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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동체 일심동행

아내와 함께 걷는 서울둘레길(13)

2022. 4. 2. 토요일

요즘 들어서는 집사람이 더 적극적이다.

60만 명을 훌쩍 넘어섰던 코로나 확진자의 수가 며칠 동안 오르락내리락하더니 오늘은 26만 명 정도로 전날에 비해 2만 명쯤 줄었단다. 그러곤 오늘은 날씨도 딱 좋다며 집사람은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몇 가지의 과일과 커피, 생수 등을 챙기는 등 부지런을 떨었지만 올해 들어 부쩍 건강해진 모습이라 보고 있는 내 기분마저 좋았다.

내가 인터넷 아웃도어에서 사 준 트레킹화가 가볍고 편해 좋다며 끈을 졸라맸다.

 

오늘은 서울 둘레길, 당고개역 - 화랑대역 코스를 걷기로 한 날.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폴짝···

신분당선 시민의 숲역으로··· 

조금씩 완화되고 있는 거리두기 덕인지,  오랜 제한 조치에 지친 나머지 좀 무관심해진 탓인지 알 순 없었지만

신분당선, 3호선, 4호선 등 우리 부부가 타는 지하철마다 등산 차림의 남녀들이 북적북적··· 예년의 봄 같았다.

 

우리 부부를 실은 4호선은 마침내 당고개역에 도착하고···

 

철쭉동산의 부스에서 스탬프 꾹!!!

 

불암산에 男根石이 있다던데 혹시....
봄의 전령사 진달래

해마다 이맘때면 흔하디 흔한 진달래는 내게 향수(鄕愁)의 꽃이다.

활짝 핀 진달래꽃만 보면 입술이 파래지도록 따 먹으면서 꽃술로 꽃 싸움을 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함께 나무 하러 가셨던 아버지께서 활짝 핀 진달래꽃 한두 묶음 꽂은 나뭇짐을 지고 오셔서는 우리 오 남매에게 꽃묶음을 내주며 환희 웃으시던 모습이 떠오르면서 그 시절이 그리워지고 눈물이 핑 돈다.

그래서일까?

나는 진달래를 여전히 참꽃이라 부른다.

참깨, 참기름, 참외, 참새 등등 우리말에는 앞에 '참'자가 붙는 동식물이 꽤 있다.

이때 '참-'의 '참'을 표준 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진짜' 또는 '진실하고 올바른'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품질이 우수한' 뜻을 더하는 접두사, '먹을 수 있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라고 한다. 그렇다면 '절제, 청렴, 사랑의 기쁨'이란 꽃말을 가지고 있으면서 '참꽃'이라고도 불리는 진달래야 말로 꽃 중의 꽃이 아닌가. 참새를 '새 중의 새'라 하기엔 좀 뭣하지만··· 

 

진달래꽃을 만나면 저절로 읊게 되는 김소월의 詩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은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진달래에 관한 전설과 우스개 -

아주 오랜 옛날 죄를 지어 하늘나라에서 쫓겨난 선녀가 인간 세상에 내려와 진 씨 성을 가진 나무꾼을 만나 딸 하나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인간 세상에 딸과 남편과 행복하게 살다가 선녀는 하늘의 부름을 받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나무꾼은 딸을 지극정성으로 예쁘게 키웠는데 이름이 달래였습니다. 달래가 과년한 처녀가 되었을 때 달래의 미모에 빠진 원님이 달래를 취하려 하자 달래는 거부하다 원님에게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나무꾼은 달래의 시신을 안고 슬퍼하다 그만 죽고 말았는데 그 자리에서 연분홍 예쁜 꽃이 피었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꽃을 진달래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참! 한때 골프 치는 사람들 사이엔 이런 농담도 있었답니다.

남자 골퍼 : 진달래?

여자 캐디 : 택시!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친구들과 산행 후 봄을 마시곤 했었는데···

하산 길에 딴 진달래꽃 한두 송이를 막걸리 가득한 잔에 둥둥 띄워 마시면

산행의 피로는 눈 녹듯 사라지고 상큼한 봄기운이 온몸에 퍼졌는데

오늘은 집사람이랑 봄을 마셔야겠다.

 

불암산에 세워진 배우 최불암의 글

이름이 너무 커서 어머니도 한번 불러보지 못한 채

내가 광대의 길을 염치(廉恥) 없이 사용한

죄스러움의 세월(歲月), 영욕(榮辱)의 세월

그 웅장(雄壯)함과 은둔(隱遁)을 감히 모른 채

그 그늘에 몸을 붙여 살아왔습니다.

 

수 천만 대를 거쳐 노원(蘆原)을 안고 지켜온

큰 웅지(雄志)의 품을 넘보아 가며

터무니없이 불암산(佛岩山)을 빌려 살았습니다.

용서(容恕)하십시오.

 

엘리베이트를 타고 오른 불암산 전망대에서 파노라마로 촬영한 서울 전경
아까 보았던 바위가 男根石이라면 이 바위는 ???

일부러 꺾어 땅에 꽂은 듯 한 줄기만 자라 활짝 핀 진달래 

처음엔 외롭고 애처로워 보였지만 그나마 꽃은 두 송이라 다행이다 싶었다.

 

언제부턴가 간간히 보이던 산길의 야자수 껍질을 엮어 만든 매트였는데

지금은 이런 야자수 껍질 매트가 깔리지 않은 산책로와 등산로는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이 깔렸다.

