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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동체 일심동행

아내와 함께 걷는 서울둘레길(6)

2021. 7. 3. 토요일

정말 기가 막힌 날씨였다.

한때나마 '너무 뜨거우면 어쩌나···' 염려했던 햇볕은 겹겹이 구름을 쌓아 막아 주고, 며칠 전에는 일기예보에서 올 장마가 오늘부터 전국 동시에 시작된다기에 '하필이면 토요일부터야···' 하늘이 조금은 원망스러웠는데 완전 반대였다.

걷기에 더할 나위 없는 날씨였다.

지난 3월 1일 걷기로 했다가 비가 내리는 바람에 건너뛰었던 서울둘레길 5-2 코스(관악산 일주문-석수역)를 오늘 걷기로 했던 것이다. 5월과 6월 둘레길은 고종사촌 누이들과 함께 걸었으니 집사람과 단둘이 걷는 둘레길은 3개월 만인 셈이다. 사실은 고종사촌 누이들과 두 달 연속 걸었던 걸음이 너무 좋았던 데다 오늘 둘레길의 중간쯤에는 서울천주교 순례길의 마지막 코스인 '삼성산 성지'가 있고 또 '호압사'란 사찰이 있어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누이와 불심이 깊은 누이들이 좋아하겠다 싶어 연락했더니 南道여행 등 다른 선약이 있었다. 다른 주말로 늦추고 싶었지만 주말마다 친구들과 둘레길 또는 산행 약속이 있는 데다 오늘부터 장마철이 시작된다고 했으니 달리 일정을 잡을 수 없어 오늘 배낭을 메고 나선 것이다.

 

신분당선과 2호선을 타고 내린 서울대입구역.

등산복 차림에 배낭 멘 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콩나물시루만큼이나 복잡한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대 정문에서 내려 관악산 일주문으로! 

 

관악산 일주문
오늘 걸을 코스를 살펴보는 집사람
무슨 버섯일까?
관악산 보덕사
큰까치수염꽃, 꽃말은 달성(達成)
삼성산 성지

1836년(헌종 2) 이후 조선에 들어와 활동하던 모방(P. P. Maubant, 羅伯多祿) 신부와 제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L. J. M. Imbert, 范世亨) 주교, 그리고 샤스탕(J. H. Chastan, 鄭牙各伯) 신부 등 3명의 프랑스 선교사들은 기해박해가 일어나 피신했으나 은신처가 드러나고 말았다. 그러자 앵베르 주교가 8월 10일에, 그리고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가 9월 6일에 각각 자수하여 포도청과 의금부에서 신문을 받은 뒤 1839년 9월 21일(음 8월 14일)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세 선교사들의 시신은 3일간 효시를 당한 뒤 강변 모래밭에 함께 매장되었는데, 약 20일 뒤에 박 박오로 등이 그들의 시신을 거두어 지금의 서강대 뒷산 노고산에 안장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1843년(헌종 9)에 박 바오로 등에 의해 다시 발굴되어 과천 서쪽 봉우리인 삼성산(三聖山) 북쪽 끝자락의 박 씨 선산에 안장되었다. 박 바오로는 그 이장 경로와 유해가 안장되어 있는 장소를 아들 박순집에게 자세히 알려 주었고, 박순집은 훗날 기해·병오박해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 수속이 진행되자 이러한 사실을 교구에 보고하여, 시복 판사로 활동하던 푸아넬(V. L. Poisnel, 朴道行) 신부가 1886년(고종 23) 경에 이들의 무덤을 확인했다. 1901년 10월 21일 이들의 유해가 발굴되어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로 옮겨졌다가 같은 해 11월 2일 다시 명동 성당 지하 묘지로 옮겨졌다. 이들 3명은 1925년 복자품에 올랐고 1984년 시성(諡聖) 되었다.

1970년 봄 대방동 본당 주임 오기선 신부는 최석우 신부 등의 도움을 받아 삼성산 무덤 자리를 찾은 뒤, 같은 해 5월 12일 그 자리에 ‘삼성산 순교 성지 기념비’를 건립하여 김수환 추기경, 노기남 대주교, 박순집의 후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축복식을 가졌다. 또한 서울 대교구와 신림동 본당에서 1989년 무덤 자리 일대의 임야 약 16,000평을 확보한 뒤 세 성인의 무덤을 조성하여 명동 성당 지하 묘지에 남아 있던 유해 일부를 가져와 무덤 안에 안치하고 제대 등을 설치한 다음 교황 대사 이반 디아스 대주교 등이 축복식을 거행했다.

