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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주들-천아, 보송이, 다솜이..

할아버지와 손자

 

 

작년 말, 많이 춥던 어느날 저녁무렵

원준이랑 한창 재밌게 놀고 있는데 집사람이 야채를 좀 사오길 부탁했다.

바람까지 세찬 날이라 원준도 옷을 단단히 입히고 마스크를 씌워 집을 나서니

제법 어둑어둑하다. 세블럭 정도 떨어진 마트에서 야채랑 과일을 사는데...

그냥있을 원준이가 아니다.

 

야채와 과일에 아이스크림까지 넣어 묵직해진 비닐봉투를 들고

마트를 나와 한참 걷던 원준이가 서초우체국을 지나서는 안아달라고 한다. 

한 손에 야채봉지를 들고, 다른 한 팔로는 원준이를 안고 한참을 걷는데

두툼한 옷차림으로 안겨 있기가 불편했던지 원준이가 용을 써 매달린다.

 

이때, 갑자기 뒤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아이구! 아가야, 할아버지는 아무리 힘들어도 놓치지 않지,할아버지는 팔이 떨어지면 떨어졌지 손자를 절대 놓치지 않는단다."

뒤돌아 보니 내 나이쯤은 되었을 중년남자가 따라오면서 한 말이다.

조금은 정확치 않은 발음이나, 걷는 모습을 봐서는

퇴근길에 어디서 간단히 한 잔을 한 모양인데...

즐거워 보이기 보다는 야간은 시름이 있는 듯한 느낌이다.

 

손자가 있는지 말을 한번 건네볼까 하다가

한 잔 하신 분이라, 걸음만 늦추면서 그냥 앞서 걷는데...  

아저씨는 뒤따라 오면서 또 중얼거리듯 내뱉는다.

"그래 너만 할 때가 제일 좋지... 세상에 무슨 걱정이 있겠나?눈에 넣어도 아파하지 않을 할아버지가 있는데...그래, 나도 그런 때가 있었는데..."

 

갑자기

『나도 그런 때?』

란 구절이 가슴에 꽂힌다.

자신이 할아버지 품에 안겼던 아기 때를 말하는지

자신이 손자를 안고 다니던 때를 말하는지 알 수 없지만... 

 

내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두 달전에 돌아가셔서

나는 할아버지 사랑은 커녕 얼굴도 못보고 자랐다.

그렇지만 이날 한 중년 사내의 푸념같은 말에서

원준이를 사랑하는 내 마음과 다르지 않았을

뵙지 못한 내 할아버지의 사랑을 본 것 같았다.

 

그 시절 할아버지들의 손자사랑,

표현은 지금과 같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사랑만은 조금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기에...

 

(박수근의' 할아버지와 손자')

 이 그림은 박수근이 타개하기 1년 전인 1964년에 제작되었다. 박수근은 제13회 국전에 추천작가로서 이 작품을 출품하였다고 한다. 화단에서 특별한 학연이나 지연, 단체 활동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없었던 박수근에게 국전은 언제나 신경을 곤두세워 의식해야만 하는 유일한 발표의 장이었다. 그래서인지 국전에 출품했던 작품들은 비교적 큰 사이즈의 탄탄한 구성력과 빼어난 조형성을 지닌 야심작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그 중에서도 가장 완성도 높은 걸작의 하나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작품의 상단과 하단에는 총 6명의 인물이 배치되고 있는데 특이한 점은 이들 인물들이 모두 두 명씩 짝을 이루어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물들이 짝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이들 사이에 어떤 정서적 교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즉, 이 인물들은 서로 소원하거나 무관심한 상대가 아닌 것이다. 박수근의 작품은 보는 이들에게 다정한 여러 이야기를 도란도란 들려준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끈끈한 혈육의 정과 이웃집 아저씨들의 구수한 대화와 일 나가는 어머니들의 건강함과 희망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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