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의 허물에서 느끼다
며칠 전이었다.
아파트 앞에서 외손자 은규랑 유치원 등원차를 기다리면서 아침마다 그러하듯이 공원 입구를 오가며 나무와 화초의 이름 등의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은규가 손가락으로 화살나무 화단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할아버지, 저것은 뭐예요?”
은규의 손가락을 따라 쳐다보았더니 화살나무 끝부분에 매미의 허물 하나가 달려 있었다.
그래서 그것이 매미의 허물임을 가르쳐주고는 애벌레부터 시작하는 매미의 일생을 간단히 들려주었더니 은규는 신기한 듯 허물을 자세히 한 번 더 쳐다보고는 또 물었다.
“그럼, 매미는 허물을 벗어야 진짜 매미예요?”
은규를 유치원차에 태워 보낸 후 집에 들어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허물을 벗어야 진짜 매미냐?’고 묻던 은규의 질문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핸드폰으로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허물’을 검색했다. ‘허물’의 사전적 의미의 첫 번째는 살갗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꺼풀 또는 파충류, 곤충류 따위가 자라면서 벗는 껍질이고, 두 번째가 잘못 저지른 실수(失手)였다.
매미는 유충으로 3∼7년(어떤 종류는 17년) 동안 땅속에서 나무뿌리의 수액을 먹으면서 자라다가 지상으로 올라와 우화(羽化:번데기가 날개 있는 성충이 됨)의 과정을 거치는데, 허물을 벗는 이 우화과정이 일생 중 가장 위험한 순간이란다. 딱정벌레, 고양이, 새 등 천적의 공격을 받으면 속수무책이란다. 이런 목숨 건 과정을 거쳐야만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성충이 되어 하늘을 날고 짝을 부르는 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 성충이 되어 짧게는 일주일, 길어야 한 달밖에 살지 못하는 게 매미의 일생이지만 우리에게 가르침은 적지 않은 곤충이다.
옛사람들은 매미의 일생에서 다섯 가지의 덕(德)’을 깨닫곤 ‘매미의 오덕(五德)’이라 이름을 붙여서 배우고자 했다는데, 지금까지 전해오는 그 다섯 가지 ‘매미의 오덕’은 다음과 같다.
① 머리 모양이 선비의 관을 닮았다. → 문(文)
② 이슬만 먹고 살아 맑다. → 청(淸)
③ 남의 곡식이나 채소를 해하지 않으니 염치가 있다. → 염(廉)
④ 집을 짓지 않으니 검소하다. → 검(儉)
⑤ 철 맞추어 허물을 벗고, 때 맞춰 떠날 줄 아는 신의가 있다. → 신(信)
또한 조선시대에서는 임금과 왕세자가 정무를 볼 때 익선관(翼蟬冠)이란 모자를 썼는데, ‘날개 익(翼)과 매미 선(蟬)’이란 한자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익선관은 바로 매미의 날개를 본떠 만든 모자다. 그리고 임금과 왕세자가 익선관을 쓴 채 정무를 본 이유는 본인들은 물론 나랏일을 하는 신하들도 ‘매미의 오덕’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다섯 가지의 덕’을 몸소 행해야 한다는 경고, 아니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요증의 우리 사회는 어떤가?
그리고 지금의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사람들이 100년에 가까운 한평생을 살다보면 허물이 전혀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서민들의 허물은 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가 쓴 소설, ‘장발장’이란 소설에서 가난과 배고픔, 가엾은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치는 장발장처럼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지른 것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지금의 삶을 한 뼘 정도라도 나아지게 하고 싶은 욕심에 저지르지만 대부분은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정도, 남들이 애교로 봐주거나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였음에도 사람들은 그 허물을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정치인들도 국민의 주목을 끌 정도의 허물이 드러나면 스스로 용퇴했었다.
그런데 어쩌랴.
언제 돌연변이가 있었는지 자신의 허물은 오히려 훈장쯤으로 여기는 별종들이 나타났다.
