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11. 일요일
양재 시민의숲 앞에서 버스를 탔다.
그러고는 선바위역에서 4호선 지하철로 갈아 탄 다음 또 금정역에서 1호선 전철로 환승해 석수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가자 9시 57분, 약속시간인 10시보다 3분 일찍 도착해 다행이다 싶었는데 나를 기다리던 친구들은 내가 왔으니 다 왔다며 큰 소리로 출발을 외쳤다.
오늘은 우리 이륙(二六)산악회에서 무술년 첫 산행하는 날.
김귀동 산악대장과 이풍규 부대장을 비롯해 모두 13명이 산행에 참석했다.
오늘 산행코스는 삼성산과 관악산을 관통하는 석수역→호압사→돌산국기봉→서울대입구,
선두는 최동효 친구가 맡았다.
며칠 전 내린 눈이 군데군데 쌓여 있어 겨울산 기분이 물씬 났지만 산행에는 별 불편함이 없었다.
한 살 더 늙어(?) 하는 첫 산행이라 그런지 선두 동효는 험난한 코스를 마다하고 조금은 싱거운 둘레길을 택했다.
석수역을 떠나 50분을 걸어 막 땀이 나기 시작할 무렵 도착한 쉼터에서
친구들이 내놓은 과자와 군고구마로 요기를 하면서 채비를 다시하는 친구들…
쉼터 옆에 쌓아진 멋진 돌탑
때죽나무 연리지
사랑하는 남녀처럼 두 그루가 하나로 연결되었다.
때죽나무는 어떤나무일까?
겨울산답게 군데군데 하얀 눈이 쌓인 길을 걷는 친구들
눈 덮힌 산에서 먹거리를 찾아 헤매는 들개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소근소근 정담을 나누며 걷는 친구들
신선이 되고파 신선길로 접어들었는데…
산중에 웬 거울이…
신선이 되려면 마음 뿐 아니라 맵시도 갖추어야 하는 걸까?
근데 산 속 군데군데 이런 비닐의 나무 무덤이 있었는데
참나무 시들음병의 방제작업으로 병든 참나무를 베어 훈증한 다음 비닐로 씌운 것아란다.
소나무 재선충에 이어 이젠 참나무 시들음병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니 걱정스러웠다.
친구들은 이런 몹쓸 병들이 사라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걷지 않았을까 싶다.
마침내 호암산의 호압사에 도착했는데
사찰에 엄청 큰 호랑이 모형이 떡 버티고 있었으니…
또, 호랑이 닮은 바위가 있어 虎巖山이라면 虎巖寺가 맞을 텐데, 호압사라니…
궁금증을 인터넷으로 풀어본다.
호암사(虎壓寺)는 1407년(태종 7) 왕명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태종은 이 절이 있는 삼성산(호암산)이 호랑이 형국을 하고 있어 과천과 한양에 호환(虎患)이 많다는 술사(術師)의 말과 무학대사의 조언을 받아, 호랑이의 살기를 누르기 위하여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지점에 절을 창건하고 호압사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 1841년(헌종 7) 4월에 의민(義旻)이 상궁 남씨(南氏)와 유씨(兪氏)의 시주를 얻어 법당을 중창하였고, 1935년에 주지 만월(滿月)이 약사전 6칸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요사채가 있으며, 대웅전 안에는 약사여래좌상과 신중탱화(神衆幀畵)가 있다.
호압사를 배경으로 이륙산악회 기념사진 한 컷
송병철 친구가 산행 때마다 약탕기에서 12시간이나 푹 삶아 만들어 오는 맥반석 계란.
둘레길 쉼터에서 친구의 12시간 정성이 담긴 맥반석 계란과 과일로 간단한 요기를 했는데,
내겐 맥반석 계란도 맛있지만 친구가 참깨와 소금을 볶아 만든 깨소금맛은 더 일품이다.
삼성산 성지를 알리는 안내판을 마주치는데…
삼성산(三聖山)이란?
관악구 신림동과 안양시 석수동에 걸쳐 있는 관악산의 한 봉우리로서, 신라 문무왕 17년(677년)에 원효,의상,윤필 등 세 명의 성인이 살았다고 전하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또 지공,나옹,무학 등 세 고승이 이곳에서 수도하였다고 전하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도 하며, 불교계 일각에서는 불가에서 말하는 극락세계의 교주(敎主)인 아미타불과 그 왼쪽에 있는 관세음 보살 및 오른쪽에 있는 대세지 보살을 삼성(三聖)이라 부르는데 여기서 산명이 유래되었다고도 하는데…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서양인 성직자로는 처음으로 사형을 선고받아,
1839년 9월21일(음 8월 14일)에 군문효수의 극형으로 순교한 프랑스인 선교사
성 라우렌시오 앵베르 범(范) 주교와 성 베드로 모방 나(羅) 신부, 성 야곱 샤스땅 정(鄭) 신부의
유해가 모셔진 곳인데 지금은 그들의 유해가 명동성당으로 옮졌다고 한다.
삼성(三聖)이란 지명이 아주 잘 어울리는 산임에 틀링없다 싶었다.
