데려만 주시고 집에 들어가세요."

그렇지만 나는 수영이 끝나면 탈의실에 내려갈 작정으로 휴게실로 올라와 수영장을 보고 있었다.

형아, 누나들을 따라 준비운동하는 원준이의 자세가 좀 어설퍼 보이기는 했지만 무척 열심히 하고 있었다. 

수영수업이 시작되어 한 명씩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원준이만 헬파를 허리에 매었을 뿐 나머지 아이들은 키판만 잡고 수영을 했다. 원준이가 물에 뛰어들 순서, 그런데 원준이가 허리에 맨 헬파를 도로 벗는 게 아닌가.

키판만 양손으로 붙잡고 물에 뜬 원준이를 수영선생이 앞으로 세게 밀자 원준이는 양발을 번갈아 열심히 물을 차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수영을 하지 못하는 원준이는 채 1m도 가지 못해 로프를 잡았다가 발을 굴리고, 또 로프를 잡았다가 발을 굴렸다. 저러다가 25m 레인을 언제 가나 싶었다.

저러다가 힘이 부치면 어쩌나 싶었다. 수심이 깊은데….

정말 2/3지점 쯤에서는 너무 힘들어 보였다. 로프에서 손을 떼 키판을 잡는 순간 갑자기 얼굴 절반 정도가 물속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오면서 로프를 잡았다. 원준이가 위험해 보였다. 앞뒤에 아이들은 있었지만 수영선생은 멀리 출발지점에 있었다. 나는 수영장으로 뛰어가려고 일어섰다. 그런데 원준이는 로프를 잡고 조금씩조금씩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조금을 남겨두고는 로프에서 손을 떼고는 키판만 잡고 힘차게 발을 굴려 골인지점에 도착했다. 

물 밖으로 나와 출발점으로 걸어 간 원준이에게 수영선생은 다시 허리 헬파를 매어 주었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순간 오래 전에 읽었던 『할계전(瞎鷄傳)』이 떠올랐다.

나는 그 글의 교훈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할계전』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성호 이익( 星湖 李瀷.1681∼1763) 선생이 쓴 글로, 몸이 성한 닭보다 새끼들을 제대로 건사(제게 딸린 것을 잘 보살피고 돌봄)하는 '애꾸눈 닭 이야기'이지만, 우리에게는 육아(育兒)를 하는 데 있어 안전한 환경을 선택하고 사랑으로 보살피되,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 주고 묵묵히 지켜보는 것이, 아이의 주위를 맴돌며 과잉보호하고 간섭하는 것보다 좋다는 교훈이 담긴 글이다.

 

요즘 우리 원준이는 수영을 더 재미있어 함은 물론이고, 혼자서 수영복을 탈수까지 해서 온단다.  .

 

 

 

                                        할계전(
瞎鷄傳)

 

    눈 먼 암탉이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는데, 바른편 눈은 완전히 덮였고 왼쪽 눈도 반 이상 실눈이 되어 있었다. 먹이가 그릇에 가득하지 않으면 쪼아 먹지를 못하고, 다니다가 담장에라도 부딪치면 헤매다가 돌아 나오곤 하니, 모두들 저래가지고는 새끼를 기를 수 없다고 하였다.
   마침내 날짜가 차서 그 눈먼 닭이 품고 있는 알에서 병아리가 깨어 나오니 이를 빼앗아서 다른 어미닭에게 주려하였으나, 한편으로 측은하기도 하여 차마 그러지 못하였다. 얼마 후 살펴보니, 별다른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뜰 주변을 떠나지 않는데 병아리들은 똘똘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다른 어미를 보면 대개가 병들고 상처받아 죽거나 잃어버려 혹 절반도 제대로 못 기르는데 유독 이 닭만은 모든 병아리 새끼들을 온전히 길러내니 어쩐 일인가?

   흔히들 새끼를 잘 길러낸다고 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즉, 먹이를 잘 구하는 것과 환란(患亂)을 막기 위한 사나움이다.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면 어미 닭은 흙을 후비고 숨어 있는 벌레를 찾아내느라 부리와 발톱이 다 닳아빠지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새끼들을 불러 모으느라 잠시도 편히 쉴 틈이 없다. 또 위로는 까마귀와 솔개, 주위로는 고양이나 개들을 살피며 부리를 세우고 깃을 펄떡여 목숨을 내걸고 항거함이 마치 용사가 맹적을 만난 것같이 한다.
   그러다가 숲 속으로 달아나서는 때맞추어 불러서 몰고 오는데 병아리들은 삐악 거리며 간신히 뒤따라오긴 하지만 힘이 빠지고 병들기 십상이다. 때로는 엇갈리어 길을 잃기라도 하면 물이나 불 속에 빠져 생사를 기필할 수 없으니, 이렇게 되면 먹이를 구해준 것도 허사로 돌아간다. 또 조심조심 보호하고 타오르는 불길같이 맹렬히 싸워도 환란이 스쳐가고 나면 병아리 열 마리 중에 보통 예닐곱 마리는 잃고 만다. 게다가 너무 멀리 나가 사람의 보호도 받을 수 없으면 사나운 새 매를 무슨 수로 당해내겠는가. 이렇게 되면 환란을 방비하느라 애쓴 것도 허사가 된다.
   그런데 저 눈 먼 닭은 하나같이 모두 이와는 반대이다. 멀리 갈 수 없으므로 사람 가까이에서 맴돌고, 눈으로 살필 수 없으니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행동을 조심조심하며 노상 끌어안고 감싸준다. 그러므로 힘쓰는 흔적은 보이지 않아도 병아리들은 저들끼리 알아서 먹이를 쪼아 먹고 자라난다.
   사물을 양성하는 방도는 한갓 젖먹이는 은혜에 달려있는 것이 아님을 이제야 알겠다. 통솔하되 제각기 제 삶을 이루도록 해야 하니, 그 요령은 오직 잘 인솔하여 잃어버리지 않는 것 뿐이다. 나는 이 병아리 기르는 것으로 인하여 사람을 양육하는 도리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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