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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 여행, 등산...

가을산에 핀 봄꽃 한 송이

2020. 9. 26. 토요일

어느덧 주말 일과처럼 되어 버린 산행을 위해 집을 나섰다.

청계산?

구룡산?

우면산?

어느 산을 오를까?

청계산은 최근 연이어 서너 번을 올랐으니 오늘은 구룡산이 낫겠다 싶어 구룡산 쪽으로 향하던 중 갑자기 지난 일요일 내가 청계산 산행을 나설 때 집사람이 내게 돌아오는 길에 청계산 기슭 노지에서 키운 애호박 한두 개 사 오라는 부탁을 했었지만 양재동 화물터미널 쪽으로 하산하느라 애호박을 사지 못했던 일이 떠올라 오늘은 호박을 꼭 사리라 마음먹고는 방향을 청계산으로 바꾸기로 하곤 옛골로 가는 4432번 버스를 탔다.

 

옛골 입구의 어느 조경원에 있는 멋진 소나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형(樹形)으로 자라고 있어 너무 아름답다.

 

오를 때마다 피톤치드를 듬뿍 내뿜어 주는 청계산 소나무들

피톤치드(phytoncide)는 식물이 자신의 생존을 어렵게 만드는 박테리아, 곰팡이, 해충을 퇴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생산하는 살생 효능을 가진 휘발성 유기 화합물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식물성 살생 물질'에

해당하는 피톤치드는 '식물의'를 뜻하는 'phyton'과 '죽이다'를 뜻하는 'cide'의 합성어로 1937년

러시아 레닌그라드 대학교의 생화학자 보리스 토킨(Boris P. Tokin)이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마늘에 포함된 알리신(allicin)도 대표적인 피톤치드.

[네이버 지식백과] 피톤치드 [phytoncide] (화학 백과)

 

그런데 청계산 곳곳에 이런 하얀 무더기들이 늘어나고 있다.

재천충으로 죽은 소나무를 방제처리래 묻은 소나무 무덤이란다.

예전에는 녹색 덮개의 무덤이더만 바뀐 모양이다.

 

그렇잖아도 많은 학자들은 심각한 기후 변화로 금세기 말에는

한반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소나무들이 사라질 거라는 예측들을 하던데

이러다 오래지 않아 영영 소나무를 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다.

 

중턱쯤에 다 달았을 때 모습을 드러낸 꽃 한 송이.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철쭉, 틀림없는 철쭉꽃이었다. 4,5월에 피는 철쭉이 곧 단풍옷으로 갈아입는 9월 하순의 가을산에서 활짝 피다니··· 무척 신기하면서도 한 송이밖에 없어 조금은 외로워 보였다. 한참 동안 꽃을 살피며 사진 몇 장을 찍고는 물이나 한 모금 마실 요량으로 나무 등걸에 앉아 있는데 뒤따라 오던 두 중년 여인이 꽃 앞에 멈추어 섰다.

그러곤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런 대화처럼 보였다.

"와! 철쭉꽃이 피었네. 지금 보니 더 예쁘다."

"철쭉은 봄에 피는데, 지금 폈네. 왜 가을에 피었을까?"

"코로나에 지친 우리를 응원하러 왔나 보다. 지금은 힘들지만 조금만 더 힘내라고···"

"맞아. 자신들이 만발하는 내년 4,5월쯤에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필 테니 힘내라 응원하러 왔겠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대화였을 것 같았다.

여인들이 자리를 뜬 뒤 잠시 후 남성들이 걸음을 멈추더니 꽃을 바라보았다.

배낭을 멘 채 스틱을 든 모습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세 남성들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라가 미쳐가니까 꽃나무들도 안 미치곤 못 견디나 봐. 이 가을에 웬 철쭉꽃이야?"

"그러게 말이야. 철면피 암수 두 마리를 연이어 장관 자리에 앉히는 통에 나라가 절단 나고 있잖아."

"그뿐이면 다행이게···, 이게 어디 나라냐? 나라가 미쳤는지···, 나라님이 미쳤는지···,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그러면서 한 물처럼 출렁이던 우리 국민들이 '십계'란 영화에서 바닷물이 양쪽으로 갈라지듯 최근 두 물로 쪼개고 있는 某 장관 아들의 군생활과 관련된 비리 의혹은 잠시 접어 두고는 어제오늘 매스컴을 달구고 있는 악몽 같은 사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하긴 그럴 만하다 싶었다. 며칠 전, 어업지도선을 탄 채 연평도 부근에서 나랏일을 하던 공무원이 바다에 빠져 북한 지역으로 표류하자 북한군이 총살해서는 시신에 기름까지 부어 불에 태운 후 버린 사건이 있었다. 이런 천인공노할 뉴스와 함께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실종 진즉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나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글들이 온 매스컴을 도배했다. 그런데도 국방부 등 대북 관계기관에서는 북한에 경고 또는 그들의 만행을 규탄하기는커녕 핫라인 등 북한과의 모든 소통 수단이 단절된 상태라 구조를 요청할 방법이 없다 발뺌할 뿐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가 자진 월북하다 그랬다는 둥 모든 책임을 피해자에게 뒤집어 씌워 명예를 더럽히는 2차 피해를 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우리 국민들이 어찌 분노하지 않으랴 싶다.  더구나 나라를 완전히 말아먹지 못해 안달인 위정자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종전선언을 해야 하다는 둥, 북한에 인도적인 지원은 해야 한다는 둥, 금강산 등의 개별관광은 허용해야 한다는 둥 여전히 친북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니 이번 만행도 만행이지만 우리 아들딸과 손주들이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의 앞날은 어떻게 되려나···, 걱정이 태산이다.

