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22. 토요일
가을이 성큼 다가온 듯한 날이었다.
밤마다 틀고 잤던 선풍기를 틀지 않고도 잠을 푹 잔 덕분인지 몸이 가뿐했다.
한 시간 삼십 분여의 스트레칭을 마친 후 아침식사까지 끝냈지만 왠지 마음이 허전했다.
7월 말까지만 해도 시간만 나면 혼자서 양재천을 걷거나 서울둘레길을 걸었는데 7월 말에 좋은 소식이 들려오고, 코로나19로 인해 6개월 동안이나 휴관했던 언남문화스포츠센터가 8월 초에 문을 열었다. 그 덕분에 센터의 헬스장에서 2주일 간 열심히 운동을 했건만 최근 수도권에서의 코로나19 확진자의 급증으로 센터의 문은 또다시 꽁꽁 잠기고 말았으니··· 서울둘레길의 완주를 끝낸 데다 언남스포츠센터까지 다시 휴관에 들어갔으니 운동할 의욕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YTN로 채널을 돌렸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현황을 발표하고 있었다.
오늘도 3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했단다.
한두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19가 6개월을 훌쩍 넘기더니 이젠 서울 등 수도권에서의 급증이다.
정말 큰일이다 싶었다. 나도 지금까지 보다 훨씬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번에 다시 휴관에 들어간 스포츠센터의 문이 언제 다시 열릴까 걱정되었다.
스포츠센터의 개장을 기다리느라 운동을 쉬다가는 몸이 먼저 망가지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도 걷기로 마음먹었다.
양재천을 걸을까? 청계산에 오를까?
순간 딱 떠오르는 한 추억.
몇 해 전 속초를 출발해 부산까지 걸었던 해파랑길 도보 때였다.
부산 기장에서 부산역까지의 마지막 구간은 중곡동 사돈과 함께 걸었었는데, 그날 해운대를 지나 광안리 부근을 걷던 중 민락회센터에 들러 먹었던 전어회. 세꼬시처럼 뼈째 썬 전어에 양념된장을 묻힌 후 콩가루를 뿌린 다음 한 잔의 소주와 함께 먹었던 전어회가 얼마나 맛있었던지···, 그때가 떠오르며 갑자기 전어회가 먹고 싶었다.
원준, 은규, 세은이가 좋아하는 갈치도 살 겸 잘 됐다 싶었다.
배낭을 꺼내 챙기자 집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 몸이 불쌍하다. 주인을 잘못 만나 오늘 또 고생이네··· "
염곡사거리 KOICA 인재교육원에서 구룡산 오르는 길
맴맴맴
구룡산에 들어서자 매미소리 우렁차다.
7,8년의 땅속 생활 끝냈지만 갈 날 며칠 안 남았는데
아직도 짝을 못 찾았으니 불쌍해서 우야노···
울음소리 더 애달프다.
구룡산 개암약수터
음용 부적합이라니
마실 순 없고 대신···
죽어서 벌레들에게 제 몸 보시한 참나무
그런 자비로움 때문일까. 썩어가는 몸통의 무늬마저 아름답다.
간간이 빗방울 하나씩 떨어지지만···
오늘 점심은 김가네 참치 김밥 한 줄
그리고 오이 한 개.
우르르 쾅 우르르 쾅
간간이 뇌성만 들려올 뿐 후덥지근하던 공기가 갑자기 서늘해진다 싶더니
이내 쏴아 빗방울을 뿌려대기 시작했는데
이내 폭우로 변했다.
구룡산에 오르면서 진즉 맨발이 된 데다 배낭 속에 든 우의를 꺼내 입었으니 젖을 게 없어 좋았다.
폭우 내리는 산길을 맨발로 걷는 상쾌함과 초록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음률,
그리고 우의에 부딪치는 물방울의 비명은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런데 뜸 들이다 쏟아지는 소나기가 心象 하나를 주었으니
이것은 특별 보너스였다.
-소나기-
코로나에 갇힌 민초들이
불쌍해서 울고 싶었나 보다.
슬픔이 너무 크면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더니···
우르르 쾅 우르르 쾅
잔뜩 찌푸리기만 한 채
가슴 찢으며 울부짖는다.
한바탕 쏟아내면 후련할 텐데···
어느새 내 마음 읽었을까?
후두둑 후두둑
하늘은 금방 눈물 쏟는다.
구룡산을 지나 대모산을 걸을 때였다.
어디에선가 풍기는 고약한 냄새가 내 코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더니 내 앞쪽의 길가에 하얀 스티로폼 박스들이 보였는데
그곳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다가갔더니 정말 그곳의 악취였다.
큰 비닐봉지에 담겨 버려진 김치에서 나는 악취였다.
그런데 그렇게 버려진 김치 봉지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한 곳에 네댓 봉지와 네댓 개의 스티로폼
그런 무더기가 네 곳이나 되었다.
도대체 누가? 왜?
그 많은 것을, 그 무거운 것을 이 먼 산속까지 와서 버렸을까?
부근 나뭇가지에 괴상한 현수막이 하나 걸려 있었는데
사유지가 어떻고···, 토지주가 어떻고···
마침내 하산을 마치고
진흙 마사지에 빗물 족욕까지 잘 한 발을 닦은 후· 등산화를 신고는
가락동 수산시장을 찾아가서는 팔딱팔딱 뛰는 전어 2kg을 산 다음
차례를 기다려 뼈째 회를 뜬 다음
우리 원준, 은규, 세은이가 좋아하는 갈치까지 듬뿍
구룡산과 대모산을 넘어 가락시장에 가느라 4시간 동안 13km를 걸었지만
나도 좋아하지만 먹을 때마다 "아버님도 전어회무침을 엄청 좋아하셨는데···" 하면서
맛나게 먹는 집사람을 떠올리며 전어회를 뜨고, 노릇노릇 잘 구워진 갈치를 맛나게
먹는 외손주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갈치를 푸짐하게 샀더니 마음부자가 되어
5시간 산행의 피로는 눈 녹듯 사라지고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구룡산과 대모산을 걸을 때는 아버지가 그리웠다.
나 어린 시절, 내 고향마을의 어른들 대부분이 그리하셨듯
가을마다 감을 따면 한 바지게 가득 지고 몇 개의 산봉우리를 넘는
삼사십 리의 산길을 걸어 淸道로 가셨다는 내 아버지. 4일, 9일, 14일, 19일, 24일, 29일
닷새에 한 번씩 경북 청도군청 부근에 서는 청도장날이면 한 바지게의 감을 내다 판
돈을 손에 꼭 쥔 채 우리 오 남매에게 먹일 생선 한 가지라도 더 사고 싶어
온 어물전 여기저기 다 다니셨다는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었다.
오늘은 아버지를 닮고 싶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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