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4. 일요일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고 창밖과 하늘을 쳐다보았다.
봄비답지 않게 퍼붓듯 많이 내리던 비는 언제 그쳤을까? 흥건히 젖어 있을 줄 알았던 아스팔트는 거의 다 말라 있고 어젯밤까지만 해도 구룡산을 통째로 숨길만큼 낮게 깔려 있던 구름은 하늘 높이 올라가 있기에 오늘은 일기예보가 틀렸구나 싶었다.
아니, 어제 쉼 없이 진종일 뿌려대느라 오늘 몫까지 다 쏟아버렸구나 싶었다.
슬며시 욕심이 생겼다.
어제 걷지 못한 서울 둘레길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집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꺼냈다.
"여보, 컨디션 어때? 어제 은규가 쓴 詩 '봄의 눈' 봤지? 안양천 벚꽃도 다 떨어졌나 보러 갈래?"
그러자 망설임 없이 들려오는 집사람의 대답
"OK"
지난 3월에 둘레길을 못 걸었으니 오늘은 걷겠단다.
올 첫날인 1월 1일에 4-2 코스(시민의 숲→사당역)를 걸으면서 시작했던 첫 서울 둘레길.
음력 정월 초하루에 걸었던 두 번째의 둘레길, 5-1 코스(사당역→서울대 입구)도 차질 없이 걸었지만, 5-2 코스(서울대 입구→석수역)를 걷기로 한 3월 1일엔 봄비가 내린데 이어 다른 주말은 친구들과의 둘레길, 산행 약속 또는 집사람의 컨디션 문제 등으로 차일피일 미루었던 탓에 집사람과의 둘레길은 두 달 동안이나 걷지 못했다. 그런데 그사이 안양천의 자랑거리인 벚꽃이 활짝 피고 말았기에 아직 걷지 못한 5-2 코스를 6월로 미룬 채 안양천 6-1 코스를 어제 걷기로 했었지만 봄비가 또 방해하는 바람에 신축년의 안양천 벚꽃 구경은 물 건너갔다 싶었는데···
2시간 남짓 걸으면 되는 거리라 생수만 달랑 챙긴 후
집을 나서서는 신분당선→2호선→1호선을 타고 도착한 석수역
석수역 2번 출구의 스탬프 부스에서 스탬프 꾹!
혼자 걸어 완주했던 2020년 서울둘레길에서는 5월 16일 이 코스를 걸었고
고교 친구들과 함께 진행 중인 서울둘레길에선 지난 2월 27일 이 코스를 걸었으니
일 년도 안된 기간에 안양천 코스를 세 번째 걷는 셈이다.
양재천에서는 볼 수 없는 보라색 꽃이 아름답다며···
어제 내린 봄비에 꽃잎은 다 떨어지고···
떨어진 꽃잎을 밟으며 걷던 중 문득 어제 은규가 썼다는 詩,
'봄의 눈'이 떠올라 詩語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나지막이 읊으면서 걸었다.
봄의 눈
송은규
(매헌초등 2학년)
비 때문에 떨어진 벚꽃
마치 눈 같네
길바닥에 떨어진 벚꽃
마치 눈 같네
다른 게 하나 있네
뽀드득 소리가 안 나네
은규가 신통방통하다 싶었다.
하얗게 떨어진 꽃잎에서 겨울눈을 연상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손 치더라도 마지막 연은
압권이었다.
'다른 게 하나 있네
뽀드득 소리가 안 나네.
요것은
詩공부를 하는 나도 생각하지 못한
멋진 표현이다 싶었다.
마침내 구일역 입구에 위치한
안양천 코스 두 번째 스탬프 부스에서
오늘 도보 끝 스탬프 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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