시간이 갈수록 강력해진다 싶던 별종은 어느새 어떠한 항생제도 듣지 않는 슈퍼 박테리아만큼이나 맷집이 좋아졌다. 요즘 들어 TV를 켜기만 하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자신의 허물은 못 본채하면서 서로 상대방의 허물만 까발리는 정치인들이 바로 그런 별종이 아닌가 싶었다. 더구나 최근 훤칠한 키와 잘 생긴 외모로 정의와 공정 그리고 개혁의 아이콘이었던 자는 별종 중 별종이다 싶었다. 가장 서민적으로 서민을 위해 몸 바칠 것 같았던 그가 최근 어떤 부처의 장관후보자로 지명되자 온 나라가 도가니탕처럼 들끓고 있다. 큰 허물 같은 의혹이 장마철 소낙비처럼 쏟아져 검찰수사까지 착수되었건만, 그는 검찰에서 자신의 허물을 말끔히 벗겨주길 조용히 기다리기는커녕 오히려 이러한 의혹이 무슨 큰 훈장이라도 되는 양 굳건히 버티고 있다, 조금 전 커피를 마시며 TV를 켰을 때도 몇 채널의 화면을 채운 그의 잘 생긴 모습이 보였는데, 쏟아지는 허물의 의혹을 민주화 운동과 개혁의 훈장인 양하는 그의 모습을 보던 중 갑자기 가끔 TV에서 보이는 가슴 가득 매단 훈장을 칠렁이며 의기양양해 하는 북한군 장군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으니… 이건 또 웬일일까?
그런데…
그런데 지금의 우리나라는 참 이상하다.
세상에는 뜻대로, 욕심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데…,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도 있는데…, 폭우가 쏟아지면 그 빗물에 모두가 떠내려갈 수도 있는데….
아무리 '남의 눈에 티는 보면서 내 눈의 들보는 못 본다,'는 속담이 있다지만 이건 해도 너무하는 것 같아 아쉽다.
남의 작은 허물조차 조금도 용서치 않았던 장관 후보자가 지금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는 자신의 허물은 모두 모함이라 우겨대는 꼴이 볼썽사납다. 또한 그를 후보자로 지명한 지명권자께서는 후보자의 허물이 허물로 보이지 않는 건지 아니면 후보자의 우겨대는 말만을 믿고 있는 건지 모르지만, 天心 닮은 민심의 목소리에는 귀를 막은 듯 요지부동이다. 왜 그럴까? 설령 억울하다 할지라도 이럴땐 한 템포 쉬어 가면 나도 좋고 너도 좋고, 그마저 좋을 텐데···
조급하게 설치대는 후보자와 더 조급한 듯 서두르는 지명권자를 보면 내가 더 답답하고 안쓰럽다.
허물은, 매미처럼 스스로 벗고 아름다운 날개를 다는 게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지만 스스로 벗기에 너무 큰 허물이라면 누군가가 허물을 벗겨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의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깨끗해질 뿐 아니라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가 돋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래서 만약,
만약에 내가 지명권자라면 나는 후보자를 지명했던 한 수를 물리겠다.
체면이 구겨져 속이야 쓰리겠지만 자칫하면 불계패를 부를 수 있는 무리수는 더이상 두지 않겠다.
기왕에 검찰이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밝히겠다고 나선 만큼 한 템포 늦추겠다. 지금의 장관을 얼마간 더 유임시킨 다음 철저한 수사결과에서 후보자의 허물이 말끔히 벗겨지길 기다리겠다. 하지만 한 템포 쉬는 동안 그의 허물이 말끔히 벗겨지면 그때는 보란듯이 다시 그를 장관후보자로 지명하겠다.
그땐 딴지 거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테고 오히려 국민들은 지명권자의 진중(鎭重)함에 박수로 보답할 테니….
허물을 제대로 벗은 후보자라야만 멋진 날개를 달고 훨훨 맘껏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진짜 장관이 될 테니….
허물을 벗고 있는 매미
세종대왕의 익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