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16. 일요일
알람소리에 눈을 떴지만 컨디션이 영 별로였다.
근 6개월 만에 문을 연 헬스장에서 2주일 동안 열심히 했던 운동이 무리였는지 아니면 요 며칠 동안 문이란 문은 다 열어젖히곤 밤새 선풍기를 켜놓은 채 잠을 자서 그런지 알 순 없지만 온몸이 찌뿌둥할 뿐 아니라 열까지 좀 있는 듯했다.
한참을 침대에서 뒹굴었다.
오늘은 이대로 푹 쉬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숙제를 하루라도 빨리 마치고 싶은 마음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옷을 갈아 입고는 집사람이 차려준 과일과 빵, 떡 등으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커피까지 마신 후 밤새 냉장고에 얼려 두었던 생수와 오이를 썰어 담은 비닐을 배낭에 넣고 있는데 "쨍그랑∼" 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그릇 하나가 산산조각 나는 게 보였다. 운동하러 가는 내게 한 가지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 냉장고에서 왕자두를 꺼내던 집사람이 코렐 접시를 떨어뜨린 것이다. '아차!' 싶었다. 순간 혹시 집사람이 '아침에 그릇 깨진 것을 불길한 일이 일어날 암시'로 여기면서 오늘은 먼 곳으로 운동 가지 말고 종일 집에만 박혀 있으라면 어쩌나 걱정되어 서둘러 집을 나섰다.
오늘은 서울둘레길 마지막날.
신분당선 → 2호선 → 8호선 → 5호선
거의 8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한 광나루역
54일이란 역대 가장 길었던 장마가 어젯밤 끝났다지만 하늘엔 떠나기가 서운했던지 옅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광진교 북단 초입에서 둘레길 도보자를 기다리는 스탬프 부스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과강동구 천호동을 잇는 광진교.
1935년 준공 되었으며 한강을 건너는 다리로는 한강대교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다리.
6.25전쟁 당시 북한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폭파 되었다가 1952년 미군에 의해 복구 되었으나
시설물의 노후 등으로 1994년 철거로 모두 사라졌다가 2003년 다시 세워졌는데
한강의 다른 다리들과는 달리
많은 종류의 꽃나무 등 수목들로 가득한 녹지보행로가 조성 되어 있어 경관이 남달랐다.
광진교에서 바라본 한강
최근에 쏟아진 장맛비에 바다처럼 넓어진 한강의 누런 황톳물이 옛추억들을 소환했으니···
내가 여섯 살이던 1959년 9월, 추석을 몇 일 앞둔 날 어머어머한 태풍, 사라호 태풍이 우리 고향을 덮쳤다.
경북 청도의 산동지방에서 가장 넓다는 마을 앞 들판 모두가 물에 잠겨 바다처럼 파도가 일렁이고 동네 한복판까지 물이 든데다 흙탕물에 떠내려가는 소, 돼지 등 가축은 물론 초가지붕마저 있었으니 그때부터 흙탕물은 내게 두려움이었다.
또 오십수 년 전, 고향에서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5,6학년 때쯤의 일이었다.
여름만 되면 또래 친구들과 마을 앞 넓은 들판 너머 있는 동창천이란 낙동강 지류에서 살다시피 했었는데
우리가 멱을 감으며 주로 노는 냇가는 '산반내'란 이름으로 불리는 곳으로 흐르던 냇물이 얼마간 머물러
소(沼)와 비슷해 수심은 어른이 두 손을 치켜들고도 푹 잠길 만큼 깊고 강폭은 50m를 훌쩍 넘었다.
적지 않은 장맛비가 내렸던 그해 여름, 그날도 대여섯 명의 친구들과 산반내로 갔다.
누런 황톳물이 무섭게 흐르던 강엔 며칠 전보다 덜 흐린 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강물은 여전히 거친데다 강폭이 적어도 몇 십 미터는 더 넓어져 있었다.
한 친구가 말했다.
"야, 우리 헤엄쳐 건너가자."
나는 무서웠다. 하지만···
그 말에 반대하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물살 따라 대각선으로 건너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위로 조금 올라가 물에 뛰어들었다.
어릴 때부터 여름마다 냇가에서 살다시피 한 덕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헤엄이야 가능했지만
할 줄 아는 수영이라곤 기껏[해야 개헤엄과 배영 정도라 중간쯤을 지나자 힘이 빠지기시작했다.
친구들은 거의 다 건너가고 있었지만 나는 죽을 힘을 다해도 통 앞으로 가지 않았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다. 건너간 친구들이 조금만 더 힘내라고 소리를 쳤다.
몇 번 팔을 휘저으며 몇 발자국은 나갔지만 더는 힘이 없었다.
좀 떠내려가다 섰다. 엄지발가락 끝이 바닥에 겨우 닿았다.
그제야 살았다 싶었다.
만약 그때 강폭이 1m만 더 넓었어도···
그때 그곳의 수심이 10cm만 더 깊었어도···
한강의 누런 황톳물은 보기만 해도 무서웠다.
