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에 쓰는 편지
돌담 이석도
어머니
세월이 가면
잊힐 줄 알았습니다
아니, 조금은 옅어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나이가 들수록, 당신은
지워지지 않는 문장처럼
더 또렷해집니다
전화기 너머
“잘 있다, 걱정 마라”
아버지 먼저 떠나신 고향 집을
홀로 지키며 짧은 웃음으로 늘
자식들 마음부터 덮어주시던 어머니
그 한 마디에 저는 비겁하게 안심했고
그 안심 뒤에 숨은 당신의 텅 빈 외로움을
끝내 보지 못했습니다
해마다 5월이면
지그시 눈을 감습니다
제피 향 넘실대던 고향 집 부엌
지글지글…, 군침을 삼키게 하던 제피장떡
그 소박한 한 끼가
당신의 사랑이었음을
그땐 왜 몰랐을까요
어머니
당신 곁에서 보낸 하룻밤을 뒤로하고
새벽 안부 몇 마디만 남긴 채 서둘러
등을 돌려 서울로 향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금방 돌아오겠다고 했던 저의 말이
이승에서 드린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몇 시간 뒤,
당신이 떠나셨다는 전화를 받았을 땐
어머니 마지막 길조차 배웅하지 못한 아들
저는 통곡마저 죄스러웠습니다
어머니!
이제야 알겠습니다
세월은,
무언가를 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더 깊게 새긴다는 것을…
손주들의 맑은 웃음 사이에서
문득문득 당신의 얼굴을 봅니다
행복을 느끼는 찰나의 침묵 속엔
늘 어머니, 당신의 이름이 남습니다
곁에 계실 적
사랑한다는 말 한 번
제대로 건네지 못한 이 자식
이제 와 부르는 이름은
바람보다 늦고, 눈물보다 가볍습니다
이승의 그늘이
한여름 태양 아래 얼음처럼
녹아내리는 것을 느끼는 나이가 되어
저는 가끔
당신이 계신 하늘을 향해
마음의 걸음을 조용히 내디뎌 봅니다
다시 만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당신의 긴 이야기를 온전히 듣고
투박해진 손을 더 오래 잡아드리겠습니다
늦었지만, 늦지 않게
당신을 모시겠습니다
그러니 어머니
그날까지
그곳에서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엄마!
(2026.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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