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를 보다 보면 무척 재미난 광고를 보게 된다.
할머니는 음식을 준비하고, 할아버지는 집안을 청소하면서 "손주가 오면 좋지, 좋아"를 연발하며 들뜬 마음으로 손주들이 어서 오길 기다린다. 곧 엄마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 집에 도착한 손자와 손녀는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고...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고 난리를 치는 통에 기진맥진한 할아버지는 "점심먹고 갈거지?"하며 빨리 돌아가길 바라고, 마침내 손자 손녀가 돌아가자 "가면 더 좋지, 더 좋아!" 하며 좋아한다. 또 전화가 울리고 둘째 아들이 손자를 데리고 찾아 뵙겠다고 하자 전화기에 대고 손사래를 치며 "오지마, 오지마" 라고 소리치는 유명 드링크제 광고인데... "손자는 오면 좋고, 가면 더 좋다."는 시중의 우스개를 재미나게 엮은 광고다.
'미운 네 살' 이란 말이 있으니, 광고에서도 말을 듣지않고 할아버지 정신을 쏙 뺀 손주 녀석도 틀림없이 네 살일 것 같다. '미운 네 살'- 옛말 그른 데 없다더니... 나도 우리 원준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실감하고 있다. 작년까지는 엄마도 많이 찾지 않고, 우는 모습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점잖고, 욕심 부리지 않던 원준이가 네 살이 되어 못 하는 말이 없게 되면서 제법 고집을 부린다. 어린이 집에서는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식사도 혼자 잘 한다는데, 집에 와서는 작년과 달리 엄마와 잘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원준아, 밥 먹자" 하거나 "원준아, ○○하자" 그러면 자기가 하고 싶은 놀이나 행동을 다 하기 전에는 꿈쩍도 않는다. 외식을 가도 식당 안을 돌아다니며 하고 싶은 짓은 다 해야 한다. 하고 싶어 하는 걸 못하게 하거나 못 들은 채 지나치면 "원준이 기분이 안 좋아" 그러면서 금방 시무룩 해진다. 때로는 굵은 눈물까지 뚝뚝 흘린다. 다른 네 살아이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래도 우리 원준이 아주 양호한 편이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러한 네 살의 행동은 정상적인 과정이며, 이 나이가 되면 자율성과 독립성이 강해져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게 특징이란다. 또한 네 살의 나이는 좋고 나쁘다는 개념이 확립되어 있지 않아 마음 내키는 대로 직접 하고 싶어하고, 모르는 것은 직접 부딪히며 깨닫는 시기라서 제재를 가하면 거세게 저항하는 게 지극히 정상인 만큼 도가 지나치지 않는 경우에는 아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게 더 좋단다. 그리고 좋고 나쁘다는 개념을 심어 줄때는 아이의 두 눈을 바라보며 차근 차근 설명해주는 게 아주 중요하며, 이 때 형성되는 자아와 성격은 성인이 되어서도 잘 바뀌지 않으며, '미운 네 살' 은 성장기의 아이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라니 이제부터 원준이 를 더 잘 지켜봐야 겠다.
우리 원준이도 '미운 네 살'이 되어 가끔은 나잇값 하느라 힘들게도 하지만, 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할아버지는 기분이 안 좋아"라고 하면 "하부지, 기분이 좋게 해줄께"하며 두 팔 벌리고 달려들는 원준이를 꼭 껴안으며 56년전 내가 "미운 네 살'일 때는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누나와 여동생이랑 같이 공동 우물가에서 놀며 송장메뚜기를 잡으려다 우물에 빠져 피를 철철 흘리는 나를 작은 아버지가 구했던 6살 때의 기억은 나지만 네 살때의 기억은 전혀 없다. 하기야... "30년 전, 보라와 세라는 네 살때 어떻게 자랐는지?" 자식의 성장 모습도 제대로 기억 못하는 못난 아빠이니까.
(네 살짜리 아이들...)
(TV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