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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은규를 낳은 보라가 15개월의 출산휴직을 끝내고 출근 하는 날.
집사람은 서울정토회에서 공양간 봉사하는 날이고
나는 오후 2시에 색소폰 레슨을 받아야하고, 저녁 6시에 송년모임이 있는 날인데….
당초, 보라는 엄마와 아빠가 너무 힘들까봐 은규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었다.
그러던차 다행히 지난 11월 하순에 한 어린이집에 은규가 들어갈 자리가 생겼다.
적응을 위해 보라는 한사나흘을 하루 1시간 정도 은규를 데리고 어린이집에 다녔다.
그러던 중 은규가 콧물을 흘리기 시작하더니 감기에 걸렸다.
어린이집에 감기가 심하게 걸린 아기가 있다고 하더니….
동네 소아과에 다녔지만 차도가 있기는커녕 끙끙 앓던 은규는 축 처졌다.
결국 삼성서울병원의 응급실에 가고, 나흘간 입원을 해야 했다.
은규가 신음소리를 내며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집사람이 말했다.
"여보, 어린이집에 보내지 말고, 두 돌까지는 우리가 키웁시다."
보라가 출근길에 데려다 놓은 은규, 평소에는 아직 자고 있을 시간인데,
하루종일 엄마와 아빠를 못 보는줄도 모른채 평소와 다름없이 잘 놀았다.
8시 반쯤 은규는 아침을 먹었다. 잘 먹었다.
집사람은 10시경 정토회에 갔다.
은규와 나만 남았다.
은규는 엄마를 찾을 생각도 않고 잘 놀았다.
집사람이 만든 요플레에 홍시와 사과를 잘게 썰어 넣어 주니 잘 받아 먹었다.
오전에 좀 재우고 싶은데 잠잘 생각은 없는지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손에 잡히기만 하면 종이던, 비닐이던, 무엇이던 입에 넣으려 하니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15개월 되었으면서도 혼자 서기만 할 뿐 아직 걷지 않는 우리 은규.
걸은 때는 꼭 두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는 걸 보면 겁이 많은 모양이다.
하긴 자전거 타는 게 무서워서 타지 못하다가 군에가서 배운 내가 아닌가.
은규가 할아버지인 나를 닮지 않을 리가 있나 싶었다.
기저귀를 살폈다.
쉬를 많이 했다. 응가도 했다.
응가가 너무 되지도 않고, 묽지도 않은 황금빛이라 참 이뿌게만 보였다.
따뜻한 물로 엉덩이를 씻기는데 촉감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12시가 넘었다.
띠를 둘러 가슴에 안고 늘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장가를 불렀다.
"우리 은규는 지혜롭고 자비로우며, 건강하고 행복한 아기입니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아침 잠을 덜 자고 한참을 놀았으니 피곤했던 모양이다.
가끔 할아버지를 빤히 쳐다보고는 하품을 몇 번 하더니 잠이 들었다.
가슴에 안은채 소파에 기대어 앉았던 나도 살짝 잠이 들었다.
정토회에 갔던 집사람이 살며시 대문을 열며 들어왔다.
내가 레슨시간에 늦을까봐 공양간 봉사를 끝내지 않고 부리나케 왔단다.
그렇지만 내 품에서 곤히 잠든 은규를 바라보는 기ㅃ,ㅁ이 얼마나 큰데…,
잠든 지 이제 한 시간밖에 안되었는데…,
쌔근쌔근 잘 자는 은규를 더 보고 싶었다. 더 재우고 싶었다.
색소폰 동호회에 연락해 레슨시간을 4시로 바꿔달라고 했다.
2시 20분,
정확히 두 시간을 잔 은규가 눈을 떴다.
푹 잘 자서 그런지 컨디션이 무척 좋았다.
할머니가 준비한 점심도 잘 먹었다.
은규랑 놀고 있으니 갈등이 생겼다.
레슨도 쉬고, 저녁모임에도 가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러자, 집사람은 내게 빨리 가라고 재촉하며 말했다.
"여보, 걱정말고 가세요. 은규는 내 손자도 되거든요."
송년모임에서 만난 친구들은 세월이 너무 빠르다고 한탄했지만
나는 손자를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초로의 삶이 행복하다 생각했다.
내 손자들이 더 빨리 쑥쑥 자랐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만큼 내가 빨리 늙는다는 잘 알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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