등산스틱에 찔려 멍들어 흩어지는 산길의 土沙 유실을 방지하는 데다 적은 비에도 쉬이 흙탕길이 되는

산책로 등에 이점이 매우 많고 수명도 꽤 길다지만 나는 매트보다 아직은 흙길이 훨씬 편하다.

맨발로 흙길을 걷다 보면 온몸으로 스며드는 땅기운이 얼마나 좋은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전국의 등산로와 둘레길 등에 깔리고 있는 야자수 껍질의 매트는

야자수가 많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열대 지방의 나라에서 만들어 수출하고 있을 텐데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수입하는 야자수 매트의 양과 금액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그들에겐 우리 대한민국이 최고의 거래처겠다 싶었다.

 

집사람이 불암산 안내도에 표시된 한 약수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쩌면 이 약수터가 40년 전 당신이 새벽마다 올라가서 생수를 받았던 곳이겠다."

 

백세문으로 나오자 차도 건너 바로 나지막한 동산 하나가 보이고 오른쪽엔 원자력 병원이 보였다.

그렇다면 저 동산 너머로 보이는 삼익아파트가 40여 년 전, 1980년대 초반 우리 가족이 2∽3년 동안 살았던

한도 연립주택이 있었던 자리가 틀림없는데···, 연립주택 단지의 뒤쪽을 통하면 곧장 불암산이고

나는 새벽마다 물통을 들고 그렇게 해서 불암산에 올라 약수를 받아 내려왔었는데···,

6차선이나 되는 이 노원로는 언제 뚫렸을까?

 

경춘선 숲길

옛 경춘선 구간의 폐철길 중 노원구 월계동 광운대역 일대에서부터

공릉동과 화랑대역을 지나 담터마을 인근까지 이어진 5.4km 길이의 공원이다.

 

화랑대역 4번 출구 인근의 부스에서 스탬프를 찍자

오늘은 스탬프를 2개나 득템했다며 집사람 얼굴엔 함박꽃이 만발했다.

 

새로 구입한 트래킹화가 엄청 가벼우면서도 발이 편해 너무 좋다며 집을 나설 때부터 좋아하던 아내였다.

불암산 곳곳에 활짝 핀 진달래가 봄기운을 더할 뿐 아니라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의 수준이 최저에 가까울 만큼 화창한 날씨에 힘들게 오르내려야 하는 급경사마저 거의 없는 숲길인 데다 집사람 친구의 말을 쫓아 재테크를 한답시고 서초동의 아파트를 전세 놓은 다음 공릉동으로 이사와 23년을 살면서 겪었던 추억-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서너 살이었던 쌍둥이 딸을 키우느라 힘들었던 집사람의 고생담, 새벽마다 불암산에 올라가서 약수를 받아왔던 내 이야기, 집사람이 친구의 주선으로 동네 미장원 여주인에게 당시 내 두세 달의 월급이었던 70만 원을 빌려주었다가 떼이는 바람에 몇 달 동안이나 사네 못 사네 하면서 집사람과 내가 티격태격했던 이야기 등 40년 묵은 추억이 소환된 덕(?)에 오늘 쉬엄쉬엄 3시간 반 동안 걸었던 8.15km를 집사람은 '최고의 코스'라며 매우 만족해하고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나도 덩달아 기분이 UP 되었다. 게다가 하산 길에 딸에게 전화를 해 40년 전에 먹었던 태릉 숯불갈비 같이 먹게 오라고 했더니 두 딸네 모두 온 덕에 오늘 둘레길은 추억의 걸음일 게다. 

 

음식점에 들어가자 9명이었던 우리 가족은 이산가족이 되어야 했다.

낼모레 4일부터는 10명까지 괜찮지만 아직은 8명까지만 한 식탁에 앉을 수 있다며

두 팀으로 나누어 완전히 뚝 떨어져 앉으란다. 음식점 안에서는 아예 서로 아는 체도 말란다.

원준네는 4명이라 한 팀으로 몇 테이블 건너 안쪽의 식탁을 차지하고

집사람과 나는 은규네와 합쳐 다섯 명이 앉아야 했지만

손주들의 맛나게 먹는 모습은 행복을 배가했다.

 

태릉 숯불갈비 맛집을 찾아간 곳은  바로 이곳

그런데··· 허참! '허참 갈비'란다.

'허참'이라면 꽤 유명했던 방송인의 이름이 아닌가?

나보다 다섯 살밖에 안 많으면서 두 달 전 지병으로 돌아가신 분인데···

입간판과 현수막 등에 붙어 있는 얼굴 사진을 보자니 틀림없는 그분이었다.

큰 음식점이었지만 주차장엔 승용차들이 가득했고 넓은 음식점 안은 빈자리가 없었다.

주차장 등 음식점 부지만 해도 수천 평은 될 듯했다. 게다가 음식점에 딸린 듯이

보이는 태릉 먹골배 배밭까지 합하면 족히 만 평은 되지 않을까 싶었다.

3기 신도시 지역인 별내 신도시 안에 만 평이나 되는 토지

이렇게 많은 재산을 남겨두고 눈을 감다니···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지만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다."

 

오늘따라 더 가슴에 닿는 名言을 떠올리며

나는 건강관리를 더 열심히 하리라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