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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치매검사를 받다

2022. 7. 25. 월요일
아침식사를 마친 후 헬스장에 가기 위해 가방을 둘러매는데 집사람이 말했다.
"느티나무 쉼터 가야 되니까 오늘 하루 운동 쉬세요."
"다음 주로 예약했다며···"
"어제 전화가 왔는데, 오늘로 예약한 사람이 취소했다면서 괜찮으면 오늘 오라고 해서 좋다고 했어."
"그래····,  나도 가야 되는 거야?"
"당근이지···, 당신도 예약했어."
 
한두 주 전 어느 날이었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더니 먼저 운동을 끝내고 집에 와 있던 집사람이 심각한 표정으로 치매검사를 운운했다.
헬스장에서 돌아와 대문 앞에 섰더니 갑자기 대문의 비밀번호가 전혀 생각나지 않아 내게 전화를 했단다. 서방이란 작자는 전화를 받지 않고···, 아무리 애를 써도  비밀번호는 떠오르지 않아 딸에게 전화를 걸고서야 집에 들어왔다면서 최근 들어 부쩍 기억력이 떨어진 것 같다며 치매검사를 한번 받아보자고 하길래 내 부모님이랑 장인 장모님 모두 몹쓸 병 없이 천수를 누리셨는데 별걱정을 다한다고 나무랐다. 한편으론 '우리가 벌써 치매를 걱정할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늙더라도 치매 또는 중풍만은 절대 걸려선 안 된다는 간절함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 무렵에 집사람이 서초구 보건소의 '치매예방서비스 안내'를 본 모양이다.
 
'느티나무 쉼터'
처음 가는 곳이지만 우리 아파트에서 채 2km도 되지 않는 거리라 금방이었다.
마침 딱 한 자리 남은 지하주차장의 주차 공간에 차를 구겨 넣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 '치매안심센터'로 향했다.
4층 전체로 꾸며진 '서초구 치매안심센터'는 생각보다 넓고 분위기 또한 무척 밝아 마치 큰 병원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밝은 미소와 상냥한 태도로 맞아주는 여직원의 안내를 받아 접수를 마친 후 검사가 시작되었다.
시작은 '인지선별검사'였다.
1:1로 마주 앉은 검사 직원이 사는 곳, 지금의 위치, 날짜 등 내게 사소한 질문을 한 다음 몇 가지 도형들을 보여주며 따라 그리도록 했지만 똑같이 그리는데 어떤 어려움도 없었다. 다음은 30자 남짓한 문장을 한 번 들려준 다음 내게 들은 문장을 말해보라고 하길래 한 단어도 빠뜨리지 않고 말했더니 10분 후에 다시 물을 테니 기억해 두라고 했다. 다음은 정해진 시간 내에 야채 또는 과일의 이름을 대는 검사였는데 주어진 시간이 30초쯤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야채와 과일의 이름 19개를 말했다.
다음은 뇌파 검사.
속에 문어 빨판 같은 촉수가 가득한 헬맷을 머리에 쓴 채 눈을 뜨고 2분, 눈을 감고 2분 있으면 되는 검사였다.
뇌파 검사가 끝나자 검사 직원은 내게 아까 기억해 두라고 했던 문장을 한번 말해 보라고 했다.
다시 한 단어도 틀리지 않고 말했더니 나의 인지 선별검사 결과는 30점 만점에 30점,
AI가 분석한 뇌파 검사의 결과도 나왔다. EEG 뇌파 검사 결과 18.1로 정상인의 평균 범주 내에  해당한단다.
하지만 내 전두엽 부분이 저활성이란다. 인성, 성격, 언어, 표현, 논리, 기억 등 사고 기능을 담당하는 게 전두엽이라며 검사자는 나의 경우 전두엽을 좀 더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평소에 말과 표현을 많이 하고 독서도 많이 하란다.
검사 직원의 말을 듣는 순간 '아햐, 내가 좋은 시를 쓰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율 신경계 분석의 결과는 16:84로 교감신경에 비해 부교감신경이 훨씬 활성화되어 있다며, 이것은 같은 성별의 노인 평균 비율을 훨씬 초과하는 수치란다. 부교감 신경이 우세할 경우 우울, 무기력, 신경쇠약, 소화불량 등이 생기며 이의 원인은 운동부족 및 혈액순환이 여의치 않아 생긴 결과란다. 허허 헛웃음이 나왔다. 하루 3시간씩 일주일에 적어도 5,6일은 운동하는 덕분(?)에 허구한 날 집사람으로부터 "운동 좀 줄이소." "운동 좀 그만하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듣고 사는 내가 운동 부족이라니···, 나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였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분석한 스트레스는 5단계 중 1단계인 안정 단계, 인공지능 감성 분석에서 우울 감성은 3단계 중  2단계 약간 우울, 불안 감성은 3단계 중 1단계로 보통.
 
집사람의 결과도 나왔다.
인지선별검사 결과는 30점 만점에 28점이고, 뇌파 검사 결과는 16.8로 역시 정상인의 평균 범주 내였다.
그런데 집사람의 뇌파 검사 결과는 전두엽이 저활성이었던 나와 달리 두정엽 쪽이 살짝 저활성이었다. 두정엽은 전두엽과 후두엽 사이의 부분으로 공감, 감각기능, 신체 각 부위의 체감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역할을 한다는데, 평소 새로운 장소를 좋아하지 않고 공간 감각이 좀 떨어지는 집사람에게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집사람의 자율 신경계 분석 결과는 20:80으로 나보다 조금은 좋았지만 역시 교감신경보다 부교감신경이 훨씬 더 활성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5단계 중 3단계인 저항 수준이고,
AI가 분석한 우울 감성은 3단계 중 1단계 보통.
불안 감성도 3단계 중 1단계로 보통.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오길 잘했다 싶을 만큼 만족스러운 검사였다.
염려와 달리 나와 집사람의 검사 결과가 아직은 걱정할 단계가 아니라 다행이다는 안도감과 함께 선진국 수준에 이른 보건소의 서비스가 무척 고맙게 여겨졌다. 그러곤 지피지기(知彼知己), 즉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던가. 예전에는 '노망(老妄)'이리 불리었던 몹쓸 병이었을 뿐 아니라 지금도 환자 본인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가족 모두의 삶까지 피폐하게 만드는 병이 '치매'다. 그러니 온 가족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치매'만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60세 이상이면 일 년에 한 번씩은 지자체마다 운영하고 있는 보건소의 이런 무료 서비스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느티나무 쉼터'를 나설 땐 절로 앞으로는 정신건강 관리에도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는 각오가 샘솟았다.  
 
 

나의 뇌파검사 결과 분석표와 집사람의 뇌파검사 결과 분석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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