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 30. 일요일
流水 같은 세월이라더니…
빠르긴 정말 빠르다.
그저께 시작된 것 같은 己亥年이 정확히 절반을 지나는 2019년 6월 30일 일요일 오전 11시.
나와 친구들을 싣고 서울을 출발한 회색 리무진 관광버스가 속리산 법주사 입구에 위치한 백천식당 주차장에 들어섰다.
이내 버스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지자 새벽 같이 부산을 출발해 먼저 도착해 기다리던 부산 친구들이 도열하듯 한 줄로 쭉 늘어서서는 우리들 한 사람씩 한 사람씩을 껴안고 악수를 하면서 반갑게 맞았다.
오늘은 釜慶高(옛 慶南商高) 26회의 부산 동기회와 재경 동기회가 합동으로 야유회를 갖는 날
2,3년마다 한 번씩 서울과 부산의 중간쯤에서 만나 즐기는 합동 야유회.
3년 만에 열리는 오늘의 재경· 부산 합동 야유회
그런데 장소가 속리산 법주사란다.
법주사라면…
우리가 高2 때 수학여행 코스 중 한 곳이 아닌가.
47년 전, 1972년 가을 속리산 법주사를 거쳐 서울을 다녀갔던 수학여행의 추억이 어제처럼 떠올랐다.
버스로 엄청 꼬불꼬불한 산길을 넘고 넘어 정이품송을 지나 도착한 속리산 법주사.
엄청 큰 미륵불과 쌍사자석등 앞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
법주사 입구의 한 여관에서 첫 날밤을 보낸 뒤 세수도 할겸 친구들과 아침 일찍 계곡에 갔다가 마침 전북 군산시 옥구에서 수학여행을 왔다는 여학생 몇 명을 만났는데, 까만 치마에 하얀 상의의 모습이 얼마나 순수해 보이던지…, 그들 중 긴 머리를 살짝 땋은 한 여학생이 내 마음을 쏙 빼앗았으니…, 겨우 말을 붙인 후 사진을 찍어 주곤 사진을 부쳐준다는 핑계로 알아낸 주소로 시작된 그녀와의 펜팔은 3년 이상 지속 되고 두세 번 만나기도 했었지만 이젠 그녀의 이름은 머리속에서 뱅뱅 돌기만 할 뿐 쉬이 생각나지 않고…,. 내가 세 아이의 할아버지가 되었듯이 그녀도 이젠 몇 아이의 할머니가 되었을 텐데…
47년 만에 찾은 법주사
어느덧 이렇게 늙었을까?
단체 입장료는 1인당 3,700원.
근데 54년 甲午生은 그냥 들어가란다.
경로우대란다. 1/3 정도는 무료 입장이다.
많은 것들이 낯익은 듯하면서도 낯설었다.
꼬불꼬불 넘었던 산마루 길은 터널이 삼켜버린 듯 평지 길이 되었고, 졸졸졸 바위틈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남달리 아름다웠던 계곡은 잘 정비된 하천의 모습으로 바뀐 지 꽤 오래된 듯 곳곳에 튼튼한 교각의 다리들이 놓여져 있었다.
법주사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미륵대불도 왠지 낯설었다.
47년 전 그때의 모습인 것 같기도 하고, 비까번쩍한 게 어쩜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의문은 금방 풀렸다.
지금의 금동미륵대불은 1990년에 세워졌단다.
1시간 30분 동안 친구들은 삼삼오오 몰려 다니면서 옛추억을 떠올리며 대웅보전, 마애여래의 좌상, 팔상각 등을 배경으로 단체사진 또는 반별 사진을 찍는 모습은 머리만 희끗할 뿐 영락없는 고교생이었다. 경내 곳곳을 안내하면서 자세히 설명해 주신 문화해설사 덕분에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고,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알찬 시간이었다.
법주사 관광을 마친 후 백천식당에서는 산채비빔밥의 점심에 곁들여 부산에서 공수해 온 싱싱한 생선회를 안주로 상에 오르자 맥주병, 소줏병 등 술병과 술잔이 날아 다니고 흥에 겨운 친구들의 엉덩이는 가만히 있질 못하고 덜썩거리기 시작했다. 이처럼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에게 하루 해는 너무 짧은 것 같았다.
올 합동 야유회는 47년 묵은 추억까지 되살린 뜻깊은 시간이었다.
