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31. 토요일
새벽
여주썬밸리CC로 차를 몰았다.
두 달만에 나서는 라운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반자 중 한 사람은 入行同期로 45년이나 묵은 친구이고, 나머지 둘은
처음 만나긴 했지만 친구의 친구로 나보다 우리은행을 2년 늦게
정년퇴직한 은행 후배였다.
며칠 전부터 더위가 많이 수그러들었다 싶더니
새벽에 집을 나설 때는 제법 쌀쌀하길래
집으로 되돌아가 바람막이를 챙겼다.
파란 하늘
초록 잔디
울긋불긋 고개 내민
갖가지의 가을꽃
서울을 벗어날 때만 해도
아직은 여름인가 했었는데
여주썬밸리의 지금은
영락없이 가을이었다.
연습도 하지 않고 간 오랜만의 라운딩이라
공이나 제대로 맞출 수 있을런지, 진행에 방해가 되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웬걸…
십사오 년만에 이글, 아니 생애 처음으로
알바트로스를 할 뻔한데다 비록 후반이긴 하지만 80대 스코어를
지켰다는 기쁨, 또 초면의 두 후배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었으니
오늘의 라운딩은 행복이었다.
거기다
페어웨이 옆 도랑가에 연인처럼 마주보고 서 있는 두 돌탑을 보던 중
문득 詩想이 떠올라 카트를 타고 다니면서 詩까지 한 수를
지었으니 이 詩는 오늘 라운딩의 보너스.
인연
돌담/이석도
선연(善緣)도 따로 있고
악연(惡緣)도 따로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
잘 지낼 때는 좋은 인연이라 하고선
사이 나빠지자 악연이라 하는 사람
적지 않은 걸 보면
선연 악연은 한 몸
동전의 양면일지 모른다.
인연은 꽃나무
정성껏 가꾸면 예쁜 꽃이 피지만
내팽개쳐 두기만 하면 악취 풍긴다.
(2019.8.31)
여주 썬밸리는 그렇게 가을을 꾸미고 있었다.
내게 '인연'이란 詩想을 안겨 준,
연인처럼 마주보고 선 두 개의 돌탑
2005년까지 두 차례의 이글을 한 이후에도 롱홀에서 가끔씩 투 온하는 덕분에
이글의 기회가 적지 않았지만 그간 실제로는 한 번도 이루지 못했었는데
오늘은 470m 롱홀인 이 6번홀에서…
드라이버가 아주 잘 맞았다.
그런데 캐디는 3번 우드와 함께 피칭웨지를 뽑아 건네주면 이렇게 말했다.
"잘 맞았지만 그쪽은 라이가 안 좋은데…, 라이가 좋으면 3번 우드를 쳐도 되지만,
라이가 나쁘면 피칭웨지로 호수 앞까지만 보내야 되니 100m 이내로 치세요."
그런데 내 공이 놓인 위치의 라이는 참 좋았다. 250여m를 날아와 내리막을 지나
살짝 오르막의 페이웨이에 놓여 있었다. 우드 치기에 딱 좋을 듯했다.
3번 우드를 들고 가볍게 연습스윙을 한 다음
심호흡 후 잠시 호흡을 멈춘 채
"딱!"
잠시 뒤
"아∼"
아쉬워하는 소리가 비명처럼 들리더니 금방 캐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바트로스 하는 줄 알았어요. 공이 홀컵을 살짝 스치며 지났는데 공은 홀컵 2,3미터 뒤에 있을 거예요."
가볍게 아주 잘 맞았다 싶긴 했지만 그만큼이나 잘 맞았을 줄이야….
사뿐히 친 공이 호수를 건너 홀컵마저 지났으니 족히 220m는 간 셈.
정말 내 공은 홀컵을 조금 지나 서 있었다.
내 키보다 조금밖에는 길어 보이지 않았으니 거리는 홀컵으로부터 멀어야 2m.
똑바로 살짝 굴리기만 하면 홀컵으로 쏙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이것을 넣으면 파(Par)에서 2타나 덜 치는 이글(eagle).
꼭 넣고 싶었다.
14,5년만에 이글을 하고 싶었다.
홀인원보다 어렵다는 알바트로스를 놓친 아쉬움을 이글로 달래고 싶었다.
그런데 나의 최대 약점이 바로 퍼팅
퍼터를 들고 신중하게 자세를 갖추지만
그때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드라이버의 티샷으로 250m를 보내고, 3번 우드의 세컨드샷이 220m였는데
첫 퍼팅이 짧았다. 2m의 짧은 거리를
나는 두 번만에 넣었으니…
그래도 버디는 했다.
여주의 맛집, 사찰음식점
'걸구쟁이'의 뜻은 '게걸스럽게 먹는 사람'
골프도 행복
점심도 행복
8월 마지막 날이 이처럼 행복했던 덕분에
8월 전체가 행복이었음을 깨달았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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