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28.
네 번째 일요일이다.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했으나 전날부터 내리던 비는 멈춘 새벽.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 거실에서 매트를 깔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작은 방에서 기도를 마치고 나오던 집사람도 스트레칭을 하려고 아침마다 그러하듯 내 옆에다 매트를 펼치곤 고무밴드를 다리에 걸치면서 말을 걸었다.
"오늘 뭐 하실거예요?"
"글쎄, 뭐 할까? 넷째 일요일이라 센터는 쉬고,이륙회 번개산행도 이번 주는 쉬기로 했는데…"
"양재천이나 같이 걸을까요?"
"그럽시다. 안 그래도 요즘 유산소 운동을 좀 덜 했다 싶었는데…, 20km쯤 걸어야 겠다."
"20km나…, 저는 영동 5교까지만 걸을 건데…"
필라테스를 하면서 배웠던 갖가지의 동작으로 스트레칭을 마치고 나자 8시가 넘었다.
아침마다 하는 스트레칭이지만 평소에는 1시간 20분 남짓 걸리는데 은규가 오지 않는 일요일 아침이라 아주 느긋한 마음으로 쉬엄쉬엄 하다 보니 2시간이나 걸린 셈인데 갑자기 후두둑후두둑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활짝 열어젖힌 거실 창문을 닫기 위해 문틀에 다가간 집사람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비가 와서 양재천 못 걷겠어요."
귀리 등의 대용식으로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비는 잦아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났을 때는 아예 내리지 않았다.
다행이다 여기며 나는 行裝(?)을 차렸다.
요즘 헬스장에서 입는 팬티에 마라톤 할 때 입었던 민소매 셔츠를 입은 다음 얼음물 한 통이랑 만 원짜리 지폐 한 장만을 넣은 쌕을 허리에 둘렀다. 그런데 집사람은 또 비가 쏟아질 것 같다며 양재천 걷기를 포기하잔다.
그래도 그렇지…
그럴 수는 없는 노릇…
혼자 다녀 오겠다 말하곤 대문을 나서는데 집사람이 불렀다.
일회용 비닐 우의를 챙겨 주면서 가져 가란다. 못 이기는 채 우의를 받아 쌕에 집어 넣고 집을 나섰다.
양재천
며칠 동안 내린 장맛비로 하천 물이 제법 많았으나 주변의 푸르름은 싱그럽기 그지 없었다.
십수 년 전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하곤 할 때는 매 주말마다 양재천에 나와 한강변을 드나들며 몇 십 키로씩 뛰었고, 마라톤을 그만둔 후 몇 차례의 장거리 도보여행에 나설 때도 양재천을 걸으며 준비를 했었으니 내게는 아주 익숙한 장소였다.
양재천 무논, 등용문, 탄천, 잠실 선착장 등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하지만 양재천변 군데 군데 흙길 또는 테크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주민들이 산책하기에는 더 아늑할 것 같았다.
얼마간을 걸었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젖을 몸, 온몸으로 비를 맞기로 했다. 시원했다. 정말 시원했다.
온몸의 때가 다 씻기는 듯했다. 아니 마음의 때까지 다 씻기는 듯 상쾌했다.
비는 쏟아졌다 그쳤다를 반복하고 나는 비가 오면 오는대로 그치면 그치는대로 온몸을 맡긴 채 걸었다.
2014년 10월에 열흘 동안 걸었던 '서울에서 고향까지' 380km 도보여행과 2017년 10월에 13일 동안 걸었던 '속초에서 부산까지' 520km 도보여행, 그리고 작년 10월 집사람과 함께 비를 맞으며 시작했던 .고성에서 속초까지'의 동해안 50km 도보여행 추억에 젖어 한강변을 걸었다.
양재천에서 탄천, 탄천에서 한강 잠실 선착장
아무런 잡념이 없었다. 행복했다. 이대로 한없이 걷고 싶었다.
4시간 11분 걸었다.
18.83km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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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와 점심식사를 마친 나는 동해안 지도를 꺼내놓고 올 10월의 달력을 보고 있었다.
10월 3일 개천절은 목요일, 금요일 하루만 쉬면 3박 4일…
속초에서 강릉해변까지 해파랑길은 62km
집사람과 함께라면 3박 4일, 하루 16km씩…
내 머릿속의 계산기는 착착 돌아가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또 다른 도보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양재천변 갈대밭에 이처럼 갈대를 엮어 만든 것은 새집일까? 곤충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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