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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주들-천아, 보송이, 다솜이..

'바보네' 했다

 

지난 주말의 일이다.

집사람은 찜질방에 가고,

나는 동호회에서 색소폰 연습을 하고 있는데

큰 딸 보라가 자기 집에서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전화를 했다.

서둘러 연습을 마치고 은규도 볼 겸 보라네로 갔다. 

은규가 할아버지를 무척 반겼다.

저녁 상을 차리던 보라가 내게 물었다.

"아빠, 은규가 '하머니가 하부지한테 바보네 했다.'는데 이게 무슨 말이예요?"

"글쎄, 그게 무슨 말이지? 엄마가 내게 바보네 할 턱이 있나."

그날은 이렇게 대수롭잖게 여겼다.

 

다다음 날인가?

은규를 어린이집에서 하원시켜 우리집에서 데리고 있을 때였다.

평소엔 엄마가 퇴근해서 올 때까지 나랑 친구가 되어 온 장난감을 꺼내는 우리 은규가

그날은 카봇을 한참 가지고 놀더니 싫증이 났는지 TV 받침대의 서랍장을 하나씩하나씩 열었다.

그러고는 이것도 꺼내보고 저것도 꺼내보더니 뭔가를 집어들고 우리 쪽으로 내밀더니.

28개월밖에 안된 우리 은규가 웃으면서 이렇게 소리치는 게 아닌가.

"이거 할 때, 하머니가 하부지한테 '바보네' 했어"

그런데 들고 있는 것은 화투 묶음이었다.

화투를 치면서 집사람이 내게 '바보네' 했다는 것이었다.

저녁 준비를 하고 있던 집사람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은규가 언제 그말을 들었지?"

 

1월 1일 新正 때였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원준이와 세은이, 은규가 엄마랑 아빠랑 세배하러 왔다.

첫돌이 안된 세은이는 엄마 품에 안겨있고, 세배를 마치고 은규는 원준이 형이랑 신나게 놀고…

집사람이 오랜만에 고스톱을 한번 치잔다. 사위 세배돈 좀 따고 싶다며.

실로 수 년만에 고스톱 판이 벌어졌다.

은행에 숙직실이 있었던 예전에는 엄청 많이 쳤던 고스톱.

숙직실에서 몇 팀이 모여 밤을 새우기 일쑤였던 고스톱.

그때 잃었던 돈을 다 모으면 고향에 논 몇 마지기는 살 수 있었겠지만

나도 꽤나 잘 치는 고스톱인데 이날은 영 잘 되지 않았다.

 하긴 상대가 집사람이고, 사위들이니 승부욕이 통…

그렇지만 열 판이 넘도록 내가 선을 한 번도 하지 못하자

집사람이 하도 답답해서 내게 한마디 했단다.

"당신 바보네."

이 소리를 은규가 들었던 것이다.

 이 방 저 방을 뛰어 다니던 아이들이 갑자기 조용하다 싶어 들여다 봤더니

침대에 나란히 예쁘게 잠들어 있었던 원준이와 은규였는데…

그 말을 열흘이 넘도록 기억하고 있다니…

아이들 앞에서는 말을 조심해야겠다.

우리 원준이랑 은규의 한마디한마디 말과 행동 하나하나는 나의 거울인 셈이다.

 상스러운 말은 물론 비난하는 말이나 나쁜 말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

이젠 칭찬하는 말, 좋은 말을 더욱 더 많이 해야겠다.

 

그런데…

신정날 고스톱의 최종 승자는 나였다.

돈을 조금은 보탰지만, 기분좋게 일곱 명의 맛난 저녁을 살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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