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20. 일요일
이른 아침
식사 준비를 하던 집사람이 물었다.
"오늘 백일기도 입재식 하는 날인데 같이 하실래요?"
그러고는 즉문즉설로 유명한 법륜스님께서 이끄시는 정토회에서 세운 원을 달성하기 위해서 萬日 동안 꾸준히 하자고 시작했다는 만일결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괴로움을 없는 사람, 즉 해탈과 열반을 성취하는 것이 목표이고, 사회적으론 부처님의 좋은 법을 우리 사회에 널리 전해서 힘들어하다가도 불법을 만나 삶의 변화를 이루게 해 주자는 것과 세계평화를 성취하는 것이 만일결사의 목표란다.
100일마다 갖는 100일 기도 입재식이니 100회를 해야 달성되는 만일결사.
이십 수년 전에 시작해 오늘은 10-3차 입재식으로 스님의 법문 등 행사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다.
1년에 서너 번, 작년까지는 늘 전국에서 참석하는 수천 명의 불자들 편의를 위해 주로 김천 또는 대전 등 서울과 부산의 중간쯤에 있는 체육관이나 강당을 빌려 입재식을 했었지만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세 번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되는데 이번 10-3차엔 전국 각지의 불자는 물론 해외에 거주하는 불자들까지 온라인 법회에 참여해 만 명을 초과할 것 같단다.
즉, 제10차 천일결사 중 3차 백일기도 입재식으로 10,000일을 1,000일 10개로 나누어 1부터 10의 앞 번호를 붙인 후, 1,000일을 또 100일씩 10개로 나누어 뒤 번호를 붙였으니 10-3은 100회 중 93번째 입재식이라는 의미였다.
그럼 남은 횟수는 7회. 2022년 末이면 30년 가까이 걸리는 만일결사가 완성된다는 게 아닌가.
30년, 10,000명 참여.
와우! 정말 대단하다 싶었다.
하지만 나는···
입재식 참여를 다음으로 미루곤 어젯밤 마음먹은 대로 청계산에 오를 작정으로 배낭을 챙겼다.
오랜만의 청을 거절한 미안함에 식사 후 조용히 배낭을 둘러메는 내게 집사람이 말했다.
"오실 때 애호박 하나 사 오세요."
"카드만 있고 현금이 없는데···"
그러자 집사람이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주었다.
최근 이수봉을 산행할 땐 하산길에 지나치는 산기슭의 밭 입구에서 직접 농사지었다며 농산물을 파는 할머니들로부터 고구마 줄기랑 애호박 등을 몇 번 사 갔을 때 노지에서 키운 것이라 그런지 마트에서 산 애호박보다 훨씬 맛있다더니···
만 원짜리를 꼬깃꼬깃 접어 핸드폰 케이스의 주머니에 넣었다.
하지만 지난 주말에도 사돈들과 청계산에 올랐었지만 그땐 매봉에만 다녀오느라 별로 많이 못 걸었기에 오늘은 좀 충분히 걸을 작정이었는데 애호박을 사려면 이수봉에만 올랐다가 다시 옛골로 내려와야 하는데 싶어 조금은 못마땅했다.
옛골에 도착해 청계산에 들어서면서 등산화를 벗었다.
올 들어 자주 올라온 덕에 길이 훤했다.
며칠 전과는 달리 바람이 조금은 추운 듯 느껴져 바람막이를 벗기 싫었다.
하지만 맨발을 통해 전해 오는 차가운 지기는 온몸과 정신을 바짝 들게 했으니 ···
이수봉 가까이 다다르자
이곳에 올 때마다 들리던 목탁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도 엄마 따라 고향의 불령사에 몇 번은 갔었고, 집사람 따라 해마다 사월초파일 하루는 정토회에
가고 있으니 반쯤은 佛子라 할 수 있는데···, 게다가 오늘은 백일기도 입재식에 참여하자는
집사람의 부탁도 못 들어줬는데···, 지난번 몇 번이나 작은 지폐가 없어 시주를
못 했는데 싶어 집사람이 애호박 사 오라며 준 지폐를 불전함에 넣고 말았다.
시주하고 돌아서는 마음이 편했다.
현금이 없으니 애호박을 살 수 없다 싶었다.
애호박을 살 수 없으니 옛골로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 싶었다.
조선 연산군 때 유학자 정여창 선생이 스승 김종직 선생이 무오사화로 부관참시당하였다는 소식에
은거지인 금정수(하늘샘)로 가기 위해 피(血)눈물을 흘리며(泣) 넘어 다녔다는 고개다. 이수봉은 정여창 선생이
스승 김종직과 벗 김굉필이 연루된 무오사화 변고를 예견하고, 한 때 이 산에 은거하여 생명의 위기를
두 번이나 넘겼다고 하여 후학인 청구 선생이 이수봉이라 명명하였다고 함.
바로 앞에 보이는 곳이 과천 경마장.
코로나로 인해 경마가 중단된 탓에 주말이면 함성이 가득하던 여기도 텅텅 비었다.
이수봉-석기봉-혈읍재-매봉-매바위-옥녀봉-화물터미널-시민의숲역
5시간 47분, 13.29km. 엉겁결에 한 시주 덕분에 실컷 걸었던 날
종주 코스를 걸으면서 청계산의 유래와 고려末 학자 목은 이색의 시조를 감상하고,
망경대에 얽힌 조선初 고려 충신 조윤(趙胤) 이야기와 혈읍재에 얽힌 조선 연산군 때의
정여창 선생 이야기를 읽고, 1982년 청계산 수송기 추락사고로 목숨을 잃은
특전용사 53명의 이야기까지 읽었더니 오늘은
청계산이란 장편 한 권을 읽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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