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14. 목요일
버스에서 내려 조금밖에 기다리지 않았는데 횡단보도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었다.
'집에 들어가서는 萬事를 제쳐두고 낮잠부터 한숨 자야지…' 라는 생각으로
나는 행복감에 젖은 채 느릿느릿 걸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100여 m밖에 남지 않은 집으로 향하며 호주머니를 더듬었다.
이런!
잠이 확 달아났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핸드폰이 없다.
바꾼 지 얼마 안되는 스마트폰인데다
폰 케이스에 신용카드랑 문화센터의 점심식권도 들어있어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몇 해 전, 핸드폰을 버스에 두고 내려 영영 잃어버리면서 겪었던 일들이 떠올라 머릿속이 지끈거렸다.
고향 집, 형님 집 등 고작 몇 개의 집 전화번호만 내 머릿속에 들어 있을 뿐 모든 전화번호가 폰 속에 들어 있었으니
난처함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폰을 잃어버리자 마치 寂寞空山(적막공산)에 홀로 남겨진 신세였다.
새로운 폰을 장만한 뒤 사위의 도움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연락처는 새로운 폰에 되살릴 수 있었지만
귀중한 사진과 중요한 메모, 그리고 색소폰 레슨을 받으면서 사부님의 指導 연주를 담아두었던
녹음파일은 영영 사라지고 말아 얼마나 안타까워했던지 모른다.
뛰다시피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어떻게든 핸드폰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一念과
어디서 없어졌을까를 곰곰히 생각하며 영화 필름을 되돌리듯 기억을 더듬었다.
오늘은 매월 두 번째 화요일마다 갖는 입행동기들의 점심모임 날.
을지로 3가의 한 참치전문점에서 친구들과 맛난 참치정식을 먹으면서
반주로 나온 인삼막걸리가 얼마나 맛나던지 친구들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대여섯 잔은 마셨던 기억.
식당에서 나와 몇몇 친구는 사무실 향하고, 나머지 몇 친구는 당구장으로 가면서 날더러 같이 가자고 했지만,
다음달, 7월 6일부터 7월 7일까지의 1박 2일로 진행하는 심상해변시인학교 행사에서 내가 색소폰을 연주하기로 했음에도
요즘 들어 운동에 더 집중하느라 색소폰 연습을 통 하지 않았던 나는 빨리 귀가해 색소폰이나 연습을 할 요량으로
한 번만에 우리 동네, 양재동까지 오는 버스가 정차하는 옛 중앙극장 앞의 정류장으로 가서 470번 버스를 탔다.
4시간 동안의 운동을 마친 뒤 곧장 모임에 참석한데다 낮술 치고는 적잖은 양의 막걸리를 마셔서였을까.
술기운이 온몸에 확 퍼지면서 피곤했지만 빈 자리가 없어 서서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았던 기억.
한남오거리에서 자리가 생겨 앉았던 기억과 버스에서 내린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
좌석에 앉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던 모양이다.
그럼 핸드폰은 버스 속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470번의 노선과 버스회사를 검색했다.
다행히 회사의 전화번호가 나와 있었다.
집전화로 버스 회사의 직원과 통화를 했다.
폰을 버스 좌석에 두고 내린 것 같다는 사정과 하차한 정류장 명칭과 시간대,
그리고 앉았던 좌석 위치를 알려주고는 기사분께 연락해서 좀 찾아봐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고는 내가 내곡동 종점으로 찾으러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버스 회사의 직원은 회사 사무실은 상암동에만 있다면서 내곡동 종점은 단순히 버스가 되돌아오는
회차지점일 뿐이란다. 하지만 사고예방 차원에서 운전 중인 기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할 수 없다면서
대신, 내가 하차한 시간대에 시민의 숲을 지난 몇 기사분들에게 핸드폰을 찾아보도록 하는 문자를 보내겠단다.
분실 핸드폰이 들어오면 상암동 사무실에서 보관할 테니 찾으러 오라며 내 연락처를 물었다.
·······························
'혹시'하는 마음에 직원에게 물었다.
"시민의숲 정류소에 정차했던 버스가 회차해 다시 이곳까지 오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25분에서 35분쯤 걸릴 걸요."
"그래요, 감사합니다."
수화기를 내던지듯 전화를 끊고는 내렸던 정류장의 건너편 정류장으로 뛰어가서
노선버스의 도착 시간을 알리는 전광판을 쳐다보았더니 470번 버스는 5분 후 도착.
5분을 기다려 도착한 470번 버스에 올라 기사님께 양해를 구한 뒤
내가 앉았던 위치의 좌석 구석구석을 살펴보았으나 허사였다.
6분 후 또 한 대의 470번 버스가 왔으나 또 허사…
다시 5분 후, 세 번째의 470번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 오르면서 기사님께 양해를 구했다.
"아까 건너편에 내리면서 핸드폰을 두고 내린 것 같아서 찾아보려구요."
그러자 기사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운전석 옆에 달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이것 맞습니까?"
바로 내 핸드폰이었다.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
작은 사례라도 하고 싶어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자 기사님은
"아니에요. 찾으시니까 저도 기분이 좋네요."
또 빙그레 웃으며 손까지 내저었다.
제대로 인사도 못했는데 버스는 떠나고…
·······························
집에 돌아와 다시 버스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을 찾았음을 전하면서 칭찬하고픈 마음을 이야기한 뒤
내가 탔던 버스의 번호와 기사님의 이름을 물었더니…
'470번 버스'
'6588번'
'이민구'
"이민구 기사님! 감사합니다."
내 마음을 한 장의 칭찬카드에 담을 수밖에 없음이 아쉬웠다.
친구들과의 점심모임, 인삼막걸리가 얼마나 맛나던지…
분실했다 다시 찾은 내 폰
감사함을 버스에 비치된 교통불편카드를 칭찬카드로 수정해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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