한강을 따라 조성된 한강변길
내가 서울둘레길을 완주하는 마지막 구간은 광나루역에서 수서역까지의 제3코스로
둘레길 안내지도에 따르면 난이도는 '下'이지만, 26.1km의 거리로 예상 소요시간은 9시간이란다.
당초 내가 마지막 코스를 걸을 때는 이륙산악회의 몇 친구랑 입행 동기 중 한 친구가 함께
걷기로 했었다. 하지만 내가 갑작스레 3일 간의 황금연휴 중 한가운데의 날인 오늘로 잡은데다
지난 일요일이 정기 산행일이었던 이륙산악회의 산행일정이 며칠간 계속된 폭우 때문에
지난 일요일에서 오늘로 변경된 탓과 독실한 불자인 은행 친구는 부인과 함께
사찰로 백중기도를 가느라 동행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만사 OK!
서울에서 고향 가는 길, 속초에서 부산 가는 해파랑길 등
숱한 도보여행을 하면서 내가 몸소 체험한 바,
도보여행은 둘도 좋고 셋도 좋지만
더 좋은 건 혼자.
암사동 유적지
몇 십 년을 살면서도 처음 지나치는 곳이 둘러보고 샆었지만 코로나19 확진자의 수도권 급증 탓에
오늘부터 거리두기 2단게가 시행되는 바람에 모두 출입이 통제 되었다기에 사진만 찍었다.
훗날 원준, 은규, 세은이를 데리고 한번 다녀가리라 마음먹으면서 지나쳤다.
어느 산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돌처럼 보였는데 고인돌이란다.
어랍쇼!
시간을 보기위해 왼손목을 들었는데 손목이 휑했다.
은규 아비로부터 선물로 받은 스마트 밴드가 없었다. 순간 '집에 두고 왔나' 싶었다.
그런데 한참 전 10,000보 걸었음을 알리는 진동뿐 아니라 메세지 진동을 느끼지 않았던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어디에서 빠졌는지 떠오르는 단초는 전혀 없었다.
스마트폰의 밴드앱에 들어가 걸음 수를 확인했더니 11,800여 보에 머물러 있고
폰에서 만보기 역할을 하는 캐시워크앱에서는 19,000여 보가 찍혀 있었다.
그렇다면 약 7,000 보 전쯤에서 밴드가 풀려 떨어졌다는 게 아닌가.
7,000여 보면 3∼4km의 거리니까 왕복 6∼8km.
찾으러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 뿐 아니라 찾는다는 보장도 없으니 어쩌랴.
'이게 오늘 아침에 깨진 접시의 암시가 바로 이거였구나.'
생각을 바꾸니 아쉬움이 덜했다.
고덕산과 일자산에서 만난 글들
보라빛 꽃을 활짝 피운 맥문동이 등산객을 반기는 일자산 정상 길
일자산 정상의 해맞이 광장에 있는 둔촌 선생의 가르침
讀書可以悅親心 독서가이열친심
勉爾孜孜惜寸陰 면이자자석촌음
老矣無能徒自悔 노의무능도자회
頭邊歲月苦駸駸 두변세월고침침
遺子滿籯金 유자만영금
不如敎一經 불여일교경
此言雖談薄 차언수담박
爲爾告丁寧 위이고정녕
독서는 어버이의 마음을 기쁘게 하니
시간을 아껴서 부지런히 공부하라.
늙어서 무능하면 공연히 후회만 하게 되니
머리맡의 세월은 괴롭도록 빠르기만 하느니라.
자손에게 금을 광주리 가득 준다해도
경서 한 권 가르치는 것만 못하니라.
이 말은 비록 쉬운 말이나
너희들을 위해서 간곡히 일러둔다.
일자산 하남쪽 기슭의 공동묘지
꽤 넓은 면적에 수많은 이들이 잠들어 있건만 망우리 공동묘지와 영 딴판의 모습이었다.
묻힌 사람들 중 명망가들이 없어서일까? 작은 봉분마다 아담한 비석을 앞세우고 있지만 칡덩굴이
무덤을 온통 덮고 있어 어느 게 무덤인지 어디가 맨땅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관리가 엉망이었다.
이 무덤들 모두가 후손들이 없지는 않을 텐데···
그런데 무덤과 무덤 사이에 웬만큼 넓이의 땅이 있으면 어김없이 참깨, 고구마, 토란 등
갖가지의 농작물이 자라고 있었다. 아마도 인근의 주민들이 채전밭처럼 이용하는 듯 보였다.
공동묘지 무덤과 무덤 사이에서 농작물을 키우다니 이런 경우가 또 있을까 싶었다
아무리 궁해도, 아무리 농사를 짓고 싶어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몇 해 전 언젠가 한강변을 걷던 중 오폐수로 인해 하얀 거품이 눈처럼 쌓여 있는
탄천과 한강의 합류 지점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강태공들을 바라보던 중
문득 '이곳에서 잡은 물고기를 자신들이 먹을까? 시장에 내다 팔까?'
하는 강한 의문이 생기더만 오늘은 이런 의문이 생겼다.
'여기서 나온 먹거리를 자신들이 먹을까? 아니면 내다 팔까?'
