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10. 화요일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은규를 등교시킨 후 얼마간 얼쩡대다 헬스장으로 향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대부분 해제되었지만 헬스장은 여전히 썰렁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오기 전의 이 시간대면 비어 있는 러닝머신이 없었을 뿐 아니라 운동기구마다 열기가 넘쳤는데 헬스장은 오늘도 여남은 대의 러닝머신 중 두어 대만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뿐 적막강산이었다.
혈압 체크 후 스트레칭을 간단히 하고는 나도 러닝머신에 올라 TV를 켰다.
예상대로 지상파와 종편 TV 모두가 똑같은 상황을 생방송하고 있었다.
오늘은 대한민국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일
신임 윤석열 대통령은 주민들의 축하를 받으며 영부인과 함께 서초동 자택을 떠나 국립현충원 참배 후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함께 잘 사는 국민의 나라로 만들겠습니다." 란 방명록을 남긴 다음 취임식 행사장인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는데 행사장 단상 앞까지 차로 이동했던 전임 대통령들과는 달리 행사장 입구에서 하차해 걸었다. 영부인과 함께 행사장 단상이 있는 국회 계단 앞까지 180여 미터를 걸어 이동하면서 취임식에 참석한 국민들과 일일이 주먹 인사를 나누는 대통령 내외의 소탈한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았다.
TV에서 눈을 돌려 시계를 보는 순간 아차!
11시 30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3학년 3반의 체육시간이다.
운동하던 복장 그대로 서둘러 축구장으로 향했다.
주말과 평일 오후 서너 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는 일반인에게 완전히 개방되지만 주중 09시부터 오후 3시쯤까지는 정세은, 송은규와 정원준 등 내 외손주 세 놈 모두가 다니는 매헌초등학교의 전용 운동장인 양재 근린공원 인조잔디 축구장.
운동장 가운데에 보라색 셔츠를 입은 스무 명쯤의 남녀 학생들이 동그랗게 큰 원 모양으로 서서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그물망으로 가로막힌 운동장 밖이지만 나는 조금이라도 더 잘 보고 싶어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가까운 곳으로 다가가고 있는데 줄넘기를 하던 아이 하나가 동작을 멈추곤 손을 들어 흔들었다.
상의 셔츠의 색은 모두 똑같았지만 바지의 색깔을 보나 체형을 보나 틀림없는 은규였다.
화요일 이 시간이면 할아버지가 곧잘 운동하다 말고 와서는 동영상을 찍는 등 한참 보다 간다는 걸 아는 은규가 나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내가 보고 있다는 걸 알아서일까? 줄넘기하는 발놀림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큰 원형으로 서서 줄넘기를 하던 아이들 중 몇 명이 갑자기 동작을 멈추곤 남쪽 하늘을 가리키기 시작하고 곧 은규는 내게 다시 손을 들어 흔든 다음 연신 손가락으로 남쪽 하늘을 가리키길래 하늘에 하얀 구름을 내뿜는 비행기라도 있나 보다 싶어 은규가 가리키는 쪽의 하늘을 올려보았다.
우와!
보고만 있어도 내게 행운이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맑디맑은 하늘의 옅은 구름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무지개를 그릴 때면 당연히 그리게 되는 아치형이 아닌 일자형의 작은 모습이지만 파란 하늘이라 더 아름다웠다.
순간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시간에 이처럼 아름다운 무지개가 나타난 것은 상서로운 징조다 싶었다. 하늘도 우리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무지개는 비(雨)가 그친 뒤에 뜨게 마련인데 맑디맑은 오늘, 그것도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리는 서울 하늘에 뜬 것은 이젠 비(雨), 아니다 대한민국이 눈물 흘릴 일은 끝이 나고 앞으론 무지개 자신처럼 아름답고 찬란하게 번영해 빛날 일만 남았다는 걸 암시하는가 보다 여기니 가슴이 뜨거웠다.
그런데
우째 이런 일이···
어제까지 우리나라 軍 통수권자였던 문재인 前 대통령이 오늘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후 KTX로 사저가 있는 양산으로 낙향했는데, 그의 도착 시간에 맞추어 경남 양산의 하늘에 햇무리가 나타났단다. 그 뉴스와 양산 하늘에 뜬 햇무리의 사진을 보는 순간, 예부터 햇무리와 달무리는 흉조 중의 흉조였던 데다 비(雨)가 오기 전에 생기는 현상이라니 '혹시 양산에 눈물 쏟을 일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햇무리의 형상을 보면 둥근 원이 태양을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예전부터 태양은 황제 또는 임금의 상징이었으니 지금 시대엔 대통령의 상징일 게다. 햇무리가 흉조라니 그렇다면 태양을 옴짝달싹 못하게 포위하고 있는 원은 감옥의 암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면서 5년 전, 자신들이 만든 혼란기를 틈타 집권한 후 국민 앞에서는 평등과 공정, 정의의 화신인 양 설쳐댔지만 뒤로는 권력 남용, 부정부패 등 온갖 쇼와 내로남불을 일삼았던 어제까지의 집권 세력들, 그들에겐 감옥도 과분하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선진국 반열에 오른 우리 대한민국에 더 이상은 '前 대통령 투옥'이란 불행한 옥사(獄事)가 반복되지 않길 기도하고 싶었다.
하지만
속마음까지 숨기진 못한 걸까?
저녁 무렵에 달님이 얼굴을 내밀자
나도 모르게 나는 이렇게 빌고 있었다.
"하늘이시여! 햇무리가 님의 뜻이라면 뜻대로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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