 

‘삼성산(三聖山)’이란 명칭은 본래 고려 말 名僧 나옹·무학·지공이 수도한 곳이라는 데서 유래되었으나, 이곳에 세 선교사의 유해가 안장되고 그들이 시성(諡聖:가톨릭교에서 죽은 후에 聖人品으로 올리는 일)되어 성인품에 오름에 따라 천주교회 안에서는 ‘삼성산’을 ‘세 명의 성인 유해가 안장된 성지’로 설명하게 되었다. (Daum백과)

 

호압사, 감자 캐는 불자들의 모습이 너무 정겨웠다.

이 절은 1407년(태종 7) 왕명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태종은 이 절이 있는 삼성산이 호랑이 형국을 하고 있어 과천과 한양에 호환(虎患)이 많다는

술사(術師)의 말을 듣고, 호랑이의 살기를 누르기 위하여 절을 창건하고 호압사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 1841년(헌종 7) 4월에 의민(義旻)이 상궁 남 씨(南氏)와 유 씨(兪氏)의 시주를 얻어

법당을 중창하였고, 1935년에 주지 만월(滿月)이 약사전 6칸을 중건하였다.

 

호암산 산림욕장
호압사 산책길
집사람과 마주앉아 마시는 소주는 어찌 그리 달콤할까?

7.83km, 

이십 리도 채 안 되는 길이지만 쉬엄쉬엄

근 5시간 동안을 집사람과 이런저런 도란도란 거리며 걸었던 관악산의 도란도란 길과 호압사 산책길.

어릴 적 추억을 꺼내며 걷곤 했던 누이들과의 둘레길도 좋았고, 삼십 년 묵은 우정을 나누면서 나라를

걱정하고 정치꾼을 잘근잘근 씹으며 걸은 다음 시원한 몇 잔의 소맥으로 목을 축이는 친구들과의

둘레길도 좋고, 세상 자유를 혼자 누리며 묵언수행을 하듯 걸었던 나 홀로 둘레길도 좋았지만

40년 숙성된 마누라와 함께 40년 세월을 찍은 필름을 돌리며 걷는 걸음도 참 좋았다.

 

집사람이 힘들어해도 쉬고, 내 발걸음이 무거워도 쉬고,

멋진 바위 보이면 걸터앉고, 경치 좋은 곳 나타나면 그냥 가기 아쉬워 쉬었다.

지난밤을 냉장고에서 보낸 생수를 마시면서 집사람이 준비한 과일들의 상큼함을 즐기는 둘레길.

두 눈으로 볼 순 없었지만 우리 곁에는 늘 부모님과 딸네들, 외손주들이 함께 걸었으니···

장마를 앞두고 구름을 헤쳐 모이게 하느라 솔솔 불어오는 산바람이 너무 시원했다.

줄줄 흐른 땀에 흠뻑 젖은 속옷은 솔솔솔 시원한 솔바람이 말려주고

아침을 굶었나 싶을 만큼 허전해진 내 속은 맛난 갈비와 

집사람이 환한 미소로 따른 소주가 채웠다.

 

행복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내 또래로, '애플'을 창업한 이 시대 최고의 인물이었던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10년 전쯤 60세도 안된 나이에 故人이 되었고,

우리나라 최고 재벌의 오너가 결혼한 지 10여 년 만에 두 자녀를 둔 체 갈라서고

13년 연속 세계 최고 부자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지만 에이즈 퇴치 등 인간의 미래를 위한 연구 등에

자기 재산의 상당 부분을 아내와 함께 기부해 세계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온 내 또래, 빌 게이츠(Bill Gates)가

얼마 전  결혼 28년 만에 이혼을 발표해 세계인을 놀라게 했는데, 결혼한 지 40년도 넘은 내가 오늘처럼 아직도

아내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거뜬히 20리 길을 걷고 소주잔까지 기울이지 않았던가.

이 시대 최고였던 인물뿐 아니라 많은 권력자들이 가장 부러워했을 건강과 체력을 가진 데다

우리나라 최고 재벌의 젊은 주인도, 세계 최고였던 갑부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아내와의 즐거운 시간을 서울둘레길을 걸으며 잘 익어가고 있으니

이만하면 내 일생이 꽤 행복한 삶이다 싶었다.

 

근데···,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하늘에서 빗방울이 뚝!뚝!뚝!

마치 우리 둘레길이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이 뿌리기 시작했다.

올 잠마의 시작이었다. 그래서일까?

기분이 더 좋았다.

야누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