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10. 일요일
친구들의 산행모임인 이륙산악회에서 정기 산행가는 두 번째 일요일.
산악회 집행부에서는 일찌감치 12월의 정기 산행을 送年 산행으로 통지하면서 많은 친구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또 산행 후 맛난 식사와 즐거운 뒷풀이를 위해 평소보다 가벼운 산행을 준비했었는데 코스는 바로 용마산을 거쳐 아차산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예보되는 12월 10일의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린단다.
'눈은 괜찮지만 비, 더구나 겨울비는 안되는데…'
산행 참석을 약속한 친구들의 염려 속에 9일밤이 지났다.
10일 아침이 밝았을 땐 온 세상은 은빛이었다.
밤새 올겨울 들어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
아니, 내리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하얀 눈을 본 순간 우리 친구들의 우정이 하늘에 닿았구나 싶었다.
용마산역 2번 출구.
약속 시간이 꽤 남았지만 환한 미소를 머금은 모습으로 속속 도착하는친구들
한 명씩 한 명씩 모습을 나타낼 때마다 영문 친구는 준비해 온 따끈한 커피로 추위를 녹여주느라 바빠지고,
삼수 친구는 사돈이 보내주셨다는 귀하디귀한 칡즙을 친구마다 한 봉씩 안겼다.
10시,
참석을 약속한 14명 모두가 도착했으니 출발!
뽀드득뽀드득∼
소복소복 쌓인 눈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순결무구하기 그지없는 하얀 눈에 첫 발자국을 남기며 오르는 龍馬山.
그런데 용마산은 다음과 같은 슬픈 전설을 안고 있단다.
삼국시대 고구려와 백제간에 서로 차지하려는 전쟁이 치열했던 곳이기에 이 지역에 장사가 될 아기가 태어나면 반역의 씨라하여 역적으로 몰아 죽였단는데, 이 시기에 이곳에 사는 경주 김씨네가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조그마한 어린 아이가 소를 끌고 풀을 먹이러 다녔다. 그런데 소가 풀을 먹으면 살이 쪄야 되는데, 점점 마르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몰래 아들을 따라 가 숨어서 엿보니, 아들이 쇠뿔 위로 올라갔다가 소의 배 밑으로 들어갔다가 펄쩍펄쩍 날아다니며 재주를 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혹여 다른 마음을 먹고 역적이 된다면, 집안이 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안 식구들이 모여 아들을 기름틀에다 눌러 죽이고, 집 안에 묻었다. 아들이 죽자, 아차산에서 용마가 나와 펄펄 뛰고 피를 토하며 울다가 죽었는데, 이후 아들을 죽인 김씨네 집안은 망하고 말았다는 전설이다. [용마산 아기장수]
용마산 폭포공원을 지나서는 본격적인 눈길 산행에 앞서 친구들은 아이젠을 덧신으며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하얀 눈, 소나무의 가느다란 솔잎마다에 소복소복 내려앉은 하얀 눈이 만든 설경은 별천지였다.
용마봉으로 오르던 중 팔각정에 도착해 삼수 친구가 자리를 펴자 친구들은 저마다 준비해 온 간식을 꺼내고….
산행 때마다 그랬듯이 송병철 대장은 한 사람당 2개씩은 돌아갈 만큼 맥반석 계란을 넉넉히 내놓고, 산행 때마다 인기가 짱인 맛난 과자를 가져오는 수원의 친구 태호는 오늘도 여러가지 터키産 초콜렛을 비롯해 양갱 그리고 머루와인까지…
또 다른 친구들이 내놓은 과일 등등은 살짝 요기가 동한 우리들의 배를 누르기 겁날 만큼 부푼 풍선으로 만들었다.
마침내 용마봉에 도착했다.
그런데 "핸드폰 거치대"라 쓰여진 막대기둥이 여기에도 있었다.
경치가 좋은 포토존마다 보이던데 이게 뭘까 싶어 한참 들여다 보았다.
'아하∼'
우리도 단체사진을 찍는다.
다른 등산객에게 부탁하기보다 "핸드폰 거치대"를 이용하기로…
기둥 위 뱅글뱅글 돌아가는 사각 통나무의 가운데 패인 홈에 타이머를 설정한 핸드폰을 끼운 후 셔트를 누르고 일행에게 달려가 포즈를 취하자 잠시 뒤 찰깍! 성공이었다.
맞았다.
핸드폰 거치대는 셀카봉, 아니 카메라 삼각대였다.
뽀드득뽀드득 하얀 눈을 밟는으며 아차산으로 가는 겨울 산행
두텁게 입은 등산복 속에서는 땀이 흘렀지만 차갑듯 상쾌한 공기와 밟힐 때 들리는 눈의 노래는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그래서일까? 산길에서 만나는 등산객들이 점점 많아졌다.
오래간만에 제법 많이 내린 하늘의 축복이 사람들을 산으로 유혹한 모양이다.
