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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또 한 해를 보내며···

2022. 12. 31. 토요일

양력으로 섣달그믐날이다.

지난밤 잠자리에 들 때는 6시에 울리도록 되어 있는 스마트폰의 알람을 끄면서 '내일은 토요일이니 늦잠 좀 자야겠다.' 했었는데 새벽에 절로 눈이 떠져 시계를 확인했더니 6시였다. 

몇십 년이란 세월 동안 눈을 뜨게 만든 06시 알람에 길들여진 덕(?)일까?

나이가 들면 새벽잠이 없어진다던데 내일이면 70줄에 들어서는 나이 탓(?)일까?

따뜻한 이불속에서 한 시간만이라도 더 자야겠다 싶어 몸을 뒤척였지만 그럴수록 정신은 더 말똥말똥···

 

서너 시간을 헬스장에서 보낸 다음 오후에는 오늘로 예약해두었던 헌혈을 하기 위해 '강남헌혈의 집'으로 갔다.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고령화로 인해 젊은이들이 줄어서인지 몰라도 지난 10월에 헌혈 때는 조용하던 헌혈의 집이 젊은이들로 북적북적했다. 20개도 넘는 채혈용 안락의자 중 빈 의자가 없었으니 자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인파(?)였다.

순번대기표를 발행기에 표시된 대기자 수는 예약하지 않고 온 일반 헌혈자가 11명이고 예약 헌혈자는 0명이었다. 

왁자지껄한 연말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헌혈의 집을 찾은 많은 젊은이들을 보고 있자니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해의 끝날을 거실 소파에 앉아 우두커니 먼 산만 바라보거나 TV를 보면서 보내기보다는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헌혈을 하면서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나 혼자만 한 게 아니구나 싶어 흐뭇했다.

나는 미리 예약한 데다 전자문진까지 집에서 PC로 미리 했던 터라 시간에 맞춰 도착했더니 기다림 없이 곧바로 내 차례가 되어 상담실로 가서는 혈압, 혈액형 검사, 문진 내용 확인 등 제절차를 마친 후 상담 간호사에게 물었다.

"저의 생년월일이 1954년 9월 ○○일인데 언제까지 헌혈할 수 있어요?"

"만 69세까지 가능하세요."

"만 69세까지라고 하면 만 70세가 되는 2024년 9월 ○○일 하루 전에도 가능하다는 겁니까?"

"네 맞아요."

"나는 좀 더 하고 싶은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지금은 없습니다. 관련 법이 바뀌면 몰라도···"

"뉴스에서 헌혈자가 줄어 피가 늘 모자란다던데···, 평균 수명이 늘어난 데다 요즘 70대는 예전의 60대보다 건강상태가 훨씬 더 좋아 80세까지는 헌혈해도 괜찮을 테니 간호사님께서 헌혈 상한 나이를 좀 올리자고 제안 한번 해 보세요. 잘하면 제안상 받을 거야. 저도 대한적십자 홈페이지에 들어가 제안할게요."

그러자 상담사는 살짝 예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어르신, 그럴게요."

 

'따끔···' 한 번으로 헌혈은 거의 끝

주삿바늘이 박힌 왼팔만 내맡긴 채 안락의자에 누워 있자니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들락거렸다.

2024년 9월···.

일 년에 최대로 할 수 있는 전혈 헌혈은 5회. 

그렇다면 내가 앞으로 할 수 있는 헌혈은 기껏해야 8회 또는 9회. 

타인을 위해 사심 없이 하는 좋은 일이라곤 헌혈밖에 없는 내 삶인데 이마저 채 열 번도 남지 않았다 생각하니 서글펐다.

2022년은 나라 안팎으로 참 다사다난했던 해였다.

2020년부터 세계인을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는 아직도 여전한 데다 대홍수, 대가뭄, 폭염, 혹한 등 이상기후만 해도 버거운데 새해 벽두에 발발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1년이 다 되도록 끝날 줄 모른다. 이 탓에 지구촌은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어렵사리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음에도 국회에서 절대다수를 점하고 있는 구악(舊惡)의 세력들이 지난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범죄혐의가 관악산의 바위만큼이나 크고 많은 대표를 지키기 위해 선동을 일삼고 사사건건 정쟁을 일으키고 있으니 민초들의 삶은 나날이 팍팍해지고 마음 편한 날이 없는 한 해였다.

우리 집에도 다소간의 어려움은 있었다. 전가족이 코로나에 감염되는, 심지어 손주 셋은 두 번씩 감염된 코로나 고비와 14년 전쯤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어 내 두 딸에겐 개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 주고 세은이와 은규, 원준이 등 손주들에게는 동물사랑을 일깨우고 실천하게 해 준 뽀미가 올 늦가을에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슬픔이 있었지만 큰 어려움 없이 2022년의 끝날을 맞았으니 정말 다행이다 싶다.

더구나 나는 친구들과 시작했던 '서울둘레길'을 완주하고, 집사람과 함께 둘이서 걸었던 '서울둘레길'까지 완주했을 뿐 아니라 거의 일 년 내내 헬스장과 산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체력을 쌓았는 데다 손주들과 원 없이 사랑을 나누었으니 더없이 행복한 2022년이었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꽁꽁 묶였던 걸음이 풀린 금년도엔 집사람과 '석모도 1박 2일', '1박 2일의 코레일 섬여행'을 다녀오고, 집사람과 함께 논현동 사모님을 모시고 해운대 2박 3일 여행까지 다녀왔으니 이만하면 내 삶의 목표이자 내 블로그의 모토(motto)이기도 한 '瑞草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에 한 발자국은 더 다가갔겠다는 생각에 또 행복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행복들이 내일부터 시작되는 2023년에는 나뿐 아니라 내 주위의 모든 분, 아니 지구촌 모든 이들의 가슴에 가득 스며들길 두 손 모아 발원하면서 나에게 남은 8번 또는 9번의 헌혈은 단 한 번도 놓치지 않고 다하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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