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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추억의 월드컵 축구



2018. 6. 28. 목요일

날씨보다 더 뜨거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축구 열기를 좀 식히고 싶었을까?

서울 하늘은 어제부터 굵은 빗방울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어젯밤, 우리나라와 독일 간의 예선 3차전이 시작되는 시간이 가까워지자

모두가 TV 앞에 자리를 잡았는지 차 굴러가는 소리마저 뜸해지면서 창밖은 한결 조용해졌다.

하지만

독일과의 경기가 중계될 무렵

나는 우리 대표팀은 독일의 적수가 될 수 없으리라 지례 짐작하고는 TV를 끈 다음 詩공부 때 숙제로 받은, ‘장마'를 주제 또는 소재로 한 詩 한 편을 쓰느라 책상 앞에 앉아 끙끙대다 잠자리에 들고 말았으니…

 

그런데 기적 같은 대이변이 밤사이 있었단다.

FIFA 랭킹 57위인 우리나라 대표팀이 직전 월드컵의 우승국이자 現 FIFA 랭킹 1위이면서 또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고 우승이 가장 유력시 된다던 독일을 이겼단다. 그것도 2:0으로…

우리 대표팀이 앞서 가졌던 스페인과의 게임과 멕시코와의 게임에서 패했지만 독일에 2골 이상의 차이로 승리하고, 스페인이 멕시코에 패하는 경우엔 16강에 진출할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살리기 위해 우리 선수들이 혼신을 다해 뛰었던 결과였으리.

스페인이 멕시코를 이긴 탓에 16강 진출이라는 한 가닥의 희망마저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만 이번 대회 최대 이변을 일으켜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우리 국민들에겐 ‘불가능은 없다’는 메시지와 자긍심을 심어 준 태극전사들이 대견스럽다.

태극전사들의 멋진 경기를 실황중계로 보지 못한 아쉬움을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타면서 재방송 시청으로 달래던 중 태극전사가 독일 골문에 잇달아 넣은 2골에서 나는 경기장에서 직접 관람하기도 했었던 24년 전의 미국 월드컵을 떠올리고 있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이 한창이던 때 나는 미국에 있었다.

당시 직장이었던 한일은행에서 보내준 뉴욕은행에서의 3개월짜리 연수중이었던 것이다.

지금 그때를 돌이켜 보면, 은행에서 마련해 준 아파트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으면서 금요일 저녁만 되면 외로움을 달래주려 찾아온 고종사촌 동생의 차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 등 뉴욕 시내의 명소는 말할 것도 없고 뉴저지 주의 도박도시 아틀란틱과 롱비치에 있는 누드비치, 심지어 캐나다의 나이가라 폭포까지 다니면서 주말을 보냈던 여행과 귀국길에 하와이에서 도킹한 집사람과 함께 꿈같은 시간을 보냈던 여행이 일생 가장 소중한 추억이지만, 월드컵 경기를 관전하러 갔다가 여권을 잃어버려 엄청 애를 태웠던 추억 또한 결코 잊을 수 없다.

1994년 미국 월드컵을 돌아보면, 그때도 우리나라는 조편성마저 험난했다.

1990년 월드컵 우승국인 독일, 유럽의 전통 강호인 스펜인, 그리고 남미 예선에서 아르헨티나를 격파해 선세이션을 일으킨 볼리비아와 한 조에 속해 조별 리그 최하위가 예상되었으니…

그렇지만 우리나라 대표팀은 스펜인과의 첫 경기부터 파란을 일으켰다.

전반 내내 스페인을 상대로 주도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골 결정력 부족으로 득점을 기록하진 못한 탓에 후반에는 연속 2골을 내주어 2:0으로 끌려갔다. 하지만 홍명보의 슛으로 1골을 만회하고 후반 45분에는 황선홍의 패스를 받은 서정원이 동점골을 성공시켜 무승부로 만드는 기적을 일궈냈으니…

 

스페인과의 일전이 끝난 며칠 후,

3달간의 연수가 끝나갈 무렵, 귀국길에 서부 지역과 하와이를 관광할 요량으로 뉴욕 생활을 마무리하고 있던 어느 날, 내 숙소가 있고 우리 교민들이 많이 사는 지역인 퀸스타운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한 길거리에 몇 대의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주차 되어 있고 여러 교민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한 장씩 나누어 주고 있었다. 

보스턴에서 열리는 한국과 볼리비아 간의 월드컵 2차전 응원단을 모집하고 있었는데 버스삯을 포함한 비용이 10원 남짓해 그다지 비싸지 않은데다 이런 기회가 또 있으랴 싶어 나는 버스에 올랐다.