 

하늘에서 떨어졌을까? 아니면 땅에서 솟았을까?

모든 소통 수단이 끊어져 실종된 공무원의 구조를 요청할 방법이 전혀 없다던 당국.

우리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른 게 있으니 바로 김정은이 보냈다는 '사과 친서'다.

그런데도 어떻게 왔을까? 청와대에서 불쑥 내놓은 김정은의 사과가 담겼다는 종이 한 장. 정말 우습다.

고위 탈북자들을 비롯해 많은 북한 전문가들조차 공개된 사과문이 이상하단다. 정작 북한에서는 쓰지 않는 낱말과 표현들이 적지 않게 들어있는 점 등을 지적하면서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주장이다. 설령 진짜라 해도 그렇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더 큰 문제는 달랑 "귀측에 미안함을 전합니다."란 뜬금없는 김정은의 꼴같잖은 전통문 하나에 군 최고통수권자는 감사를 표하는 듯하고, 집권 여당 더불어민주당은 자신들이 먼저 제안해 국회 상임위원회까지 통과시킨 '대북 규탄 결의안'조차 이젠 채택하지 않으려 하고 있으니···.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이완용도 이들만큼은 나라 걱정을 하지 않지는 않았으리 싶었다. 게다가 진정성이라곤 눈을 닦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 사과문임에도 마치 김정은으로부터 석고대죄라도 받은 양 우쭐대는 높은 자리의 위정자와 그들을 따르는 여론몰이 좌파 무리들을 생각할 땐 나라를 망치는 좀벌레가 따로 없다 싶었다. 고모부를 기관총으로 쏴 죽이고, 공항에서 이복형을 무참히 살해한 김정은을 '계몽군주'라 칭송하는 골 빈 전직 장관마저 나타났으니 우리나라는 참 희한한 나라다 싶었다. 또 어쩌면 남한의 들끓는 여론이 하도 귀찮아서 부하들에게 "대충 한 마디 써서 보내." 하고 내뱉었을지도 모르는 김정은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하룻밤 承恩 입은 궁녀처럼 감읍해하는 위정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무리의 꼴불견을 보고 들어야 하는 요즘의 내 심사도 가을산에 핀 봄꽃을 보고 미쳤냐며 핏대를 올리던 남성 등산객 세 분과 별반 다르지 않겠다 싶었다.

 

봄꽃이 가을산에 핀 까닭은 무엇일까?

 

죽은 모습마저 우아한 소나무

 

이수봉의 오아시스

맑고 파란 하늘이 일품인 오늘은 목마른 자들이 몰려들었으니 오늘이 대목

적잖은 등산객들이 몰려들어 주거니 받거니 情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아 나도 한 잔··· 

함께 情 나눌 사람은 없었지만 한 잔의 막걸리는 그대로 꿀맛이었다.

바로 이천 원의 행복.

 

이수봉을 찍었으니 이제 하산···

그런데 바로 옛골로 내려가자니 총 78km밖에 못 걷는 산행이라 좀 아쉽고

그렇다고 또 매봉을 거쳐 원터골로 내려가자니 거리는 좋지만 애호박을 살 수 없으니··· 

진퇴양난일 때 눈에 띈 이정표 하나가 나의 산행을 리드했다.

 

누워서 자라는 모습이 오히려 편해 보이는 아름드리 老松

 

이수봉에서 왕복 3km인 국사봉으로 GoGo

 

국사봉(國思峰)

국사봉(國思峰)은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지자 청계산에 은거하던

고려 충신 조윤(趙閏)이 멸망한 나라를 생각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길래

나는 이곳에 서서 잠시 관악산 아래에 있는 과천 정부종합청사를 바라보았다.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엔 나라를 잃는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

趙胤처럼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 멸망한 祖國을 그리워하면서

나라 잃은 설움을 토하는 후손이 없기를 소망하면서···

 

 

잦은 비가 청계산 계곡에 만든 귀여운 폭포에서 맨발의 피로를 말끔히 씻고···

 

산을 다 내려와서야 눈에 띈 할머니의 야채 노점

 

2개가 3,000원이란다.

동글동글하게 잘 생긴 게 얼마나 맛나 보이던지 요걸 두 개로···

배낭에서 이 애호박 2개를 꺼내자 집사람은 두 손으로 애호박을 감싸면서

아주 잘 샀다고 칭찬을 하더니 이내 촉촉이 젖은 소리로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께서 봄부터 부추 달래 등 갖가지 야채와 과일들을 택배로 보내주셨던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가을 이맘때쯤 오는 택배 상자에는 참기름 한두 병,

들기름 몇 병에 어김없이 요렇게 잘 생기고 맛나게 생긴 애호박

두세 개도 들어 있었는데 어머님이 보고 싶다."

 

우리 부부가 11월 11일에 결혼한 때문인지 1 네 개.

즉 1111는 우리 부부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는 숫자이다.

그런데 오늘 내가 걸은 거리가 딱 11.11km라니···

특별함이 있는 산행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청계산 11km를 걷는 내내

내 뇌리엔 한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가을산에 봄꽃이 핀 까닭은 무엇일까?

코로나에 지친 우리들을 응원하러 왔을까?

한번 잘못 뽑은 위정자들 때문에 생긴,

대한민국 앞날의 어두움을 예고하는

변괴는 제발 아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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