(1972년 수학여행 왔을 때의 법주사와 정이품송)
법주사 금동미륵대불은 용화정토에 이르러 깨달음의 법을 설하시는 미래의 미륵부처님의 현존을 의미하는 것으로 화강석으로 만든 높이 약 8m에 이르는 기단 위에 높이 약33m의 국내에서 최대의 규모이다. 금동미륵대불은 용화정토에 이르러 깨달음의 법을 설하시는 미래의 미륵부처님의 현존을 의미한다. 동양 최대의 미륵불 입상으로 신라 36대 헤공왕 때 진표율사가 청동으로 주조하여 1000여 년간 내려왔으나 대원군에 의하여 경복궁 중건을 위한「당백전」의 재료로 쓰기 위하여 훼철되고 그 뒤 1939년 조각가 김복진에 의해 만들어진 시멘트 불상이 약 50여 년간 있어오다가 1987년 해체되고 1990년 청동미륵대불에 이르렀으며 현재의 금동미륵대불은 총 12억원을 들여 지난 2000년부터 개금불사 공사를 시작 17개월만인 2002. 6. 5일 완성되었다. 금동미륵대불은 총 80㎏의 순금이 소요됐으며. 겉부분(연면적 900㎡)에 3미크론(0.003㎜)두께의 금막이 입혀져 있고 섭씨 80℃∼-30℃에서 견딜 수 있는 건식 전기도금공법으로 광택을 유지할 수 있도록 특수 도금돼 있다. 금동미륵대불 기단부 안에는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는 도솔천의 모습을 형상화시킨 용화전이 있으며 용화전 벽면에는 13개의 미륵십선도가 부조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법주사 대웅보전은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불전 가운데 하나인 중층(重層) 전각이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건평 170평, 높이 약 19m에 이르는 대규모 건물이다. 위층에 비하여 아래층의 높이가 훨씬 낮아서 탑파와 비슷한 비례를 보이며, 정면에는 모두 살문을 달았고 좌우 측면의 1칸과 뒷면 가운데 칸에는 따로 외짝문을 달았다. 보물 제915호.
법주사는 553년(진흥왕 14)에 창건되고 776년(혜공왕 12)에 다시 지었다.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탄 것을 1624년(인조 2)에 벽암(碧巖)이 다시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보전은 팔상전과 함께 법주사의 중심이 되는 주요 건물 중 하나.
보물 제216호. 높이 500cm. 광배는 생략되었으며 두 손은 가슴 앞에서 설법인(說法印)을
결하고 있고 연화좌 위에 걸터앉아 두 다리를 내려딛고 있는 의상(倚像)이다.
국보 제55호이다. 5층의 옥개는 네모지붕이며 그 위에 상륜부가 온전히 남아 있다. 1968년 해체 중수할 때 5층 도리에서 상량문이 발견되고 심초석에서 사리장치와 함께 동판에 새긴 글이 발견되었다. 동판 내용에 의하면 팔상전은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된 것을 1605년에 재건하고 1626년에 중수했다고 한다. 건물은 2단의 석조기단 위에 세워졌는데 기단의 각 면 중앙에 돌계단이 있다. 건물의 평면은 정사각형이며, 외관은 층이 높아지면서 주간의 수가 줄어들어 강한 체감을 보인다. 공포의 짜임은 1층은 주심포식이지만 2층 이상은 다포식이다. 내부 가구는 5층 건물 전체를 통과하는 심주가 중앙에 있다. 심주의 4면에는 각 2폭씩 8폭의 팔상도가 있고 그 앞으로 4면에 열반상을 포함한 삼존불상을 각각 배치했다.
국보 제5호. 높이 330cm. 이 석등은 일반형 석등의 간석 부분을 8각기둥 대신 쌍사자로 변화를 준 이형석등이며, 쌍사자석등의 전형적인 예에 속한다. 지면에 놓인 넓은 8각 지대석의 옆면에는 상하에 테를 두르고 우주를 새겼으며, 윗면 중앙에는 2단의 괴임을 두어 하대석을 받치고 있다.하대석과 간석을 대신한 쌍사자와 상대석은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하대석 역시 8각이며 옆면에는 단판의 내림연꽃이 8개 조각되어 있다. 그 위에 사자 2마리가 뒷발을 하대석에 버티고 마주 서서 앞발로 상대석을 떠 받치고 있는데 머리와 갈기와 다리 근육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었다. 상대석에도 단판의 올림연꽃이 상하로 조각되었으며 연판 안에 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상대석 위에 얹힌 8각의 화사석에는 4면에 장방형 화창이 있고 화창 주위에 작은 구멍이 남아 있다. 8각의 개석은 처마 밑이 수평이며 추녀 끝에 약간의 반전이 있고 내림연꽃이 조각된 정상부에는 보주만 남아 있다. 8각을 기본으로 하면서 간석에 변화를 준 이 석등은 구성이 간결하고 전체 비례가 적당하여 통일신라시대 석등의 걸작으로 꼽히며 8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제21대 국왕인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暎嬪李氏, 1696∼1754)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서 지은 원당이다. 언제 건립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영빈 이씨가 세상을 떠난다음해인 영조 41년(1765)경에 조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 뒤 법주사의 개산시조(開山始祖)인신라의 의신선사(義信禪師)와 전법초조(傳法初祖)인 태고선사(太古禪師)를 비롯하여, 법주사와 관련된 스님 21분의 영상(影像)과 영정(影幀)을 모신 조사각으로 사용되었다.
부산 동기회에서 장만해 온 싱싱하고 맛난 회를 안주 삼아 원샷!
이별의 아쉬움을 응원 '아까라까!'와 응원가로 달래는 친구들
머지않은 장래에 또다시 한 자리에 모이길 언약하면서
몇 번이나 포옹을 하면서 쉬이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는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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