 

관광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보스턴 폭스보로스타디움.

경기장 주변을 순찰하는 기마경찰들이 얼마나 멋있어 보이든지…, 또 53,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미식축구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홈구장을 축구 경기장으로 임시 전용한 보로스타디움이 얼마나 웅장하게 보이던지…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관중들이 꽉 들어찬 가운데 우리나라와 불가리아 간의 조별 2차전이 시작되었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투지와 교포들의 열띤 응원으로 하나가 된 태극전사들은 90분 내내 경기의 주도권을 쥐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찬스를 황선홍이 두 차례나 놓치는 등 스페인과의 1차전처럼 마무리가 부족했던 탓에 그나마 약체로 꼽혔던 볼리비아와도 0:0으로 비기고 말았으니 얼마나 아쉬웠던지 모른다.

경기 내내 흥분과 열광에 들떠 있었던 나는 숙소로 돌아와 다음 날 LA를 거쳐 하와이로 날아가기 위해 짐을 챙기던 중 그때서야 응원가면서 소지했던 여권이 없어진 줄 알고는 또 얼마나 당황하고 애태웠던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선하다.

하지만 월드컵 경기는 계속되고…

며칠 후, 이미 2무라는 월드컵 도전사상 최고의 성적을 이룬 우리나라 대표팀이 미식축구 댈러스번의 홈구장 코튼보울에서 치르는 디펜딩 챔피언인 독일과의 예선 최종전.

모든 축구전문가들과 도박사들은 독일의 압승을 예상했다.

역시나 독일은 강했다.

독일은 전반에만 3골을 휘몰아 넣었다.

모든 이들은 예상대로 흘러간다며 독일이 남은 시간에 몇 골이나 더 넣을까 궁금해 했다.

후반전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한국팀은 갑자기 어디서 그런 힘을 가져왔을까?

후반전에 들어서자 한국팀은 완전히 다른 팀이 되어 있었다.

후반 7분 만에 황선홍의 슈팅이 독일의 골문을 열자 후반 18분엔 홍명보도 벼락같은 중거리 슛으로 독일의 골망을 흔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추가점에는 실패해서 3:2로 패했다.

2무 1패로 비록 16강 진출이 좌절된 미국 월드컵이었지만 이때의 성적이 우리나라의 월드컵 최고 성적이었을 뿐 아니라 독일과의 경기는 독일인들조차 “후반전이 5분만 더 길었더라면 우리가 졌을지도 모른다.”고 했을 만큼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경기였다.

1994년 월드컵에서 세계 최강이자 적전 월드컵 우승국인 독일과의 경기에서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두 골이나 넣고, 이번 2018년 월드컵에서도 세계랭킹 1위이자 직전 월드컵 우승국인 독일과의 경기에서 두 골을 넣어 승리한 걸 보면 ‘독일戰 2골’이라는 묘한 인연이 있는 게 아니라면,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던가 ‘약자에 약하고 강자에 강한’ 우리 민족 특유의 강한 정신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번 2018년 월드컵에서도 아쉽게 16강 진출은 실패하였다.

하지만 세계 1위를 물리쳐 세계인을 놀라게 한 경기에서 태극전사들의 혼신을 다한 투지 넘친 모습을 보면서 우리 대한민국의 축구의 앞날과 4년 후의 월드컵을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세상살이 모든 것에는 기술도 중요하고 체력도 중요하지만 강인한 정신력이 없으면 기술도, 체력도 무용지물이다 싶고, 강한 정신이 따르면 못 할 일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戰 재방송이 끝나자 나는 러닝머신을 내려와 벤치프레스로 자리를 옮겼다.

평소엔 이 무게가 내 한계라 여기며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들어 올리는 80kg.

오늘은 여기에다 5kg짜리 바벨 두 개를 더 꽂아 90kg로 만든 다음 벤치에 누웠다.

태극전사들의 정신력이 내 가슴에 옮겨 붙길 바라면서…

   


주말마다 나를 데리고 다녔던고종사촌 동생과 함께 나이아가라 목포에서

(고종 동생 김종민 박사는 이후 삼성종합기술원 전무를 역임한 다음,

지금은 영국 캠브리지대학 에서 정교수로 재직 중이다.)


귀국길 하와이에서 도킹한 집사람과 함께한 꿈같은 시간들…


우리나라와 볼리비아의 경기를 관전하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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