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20. 금요일
8월 초순엔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폭염에 엄두조차 못 내고···
중순에는 백신 2차 접종 때문에 미루고 있었더니 '광복절만 지나면 바닷물이 차가워져 바다에 못 들어간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 듯 이번 주에 접어들면서 아침저녁으로는 시원하다 못해 선득해진 날씨라 이번 주말에 걷기로 했던 집사람과의 서울둘레길.
그런데 이게 웬 말인가?
주말부터 2차 장마가 시작된단다.
'2차 장마' 처음 듣는 말이다. 코로나가 만든 백신 1차 접종, 2차 접종···
하늘도 '1차, 2차'란 단어가 부러웠던 걸까? 지난 7월 초에 장맛비를 뿌렸는데도 또 장마란다.
주말에 걸을 예정이었던 둘레길을 9월로 미루는 수밖에 없겠다 마음에 하늘이 조금씩 야속해지고···
그런데 이게 웬 떡?
원준이네는 어제부터 횡성 서초수련원으로,
은규네는 오늘부터 횡성 웰리힐리로 휴가를 떠난단다.
텅 비게 되는 금요일, 챙겨야 하는 외손주들이 한 놈도 없는 금요일이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싶어 집사람에게 "금요일에 걷자."라고 했더니 흔쾌히 OK.
서둘러 아침 식사를 하고는 집사람과 함께 집을 나섰다.
과일이야 몇 가지밖에 안 넣었지만 얼음물, 생수 등 음료수를 많이 넣어서 그런지 배낭이 생각보다 묵직했다.
집사람과 함께 걷기로 한 오늘 서울둘레길은 지난 6월 12일에 고종사촌 누이들과 함께 걸었던 7-1코스에 이은 7-2코스로, 증산역을 출발해 봉산과 앵봉산을 거쳐 구파발역까지다. 서울둘레길 안내지도에 따르면 약 9.3km에 소요 예정시간은 4시간 20분인데 내가 혼자 걸었던 작년의 서울둘레길에서는 7-1 코스와 7-2 코스의 19.45km를 한꺼번에 걸었음에도 7시간 3분밖에 걸리지 않았고, 이륙회 친구들과 한 달에 한 번씩 걷고 있는 서울둘레길에서 딱 이 코스를 걸었던 지난 4월 18일엔 휴식시간 포함해 4시간 25분이 소요되었으니 집사람과 함께인 오늘은 넉넉히 잡아도 5시간 30분이면 충분하겠다 싶었다.
발걸음을 재촉해 신분당선 지하철에 올랐다.
출근시간이라 그런지 승객이 엄청 많았는데 양재역에서 3호선으로 환승했더니 콩나물시루가 따로 없었다.
7월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 19의 4차 대유행이 오후 6시 이후론 3인 이상 모임까지 금지할 만큼 가장 높은 단계인, 거리두기 4단계가 한 달이 넘도록 진행되고 있음에도 진정되기는커녕 나날이 확진자 수가 2,000명 대를 넘나들고, 최고 단계의 거리두기로 다른 모든 것은 강력히 통제하면서도 콩나물시루 같은 대중교통은 이대로 두면 어떡하나 염려스러웠다.
승객들은 모두가 마스크를 잘 착용하고 있었지만, 4차 대유행의 주종인 델타 변이는 살짝 스치기만 해도 감염된다던데···
하지만··· 시간에 맞춰 출퇴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들을 생각하니 한때 베트남이 그랬던 것처럼 완전 봉쇄가 아니고서야···
직장인이 아닌 나 같은 사람들이라도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조금 덜 이용한다면 방역에 많은 도움이 될 텐데 싶었지만···
신분당선에서 3호선, 3호선에서 6호선
두 번의 환승과 26개 역을 거쳐서야 도착한 증산역
증산역에서 1km쯤을 걸어 봉산 입구의 스탬프 부스에서
쌍 봉수대 그림이 아름다운 스탬프를 찍는 집사람
봉산은 높이가 채 210m도 안 되는 얕은 산이지만
햇볕 따가운 여름날이면 등산로를 따라 우거진 단풍나무 등 그늘이 일품이다.
서울둘레길을 절반쯤 걷고 있는 이륙회 멤버 중 한 친구는 지금까지 걸었던
코스 중에서 이 봉산·앵봉산 코스가 제일 좋았다고 할 만큼
꾀꼬리가 많아 꾀꼬리 앵(鶯)에 봉우리 봉(峰), '앵봉'이란 이름을 얻었단다.
235m밖에 안 되는 높이의 얕은 산이지만 다른 산에 비해 자연 그대로 숲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서울 시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산이란다.
청량리에 있었던 성바오로 병원이 구파발역 인근 여기로 옮기면서 改名한 새로운 이름
이처럼 멋지게 발전한 은평 성모병원의 모습을 아내와 함께 바라보고 있자니
청량리 성바오로 병원에서 태어난 우리 쌍둥이 딸의 신생아 시절 모습과
좋은 학부모가 된 40대, 지금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더 반가웠다.
약 10km, 5시간 30분
평소 날마다 10,000보씩 걷고 있는 집사람인데 힘들었단다.
평소의 두 배 되는 거리도 거리지만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산길이라 더 힘들었단다.
하지만 다섯 시간 반 내내 함께 땀 흘린 내 눈에는 모두가 만점이었다.
따가운 햇볕을 막아주겠다는 듯 하늘을 뒤덮은 구름도 만점
가끔씩 내리쬐는 햇볕을 가려주는 숲길의 그늘도 만점
땀이 날 때마다 시원하게 땀 말려주던 산바람도 만점
힘든 내색하지 않고 걷는 아내의 건강한 모습도 만점
세상에서 제일 편한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만점
구파발역에 도착할 무렵이었다.
먹구름을 잔뜩 안고 있던 하늘이 이젠
더는 못 참겠다는 듯 한 방울 한 방울
빗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행복이 가득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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