일찍 나서느라 김밥을 준비하지 못해 점심은 굶을 줄 알았는데
서하남에서 순대국집을 만난 덕분에 맛난 순대국으로 몸보신을 할 수 있었으니 Good!
조롱박, 여주 그리고 작두콩까지 주렁주렁 달린 성내천 산책길.
보기만 해도 시원한데 초록빛 속을 걸으며 초록 냄새를 맘껏 즐길 수 있어 더 좋았다.
서울 외곽순환도로변의 메타세콰이어 산책길
장지천을 걸어 탄천을 만나고···
탄천의 광평교를 건너 만난
서울둘레길 완주에 필요한 마지막 스탬프 부스
코스 중간 중간에서 스탬프를 하나씩 찍으며
28개를 쌓는 재미는 둘레길을 걷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잠시의 휴식을 포함해 근 9시간 동안 28여 km를 걸어 도착한 수서역.
지하철 수서역이 눈에 띄자마자 숨죽여 있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리는 듯했다.
간담까지 시원해지는 얼음물을 한 사발 들이킨 다음 찬물로 땀에 절은 몸을 씻은 후
선풍기를 틀어 놓은 채 한 숨 푹 자고 싶은 마음이 꿀뚝처럼 솟았다.
코로나19 확진자의 급증으로 2월 하순께부터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내가 운동하는 구립 스포츠센터가 휴관에 들어 감에 따라 나는 주중에는 매일같이 양재천변을 걸었지만 주말엔 청계산, 구룡산 등 인근의 산에 오르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4월 18일이었다. 집사람이 손주들에게 먹일 낙지랑 생선을 사러 가락동 수산시장에 가자고 했다. 그 말에 회도 뜨고 낙지도 살겸 구룡산과 대모산을 넘어 가락동 수산시장으로 향하면서 시작한 서울둘레길 도보.
총 8개 코스로 이루어진 서울둘레길을 10개의 구간으로 나누어 걸었지만 4월 18일에 시작해 오늘 8월 16일에서야 마쳤으니 정확히 4개월이나 걸린 셈이다. 평일엔 초등 1학년이 된 은규를 돌보고, 초등 4학년인 원준이의 공부를 살펴야 하는데다 매달 둘째 일요일과 넷째 일요일엔 이륙산악회의 산행이 있고, 은행 동우회의 산행에도 매달 한 번씩 참석하다보니 둘레길엔 기껏해야 한 달에 두세 번밖에 나설 수 없었으니 4개월은 최선이었다 싶었다.
서울둘레길은 생각보다 좋았다.
서울 외곽을 한 바퀴 돌도록 조성된 157km의 서울둘레길.
코스별 출발 지점과 도착지점이 지하철역과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나이 드신 분들이 구간을 보다 짧게 잘라서 걷는다 할지라도 중간 중간의 지점에서 지하철역과 쉬이 연결할 수 있으니 이처럼 접근성 좋은 둘레길이 지구촌에 몇 개나 될까 싶었다. 둘레길이 관악산, 북한산, 수락산 등 호락호락하지 않은 산들을 지나도록 조성 되어 있지만 산의 頂上이 아닌 산자락을 휘돌면서 걷도록 되어 있어 웬만한 건강이라면 걷기에 큰 무리가 없겠다 싶었다. 게다가 안양천, 불광천, 성내천, 탄천 등 곳곳의 하천은 지자체에서 얼마나 정성껏 가꾸고 있는지 보기만 해도 마음이 든든하고 상쾌할 지경이었다. 계절에 맞춘 꽃들이 만발했을 뿐 아니라 천변에는 갖가지 운동시설이 잘 만들어져 있어 이런 체육시설이 서울시민들의 건강 증진에 많은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하지만 같은 서울에 살면서, 또 적잖은 세금을 내면서도 어떤 사람은 이런 편의시설들을 최대한 잘 이용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전혀 이용하지 않고 있으니···
하지만 아쉬움도 없지는 않았다.
마을을 통과하는 구간이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은 산과 산을 잇는 통로의 역할을 하기에 나름 괜찮았다. 그런데 북한산 코스 중 평창동 주택가를 관통하는 길은 달랐다. 아스팔트길을 걸어야 하는 구간은 너무 길었다. 북한산 자락을 바로 옆에 두고 아스팔트를 밟자니 얼마나 지겹고 지루하던지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다음에 걸을 때는 이 길이 북한산 안으로 들어가 있었으면 금상첨화겠다 싶었다.
서울둘레길 완주
숙제를 마치고 나니 시원하다.
그런데 시원함이 섭섭함을 데리고 왔다.
뿌듯함이 앞서긴 했지만 목표가 사라졌으니 서운함도 적지 않다.
요즘 유행하는 건배사가 "'누죽걸산"이라 던데···
다음은 어디를 걸을까?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고민이 찾아든다.
한없이 걷고 싶다는···, 맨발로 걷고 또 걷고 싶다는···
서울둘레길 전체를 12구간으로 나누어 한 달에 한 구간씩 걸어 일 년에 완주하는 도전은 어떨까?
"☞ 누죽걸산 → 누워 있으면 죽고, 걸으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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