삼성산 성지를 지나 조금 걷자 자주 볼 수 있는 무덤과는 달리 무덤의 꼬리가 유난히 길 뿐 아니라
그 끝부분에 또 무덤처럼 보이는 작은 봉우리가 있는 특이한 모양의 한 무덤이 내 눈길을 끌었으니….
무덤 바로 앞의 비석은 너무 오래되어 글씨를 알아 볼 수 없지만
20世紀에 들어서 후손들이 새로 세운 비석에는
'承政院左承旨, 贈資憲大夫 吏曹判書 兼 知經筵兩館 大提學, 世子左賓客,
南原尹公길之墓…'란 漢字들이 있었다.
좌승지라면 정3품 당상관으로 지금의 차관급
자헌대부 이조판서라면 정2품, 지금의 장관급
지경연, 대제학, 세자좌빈객 또한 정2품으로 장관급
도대체 '윤길'이 어떤 사람이길래…
또 궁금증이 발동해 인터넷을 뒤져보았더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수록된 '윤길'은 오직 아래의 한 분만 있었는데다,
이 무덤을 관리하는 후손을 만났다는 어떤 블로그를 읽고나서는 동일인물임을 확신했다.
1564년(명종 19)∼1615(광해군 7).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여명(汝明).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 중 세자가 전주에 머물면서 실시한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였는데, 윤순(尹㫬) 등 5형제가 모두 등과자이다. 1595년(선조 28) 함경도도사로 근무 중 폭정으로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남쪽 변방지역의 접반관(接伴官)으로 활동하였다. 1599년 정언에 제수된 뒤 동지사 정엽(鄭曄)을 따라 서장관(書狀官)으로 중국에 다녀왔으나 정엽의 비행을 눈감아 준 견문사건(見聞事件)으로 파직, 추고되었다. 그 뒤 형조좌랑으로 복귀한 뒤 정언에 재등용되어 윤두수(尹斗壽)·정영국(鄭榮國)을 탄핵하였고, 이어 경성판관으로 파견되었으나 사리사욕만 취한다는 사헌부의 탄핵으로 파직되었다. 1602년(선조 35) 사간원헌납을 제수 받은 뒤 성균관전적·형조정랑을 거쳐 1605년에는 풍기군수에 제수되었다가 2년 뒤에는 전적·형조정랑으로 재임용되었다.
1608년(선조 41) 성균관직강에 제수되었다가 광해군이 즉위하자 장령이 되었고, 그 뒤 필선·집의 등을 거쳐 1614년(광해군 6) 우부승지에 올랐다. 남이공(南以恭)·김신국(金藎國)·유희분(柳希奮) 등의 소북세력과 교류하여 소북의 영수 유영경(柳永慶)이 사사된 뒤에도 순탄한 관직 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후손들이 세운 비석에는 이조판서, 대제학 등 정2품의 벼슬을 여러차례 역임한 걸로 되어 있는데 반해
선조실록(宣祖實錄),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국조방목(國朝榜目), 연려실기술(燃黎室記述)를 참고해 만든 백과사전에 기록된 최고위 벼슬은 정3품인 우부승지가 유일하다. 게다가 백과사전에 따르면 벼슬길에 나선지 2년도 안되어 폭정으로 파직된 적이 있을 뿐 아니라 상관의 비행을 눈감아 준 사건으로 탄핵된 적도 있고, 경성판관 시절에는 사리사욕만을 취해 사헌부의 탄핵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 천수를 누렸다니 정말 대단한(?) 인물이다. 그런데 후손들의 비석 내용과 많은 사료를 참고로 해 만든 대백과사전 중 어느 것이 진실일까?
백과사전의 내용이 맞다면 20세기 후손들이 거짓 비석을 세웠다는 말인데, 설마…
하지만 만약에 백과사전에 수록된 내용이 사실이라면 결코 칭송 받을 만한 인물은 아닌 듯하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이 본받을 인물은 못 된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이 컸다.
둘레길을 벗어나 바윗길을 오르면서 오늘은 처음으로 등산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돌산 국기봉에서 기념사진을…
이륙산악회의 무술년 첫 행사를 격려하기 위해 식당에서 1시간이나 기다린
김정수 재경 동기회 회장께서 찬조한 능이버섯 오리백숙이 얼마나 맛나던지…
올 11월 예정인 베트남 파시판산 등산 추진위원장인 김석진 친구가 내용을 간단히설명하고…
폭탄주도 마시고…
식사 후 커피를 마시며 동기회 회칙 제정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는 친구들
안양 석수역을 출발해 서울대 입구까지 6.7km를 걸었던 무술년 첫 산행.
매월 둘 째 일요일의 정기 산행과 넷 째 일요일의 번개 산행에 비하면 너무 밋밋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새해 들어 처음 만나는 친구들이 3시간 반 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으면서 추억이 듬뿍 묻은 情談을 꺼내고,
서로의 건강과 행복 바람을 담은 德談을 나누기에는 오히려 더 멋진 코스였다.
반나절 내내 웃음꽃과 건강꽃, 행복꽃이 만발했던
우리 이륙(二六)산악회의 2018년도 첫 산행은
건강과 행복의 창공을 향한 멋진 이륙(離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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