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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동체 일심동행

아내와 함께 걷는 서울둘레길(16)

 

2022. 7. 2. 토요일

함께 잔 은규가 깰 세라 살금살금 거실로 나왔더니 주방에 집사람이 있었다.

사과와 자두, 떡 등의 먹거리와 밤새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생수, 포카리 스위트 등의 음료수를 챙기면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느라 벌써 바빴다. 집사람이 준비한 먹거리와 음료수 등을 배낭에 챙겨 넣은 후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은규 어미가 들어왔다.

엄마와 아빠는 6시 30분쯤 집을 나선다고 했더니 혼자 남게 된 은규 옆에서 더 자려고 온 것이다.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시곗바늘이 7시를 가리킬 때야 집을 나섰다.

 

집사람과 함께 서울둘레길을 걷기로 한 날이다.

지금까지는 둘레길 걷는 날엔 8시쯤 집을 나섰다. 그러나 오늘 낮 최고기온이 35 ºC까지 오른다는 일기예보를 본 집사람이 더위를 피해 두어 시간 앞당기자고 한 탓(?)에 서둘어야 했다. 하지만 겨우 한 시간밖에 앞당기지 못한 채 집을 나섰으니···

그렇게 퍼붓던 그저께의 비구름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늘은 군데군데 옅은 구름만 좀 거느렸을 뿐 수, 목요일 폭우에 공기 속 먼지가 말끔히 씻겨 내린 덕분에 눈이 부실만큼 파랗고, 이른 아침인데도 내리쬐는 햇볕은 열기를 잔뜩 묻힌 것 같았다.

매헌역에서 신분당선을 탄 후 논현역에서 7호선으로 환승한 다음

군자역에서 5호선으로 환승해 광나루역에 도착했다.

8시 5분 전, 7시 55분이었다.

 

광나루역 역사 안에서 채비를 갖춘 후 2번 출구로 나와서는

 

광장동 체육공원과

 

넓을 광(廣), 광나루의 다른 말 '너븐나루' 정원을 지나

 

광진교 입구의 스탬프 부스에서 스탬프 꾹! 찍은 다음 광진교에 들어섰다. 

 

광진교에서 바라본 롯데타워
그저께 내린 장맛비로 인해 누런 황토물이 가득한 한강
광진교의 보행로에서 한 컷!

다리 위의 넓은 보행로를 따라 단풍나무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나무와 봄이면 봄꽃, 여름이면 여름꽃,

가을이면 가을꽃, 철에 따라 제 모습을 내비치는 화초들이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을

저절로 행복해지게 만드는 다리가 서울에 이 광진교 말고 또 있을까?

 

막 건너 온 광진교의 모습
서울둘레길 리본이 안내하는 대로 한강변을 걸었다.
나를 닮아 가나 보다. 흙길이 보이자마자 집사람은 맨발이 되었다.

암사동 선사유적지
과일을 먹으며 잠시 쉰 원두막에서 한강을 배경으로 짤깍!
별모양이 정말 예쁜 도라지꽃
고덕산 산길, 해발 86.3m의 낮은 산이지만 울창한 나무 숲이 참 좋다.

높이가 86.3m밖에 되지 않는 야트막한 산이다.

고려의 절의충신(節義忠臣)석탄 이양중(石灘 李養中) 公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관직을 떠나 야인으로 이곳 산자락에 와 은둔생활을 시작한 데서 후일 인근 사람들에 의해

산 이름이  '고덕(高德)으로 지어진 것이란다.

 

고덕산 고인돌 1호와 2호

고인돌이란다.

고인돌이라면 선사 시대의 돌무덤인데,

양재동에 있는 '고인돌 근린공원'에 있는 고인돌은 물론 사진으로 본 전국

곳곳의 고인돌에 비해 돌의 크기와 모습이 턱없이 작고 너무 초라해

이게 무슨 고인돌인가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쩌면 이곳의

주인공이 어린 아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그렇다면 이 돌도 너무 무거울 것 같았다.

 

아직은 보들보들한 밤송이 가시, 밤송이가 앙증스럽다.
고덕산 산딸기

9.4km, 3시간 40분

한낮을 피했는데도 더웠다. 산속이 아닐 때는 뜨거웠다.

장마철이라 습도가 높은 탓에 땀으로 샤워하는 듯했지만 산길을 걸을 땐 그저 행복했다.

마침내 오늘의 걸음을 마치고 고덕역으로 가는 도중 명일 공원 입구에 다다랐을 때 우체통 닮은 빨간 통이 보였다.

다음 서울둘레길의 스탬프 부스였다. 집사람이 반갑다는 듯 말했다.
"오늘은 하나밖에 못 찍어 아쉬웠는데 잘 됐다. 여보 여기서 하나 더 찍어요." 

"어차피 다음 코스 시작할 때 여기서 찍고 출발할 거니까 그때의 즐거움을 가불하지는 맙시다."

"하긴 그래요. 오늘 찍으면 오늘은 좋겠지만 다음엔 또 아쉽겠죠. 저축하는 셈 치고 남겨 둘게요."

 

고덕역에 도착했을 땐 정오, 12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한 시간 일찍 시작한 데다 절반 이상이 평지의 길이라 속도가 좀 빨랐던 덕에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하지만 땀도 많이 흘리고 목표도 달성했으니 점심 요기를 하자 싶어 집사람에게 물었다.

"여보, 뭐 먹고 싶어? 뭐 먹으러 갈까?"

그러자 집사람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배가 전혀 안 고픈데···. 아직 12시도 안 되었으니 그냥 집에 가요. 족발 사서 아가들이랑 같이 먹게."

"그럴까? 원준이랑 은규, 세은이 모두 족발을 좋아하니 그렇게 합시다."

그러고는 곧장 고덕역으로···

계단을 내려가는데 뒤따르던 집사람이 말했다.

"당신한테서 땀냄새가 엄청 많이 나요."

"그렇게 땀에 쩔어 걸었니···, 내 코로도 시큼한 쉰내가 솔솔 들어온다요. 우짜지? 화장실 가서 빨아 입을까?" 

"웃옷만 빨아 입는다고 되겠어요? 하의랑 온몸에 냄새가 배었을 텐데···, 그냥 갑시다."

다행이었다. 지하철 안에서는 내 땀냄새를 아무도 맡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냉방 바람이 쏟아지는 데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마스크를 착용한 덕분인 것 같았다.

답답하다 불평하고 불편하다 불만을 가졌던 마스크인데 오늘은 그런 마스크의 덕을 톡톡히 보는구나 싶었다.

 

시작은 한 시간밖에 빠르지 않았지만 점심을 먹지 않은 채 곧장 집으로 향한 덕에 마무리는 두세 시간 이상 빨랐다.

한 시간 이른 시작 덕분에 오후가 여유로워 좋았다. 손주들과 함께 족발을 뜯은 후 헬스장에 가서는

간단히 몸을 푼 다음 시원하게 샤워까지 할 수 있었으니 한 시간 당기길 잘했다 싶었다.

두세 시간의 여유가 만든 꿀맛 같은 낮잠까지 즐겼더니 나만큼 팔자 좋게

행복 누리는 사람은 그다지 흔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지금이 바로 극락이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