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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 여행, 등산...

청계산 한 바퀴

2020. 9. 5. 토요일

태풍 마이삭이 다녀간 하늘이 어제는 파란 속살을 다 드러내고 있더니 

너무 드러냈던 속살이 부끄러웠을까? 오늘은 보일락 말락한 속살을 속치마를 입듯 얇은 흰 구름으로 가리고 있었다.

8시 남짓한 시간의 청계산 옛골

한적해서 좋았다.

입구에서 등산화와 양말을 벗어 배낭에 넣고는 이수봉을 향하여 GoGo

  

역대급의 강풍으로 남해안과 부산을 거친 다음 동해안을 따라

북으로 향했다는 태풍 마이삭이 청계산 곳곳에도 이처럼 흔적을 남겼다.

 

근데, 낼모레면 '하이선'이란 더 강한 태풍 온단다.

예상 경로는 동해를 따라 북쪽으로 향해 한반도를 직접 강타하지는 않는다지만

초특급의 태풍이라 한반도 전체에 어마무시한 비바람을 예상하던데

제발 큰 피해가 없기를 기도하며 걸었다.

 

언제 봐도 아름운 청계산 소나무들.

소나무의 곡선은 느림의 미학마저 담고 있는 것 같아 볼 때마다 마음이 포근해진다. 

 

소나무는 좋겠다.

근 60년 전, 국민학교 1학년이었던 나처럼 가슴에 명찰을 달고 있다.

내 외손자 은규는 지난 3월에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5월 중순부터 겨우 일주일에 한 번씩 등교를 하다가

코로나가 더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한 달만에 다시 등교가 중단되었는데···

  

해발 616m로 청계산의 主峯인 망경대

용틀임하면서 하늘로 솟는 청계산 소나무

 

매봉에는 등산객이 엄청 많았다.

정상 표시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 몇 십미터는 될 듯했다.

코로나로 생긴 사회적거리두기가 오래 지속되어 갈 곳을 잃어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접근하기 쉬운 산을 찾는 모양이다. 하기사 산만큼 좋은 곳은 없을 것 같다.

 

11km 넘는 산길을 맨발로 걷느라 오늘도 고생한 내 두 발

시원한 청계산 계곡물에 발을 담그자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지만

올 들어 한 번도 제 색깔을 갖지 못한 둘째 발가락의 발톱들이 눈에 쏙 들어왔다.

나는 어릴 때부터 둘째 발가락이 엄지발가락보다 조금 길었다.

그래서 내 발가락을 본 많은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보다 엄마가 오래 사시겠다."

 

그런데 오늘처럼 맨발로 산길을 걷다보면 한두 번쯤 돌부리 또는

나무뿌리를 차게 되는데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꼭, 살짝 앞선 둘째발가락에 제일 먼저 닿게 되는 탓에···

아버지 떠나신 후 3년밖에 더 우리 곁에 계시지 못한 어머니가

해가 가면 갈수록 더 커지는 그리움에 내 마음이 늘 시퍼렇게 멍들어 있듯

항상 검붉게 멍들어 있는 둘째 발가락의 발톱이 애처롭다.

   

약 6시간, 12km

올 들어 너댓 번은 족히 올랐었고, 지난 주에는 올랐다 하산하던 중

폭우를 만나 홀딱 젖었어야 했던 이수봉뿐 아니라 석기봉, 망경대, 매봉,

옥녀봉까지 거쳤더니 마치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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