게다가 어제와는 달리 날씨마저 포근하니 집에서 휴일을 보내던 사람들이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다지 험하지 않은 산이라 눈을 밟으면서도 별 어려움 없이 한참을 가자 아차산 3보루 안내판이 보였다.
근데 아차산에는 온달장군이 이 아차산의 전투에서 전사했는데 장례에서 그의 관이 꼼짝달싹하지 않자 평강공주가 관을 어루먼지면서 "삶과 죽음은 이미 결정됐으니 돌아가소서."라고 하자 비로소 관이 움직였다는 애절한 전설도 있지만,
이런 전설도 있다. 조선 명종 때 점을 잘 치는 것으로 유명한 홍계관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명종이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쥐가 들어 있는 궤짝으로 능력을 시험하면서 '궤짝에 든 쥐가 몇 마리인지?' 물었으나 그가 숫자를 맞히지 못하자 사형을 명하였단다. 그런데 잠시 후에 암쥐의 배를 갈라보았더니 새끼가 들어 있어서 '아차'하고 사형 중지를 명하였지만 이미 때가 늦어 홍계관이 죽어버렸고, 이후 사람들은 사형집행 장소의 위쪽 산을 아차산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두산백과)
맑은 날 아차산에서 바라보는 한강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는데…
구름과 안개가 숨긴 한강의 아름다움을 머리속에 그리면서, 또 애잔하고 슬픈 아차산의 전설을 떠올리며 삼국시대엔 치열한 전장터였을 보루(堡壘)들을 지나칠 때는 앞뒤에서 들려오는 아이젠의 마찰 소리는 마치 고구려와 백제 군졸들의 창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아득히 들려오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약 3시간 동안 6여km를 걸어 송년 산행이 끝나자 우리를 기다리는 뒷풀이.
아차산역 부근의 샤브샤브 전문점에서 맛난 식사를 겸해 마시는 시원한 맥주와 소주는 우리의 갈증을 싹∼
건배 제의를 받고는 일어서서 한 해 동안의 친구들 협조에 감사와 노고를 치하하는 인삿말을 하던 송병철 산악대장이 신상발언이라며 우리 산악회의 산악대장 자리를 3년간 맡았었는데 生業에 좀더 집중하기 위해 벗고 싶단다. 그러고는 올 한 해 동안 정기 산행은 물론 십여 차례의 번개산행을 추진하면서 이륙산악회를 멋지게 이끈 김귀동 부대장을 차기 산악대장으로 추천했다. 또 자리에서는 물러나더라도 산행에 적극 참여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지금까지 그랬듯이 산행 때마다 매반석 계란도 부지런히 가지고 오겠단다. 김귀동 친구의 산악대장 수락에 이어 이풍규 친구가 부대장으로 확정되고….
이어 2018년 해외 산행 추진위원장인 김석진 친구가 일어나 진행내용을 이야기했다.
지난 7월에 있었던 백두산 여행처럼 멋지고 행복한 추억이 될 수 있는 곳으로의 트래킹을 겸한 여행지를 찾았단다.
당초 계획했던대로 대만으로의 트래킹을 알아보았지만, 여러 곳을 통해 알아 보았더니 해발 3,143m인 베트남의 판시판이란 산이 더 좋단다. 내년 11월경 3박 5일 일정의 여행으로 추진 중이라며 전원 참여를 당부하자 대부분이 동참하겠단다.
온갖 요리와 약주로 채워진 배는 더 이상은 노 땡큐∼ 일어설 무렵 칠수 친구가 긴급제안을 한다.
우리 생전에는 못 맞을 丁酉年의 마지막 산행을 이렇게 끝내기에는 너무 서운하단다.
뜻을 같이하는 여러 친구들은 노래방을 찾고…
참 즐겁고 행복한 산행이었다.
하얀 눈이 있어 더 멋진 날이었다.
아이젠, 스틱 등 만반의 준비를 단디하느라…
설경 앞에서는 모두가 童心이 되나 보다.
만능 스포츠맨 이종성 친구의 멋진 포즈
맛난 간식거리를 나눌 때 우정은 절로 쑥쑥…
3년간 대장을 맡아 수고하신 송병철 친구
한 폭의 수묵화
송병철, 최동효, 한옥봉, 신종진, 이종성, 김석진, 계종걸, 박삼수, 김귀동
이석도, 전태호, 이풍규, 김영문, 최칠수
요 거치대를 이용해 자동으로 한 컷
마치 雪國을 걷는 기분
나도 요런 폼으로…
雪山을 찾은 등산객이 꽤 많았다.
2007년 MBC TV에서 방영한 드라마 "태왕사신기" 촬영 중
주연 탤런트 배용준이 발견했다는 아차산 큰바위얼굴,
온달장군의 모습이라는 전설이 생겨나고 있다는데…
직접 보지 못해 아쉬웠다.
맛난 음식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한 뒷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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