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29. 토요일
닷새나 되는 설날 연휴의 첫날이다.
예전 같았으면 아이들을 잡으랴 선물꾸러미를 잡으랴 두 손이 모자라 쩔쩔매면서도 두둥실거리는 보름달보다 더 들뜬 마음으로 고향 가는 차에 몸을 실었을 텐데···. 사흘 후 화요일이 설날이지만 해야 할 일, 아니다 할 일이 하나도 없는 날이다. 당초엔 서울둘레길을 함께 걷는 둘레길이나 걸은 다음 가락 수산시장에서 대방어나 즐길까 했었다. 그런데 몇몇 친구가 귀향 등으로 참석할 수 없다기에 둘레길 계획을 취소한 데다 헬스장은 연휴 동안 문을 닫았고, 내 절친인 송은규랑 정세은은 연휴 동안 제 엄마 아빠의 껌딱지가 되어 지낼 테니 더욱더 할 일이 없는 날들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하루 2만 명에 가까운 확진자를 쏟아낸다는 코로나 뉴스에 벌벌 떨면서 코로나 감옥에 갇혀 지내는 것도 지겹고, 3월 9일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요즘 시간 날 때마다 즐겨 듣는 유튜브도 왠지 오늘은 싫증이 났다.
며칠 전 인터넷 신문에서 읽었던 「생애 꼭 한 번은 '석모도'」를 떠올리며 넌지시 집사람에게 물었다.
"여보, 우리 바람 쇠러 갈까? 보문사가 있는 석모도 어때?"
"석모도? 보문사? 예전에 규빈이 엄마 등 세연회 친구들이랑 강화도에서 배 타고 갔던 곳인데···"
"맞아 그곳. 나도 삼사십 년 전에 은행에서 한 번 갔었어. 근데 요즘은 다리가 생겨 석모도까지 차가 들어간다 카네···"
"좋아요. 갑시다. 오늘 가면 언제 와?"
"맛있는 거 좀 먹고, 보문사도 좋지만 낙조가 아름다운 섬이라니 일몰도 봐야 하니까 하룻밤은 자야겠지."
세면도구와 충전기 등 몇 가지만 챙긴 후 애마를 몰았다.
강화도 황청 포구에 들러 바다 냄새를 맡는데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양재동을 출발해 2시간이 안 되는 시간, 100km도 안 달렸는데 완전 딴 세상에 온 느낌이었다.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잔물결 출렁이는 수평선 너머로 봄이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마침내 석모대교를 건너자 도로변 이정표엔 '보문사'란 글자가 나타나고···
강화도를 관통한 다음 2017년 6월 28일 개통된 1,41km의 석모대교를 건너 석모도로···
보문사 입구의 상가건물에 위치한 '삼보 식당'이란 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
푸짐하게 나오는 간장게장과 밴댕이 무침의 맛에 집사람은 탁월한 선택이었다며 감탄을 연발하고···
-보문사-
대한불교 조계종 직영사찰로서,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 영지(觀音靈地: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 중의 한 곳으로 창건에는 다음과 같은 연기 설화(緣起說話)가 전한다. 635년(선덕여왕 4) 4월, 석모도에 살던 한 어부가 바닷속에 그물을 던졌더니 인형 비슷한 돌덩이 22개가 함께 올라왔다. 실망한 어부는 돌덩이들을 즉시 바다로 던져 버리고 다시 그물을 쳤지만 역시 건져 올린 것은 돌덩이였으므로 다시 바다에 던졌다. 그날 밤, 어부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귀중한 것을 바다에 두 번씩이나 던졌다고 책망하면서, 내일 다시 돌덩이를 건지거든 명산에 잘 봉안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다음날 22개의 돌덩이를 건져 올린 어부는 노승이 일러준 대로 낙가산으로 이들을 옮겼으나 현재의 석굴 부근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돌이 무거워져서 더 이상은 나아갈 수 없었으므로 “바로 이곳이 영장(靈場)이구나.” 하고는 굴 안에 단(壇)을 모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신라시대의 역사는 자세히 전하지 않으나, 고려 초기에 금강산 보덕굴(普德窟)에서 관음 진신(觀音眞身)을 친견한 회정(懷正)이 이곳에 와서 불상을 살펴보니, 가운데 좌상은 석가모니불, 좌보처는 미륵보살, 우보처는 제화 갈라 보살이었고, 나머지는 18 나한상과 송자 관음이었다. 회정은 이 22 존 중 삼존불과 18 나한은 굴 속에 모시고 송자 관음은 따로 관음전을 지어서 봉안한 다음 이 절을 낙가산 보문사라고 하였다.
우리 천아(정원준), 보송이(송은규), 다솜이(정세은)가 지혜롭고
자비로우며 건강하고 긍정적인 행복한 어린이 되길 두 손 모읍니다.
-2022. 1. 29. 외할비 외할미-
정성을 다해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는 마애관음좌상
무슨 소원이든 모두 들어줄 것 같은 자애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손주들의 건강과 가족들의 행복 등,
빌고 싶은 소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한 가지 소원만을 기도해야 이루어진다고 하기에 다른 욕심은
다 내려놓고 오직 온 세상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코로나19의 소멸'을 빌었다.
누워계신 모습이 더없이 평온해 보이는 와불이었다. 너비(신장) 13.5m, 높이 2m.
1980년에 시작해 2009년에 완성했다니 근 30년이나 걸린 대작이다. 이 부처님의 체중은 얼마나 될까?
수 백 톤은 될 텐데···, 단단하기로 소문난 화강암을 이토록 아름답고 사실적으로 다듬자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집사람과 함께 와불의 둘레를 세 바퀴 돌면서 원준, 은규, 세은이를 비롯한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사그라들기는커녕 날로 기승을 더해가는 코로나의 소멸을 빌고 또 빌었다.
'노을 내리는 아름다운 집'이란 이름이 잘 어울릴 것 같아 창가에 자리를 잡았지만
펜션 건물과 전깃줄 등이 시야를 가리고 있어 따끈한 라떼 커피만 한 잔씩 마시고는 일어섰다.
그러곤 석모도 유일의 해수욕장인 민머루 해수욕장으로 G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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