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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동체 일심동행

아내와 함께 걷는 서울둘레길(4)

2021. 5. 1. 토요일

눈을 뜨자마자 거실로 나와 창문을 열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낮은 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가로지른 전깃줄들은 대롱대롱 줄지어 매달린 물방울이 하나씩 하나씩 떨어뜨리고 있었다.

'이틀이나 연달아 틀리던 일기예보가 하필이면 오늘은 맞네···' 싶으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되기 시작했다.

오늘은 집사람과 함께 서울둘레길을 걷기로 한 날인데···

지난 4월에 6코스(석수역→구일역→가양역) 중 구일역까지 8km만 걸었으니 오늘은 나머지 구간인 구일역에서 시작해 가양역까지 약 10.2km를 걷는 동안 중간쯤에서 고종사촌 누나와 고종사촌 여동생이 합류하기로 했는데···, 코로나 팬데믹 이래 양재 시민의 숲과 여의천 등 양재천 일원을 걷는 한두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의 대부분을 집 안에서 보내는 집사람에게 양재천보다 훨씬 넓은 안양천의 봄과 확 트인 한강의 싱그러운 봄기운을 한껏 느끼게 해주고 싶었는데···

수시로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보지만 손바닥을 간지럽히는 빗방울은 도무지 그칠 줄을 몰랐다.

약해진 빗발에 희망을 가지고 일기예보를 몇 번이나 들여다보지만 예보는 바뀌지 않았다.

나 혼자라면 얼마든지 나설 수 있는, 오히려 즐길 수 있는 빗줄기였다.

하지만···

고종사촌 누나에게 내일 또는 다음 주말로 미루자는 카톡을 보냈다.

누나로부터 내일 걷자는 답장이 왔다. 하지만 내 시선은 시도 때도 없이 창밖으로 쏠리고 있었다.

잠시 후 내 머릿속엔 '오늘 걸어도 되겠다.'는 싹이 트기 시작했지만 누나에게 다시 카톡을 날리자니···

한참을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누나로부터 온 새로운 카톡이 화면에 떴다.

비가 안 올 것 같다며, 많은 비가 아니면 오늘 걷는 게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잘됐다 싶었다. 나와 집사람은 부랴부랴 옷을 갈아 입고는 배낭을 챙기기 시작했다.

내가 두 벌의 비옷과 두 개의 우산을 챙기는 동안 집사람은 생오이와 견과류 등 주전부리를 챙기더니 며칠 전 코스트코에서 사 온 마른 완두콩을 두 개의 비닐봉지에 나눠 담기 시작했다. 밥 지을 때 넣으면 좋다며 누나와 동생에게 드릴 거라면서···

 

집을 나섰다.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지만 우산을 펴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신분당선에 오른 후 누나에게 '출발'을 알리는 카톡을 보내곤 2호선과 1호선으로 환승해서 구일역에 도착했다.

 

오늘 6-2코스 둘레길 시작점인 구일역
프로 야구 키움의 홈구장이자 국내 유일한 돔구장인 고척 스카이돔 앞에서
안양천 징검다리
보리밭에 핀 수레국화의 남청색이 무척 고혹적이다. 
안양천 보리밭

수레국화는 3월 5일의 탄생화로 봄에서 가을까지 핀다.

두화(頭花)는 가지와 원줄기 끝에 1개씩 달리고 많은 품종이 있으며 색깔이 다양하다.

꽃 전체의 형태는 방사형으로 배열되어 있고 모두 관상화이지만 가장자리의 것은 크기 때문에 설상화같이 보인다.

총포 조각은 4줄로 배열하며 날카롭고 긴 타원형 또는 타원형 줄 모양으로 가장자리는 파란색을 띤다.

독일의 국화(國花)이며, 꽃말은 '행복감'이란다.

 

오목교를 지나 영학정을 조금 앞두고 둑방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저만치 멀찌감치에서 한 여인이 두 손을 흔들어 우릴 반기고 있었는데 바로 큰 고모집의 고종사촌 누나였다.

작년 5월 16일 나 혼자 둘레길을 걸었을 때도 이 길을 함께 걸었으니 근 일 년 만에 다시 걷는 걸음이지만

나보다 8년이나 연상이라 7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음에도 여전히, 아니 작년보다 더 건강하고

더 아름다운 모습은 누나의 행복한 삶을 입증하는 것 같아 부러웠다.

 

잠시 후 저만치에서 또 한 여성이 두 손을 흔들며

달려왔는데 이번엔 셋째 고모집의 고종사촌 여동생이었다.

이 동생 또한 작년 5월 16일 이 길을 함께 걸었으니

작년의 걸음이 다시 뭉친 걸 축하하는 걸까?

하늘이 구름을 천천히 거두어들이면서

파란 하늘과 해님의 모습을

내보이기도 했다.

 

븕은 병꽃으로 꽃말은 '전설'
수레국화, 남청색만 있는 줄 알았는데···

누나가 준비해 온 떡과 음료가 얼마나 맛나던지

얼마 있지 않아 점심을 먹어야 되는데도 남길 수가 없었다.

 

오늘 둘레길을 마무리하는 스탬프 꾹!

스탬프까지 찍었으니 '허준근린공원'으로 Go Go

 

허준근린공원에 있는 광주바위의 전설을 읽고 있는···
점심식사를 마치곤 지난 가을에 시어머니가 된 동생이 사는 따끈한 커피를 마시면서 KBS TV의 '우리말 겨루기'와 SBS TV의 '알뜰 주부 퀴즈'에 출연해 이름을 떨친 누나의 젊은 시절 등 온갖 옛추억을 소환해 행복을 나누는 즐거움에 푹 빠진 누나와 동생 그리고 집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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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깊고 즐거운 4시간이었다.

집에 갇혀(?) 지내느라 답답했을 집사람이 즐거워해 좋았다.

코로나가 만든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집안 행사가 아니고는 쉬이 만날 수 없게 된

고종사촌 누나와 고종사촌 동생이랑 추억들을 나누면서 함께 걸었던 봄 가득한 길이라 더 좋았다.

 

30里나 되는 코스라 집사람이 힘들어하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힘들어하기는커녕 봄처녀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큰 행복이었다.

걱정과는 달리 비는 오지 않고 가끔씩 내리쬐는 햇살의 보드라움을 느낄 땐 다음으로 미루지 않은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싶었는데, 허준근린공원까지 다녀온 후 가양역 주변의 맛집에 들어갈 무렵엔

마치 우리 둘레길이 끝나길 기다리기라고 했다는 듯이 간간히 떨어지기 시작한 빗방울이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땐 우산을 꺼내야만 했으니 '신의 은총'이 따로 없다 싶었다.

2021년 5월은 시작부터 행복 만땅의 날이었다.

가정의 달 5월, 5월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