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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詩 놀이터

서초심상의 벙개

2019. 7. 31. 수요일

새벽부터 주룩주룩 내리는 장맛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시곗바늘은 점점 10시에 다가가고 있었다.

평소 수요일의 이 시간이면 서초문화원 문턱 넘을 시간이지만 오늘은 발걸음을 양재시민의숲으로 돌렸다.

매주 수요일 10시 30분에 박목월 詩人의 아드님이자 서울대 명예교수이신 박동규 교수님께서 강좌를 맡으셔서 주로 서정시(抒情詩)를 중심으로 詩 創作에 대한 가르침의 공간인 '심상문학'이 해마다 그러하듯 올해에도 7월 중순부터 한 달간 여름방학에 들어간 덕분(?)에 시를 잊은 채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는데 총무나리께서 소집령을 내렸던 것이다.

이름하여 『방학 중 벙개팅』

한 달 동안이나 文友들을 볼 수 없으니 그늘 좋은 양재시민의숲에서 만나잔다.

시원한 그늘에서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詩 한 수씩을 읊자며 먹거리는 자신이 준비할 테니 詩를 준비하란다.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그런데 비가 내린다. 그것도 주룩주룩 장맛비가…


약속시간 10시 20분, 시민의숲 꽃정원 원두막.

한 명 한 명 모여든 문우들은 어느새 14명, 우중인데도 생각보다 많이 참석했다.

총무를 비롯해 박쌤, 이쌬 등 세 분의 여성 문우들께서 준비해 온 먹거리를 펼치자 원두막엔 더 이상 빈 공간이 없었다.

맥주,소주, 막걸리에 직접 요리한 안주…

참외를 비롯한 갖가지의 과일와 떡 그리고 김밥 …

커피에 계피차 등등 먹을 게 얼마나 많은지…, 모두가 어찌 그리 맛난지…

잇달아 건배를 외치며 약주 일 순배와 함께 우리 서초심상의 詩仙놀이는 시작되었다.

自作詩를 복사해 온 문우들은 모두에게 한 장씩 돌리고, 미처 복사하지 못한 문우들은 단톡방에 올린 후 詩를 낭송했다.

첫 순서는 나였다.

나는, 이틀 전 한 여성 文友가 서초심상의 단톡방에다 달맞이꽃 사진을 올리곤 이를 詩題로 해서 다같이 한 수씩 지어 보자는 흥미로운 제안을 했길래 밤을 새워 썼던 自作詩 '달맞이꽃'을 낭송하고, 쇠한뫼 詩人께서는 고향 사투리를 넣어 더 抒情이 넘실거리는 自作詩 '벼개잇 꿔맬 때마다' 를 낭송했는데 이런 詩였다.



벼개잇 꿔맬 때마다


               - 쇠한뫼 -


벼갯속에는

서숙 알갱이가

엄니 걱정만큼이나 많습니다.


밤마다

수없는 머리카락이

벼개에 잠을 맡기면


머릿속

하루 일들은

서숙 알갱이에 박힙니다.


벼개잇 꿔맬 때마다

몰랐던 이야기 다 듣고도

엄니는 모른 척합니다.



시 낭송이 끝나자 분위기에 취했던 문우들이 엉덩이는 털었다.

그러자 하늘은 이들을 그냥 보내기 싫어서였을까?  잠시 비를 멈추었던 하늘은 비를 뿌려 다시 앉혔다.

몇 문우들의 노래와 판소리까지 더하고서야 원두막을 떠난 서초심상의 방학중 벙개.

여름이면 정자에 올라 합죽선으로 더위를 쫓으면서 詩를 노래했던 선조들을 흉내낸 詩仙놀음이었다.

평소라면 꽤나 붐볐을 시민의숲이 비가 내린 덕분에 얼마나 호젓하던지 마치 우리만을 위한 공간 같아서 좋았다.

촉촉히 젖은 대지와 충분히 물을 취한 숲속 나무와 아름답게 핀 꽃정원의 꽃들이 얼마나 싱그럽던지 참 좋았다.

마른 날의 번개라면 번개 대접도 못 받을 텐데 비 나리는 날의 벙개,

정말 번개다운 벙개여서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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